brunch

구회말, 투아웃투스트라이크에 휘두르는 마지막 한 방_3

_야구는 잘도 모르면서3

by somehow

아버지가 티비화면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움찔움찔 당신의 팔다리를 움직여가며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 야구경기를 지켜보고 계실 때, 그 시절의 나는 화면의 아래쪽에 떠있는 게임 회차와 스코어만을 주시했다. 일회초부터 팔회말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지루했던지,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마침내 또한번의 광고가 끝나고 새로 구회초-구회말이 이어지면 그때부터 가슴이 뛰었다. 이제 곧 나는 다른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아니, 실은 딱히 보아야할 프로그램이 있는게 아니었다. 나는 어느새, 빨리 저따위 지루한 공던지기 게임따위가 끝나는 것을 보는 것만이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 구회말 투아웃투스트라이크의 지경에서 벌벌 떨며 방망이를 움켜쥐고 서있는 나의 가슴이 다시 뛴다, 마지막 기막힌 역전 홈런 한방이면 어떨까. 그동안의 지루했던 8회차의 좌절 따위는 그 마지막 한 방이면 얼마든지 보상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아보인다.


가열차게 매진했던 네번의 면접에서 모두 성과를 거두지 못한 나는 23일 이전에 정규직에 채용되는 희망을 묻어두기로 했다.

참, S인더스트리의 깐깐한 사장님은 심지어 내게 이런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만약 내가 채용된다면 한달동안은 4대보험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일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었다. 알고 보니, 열심히 일하겠다고 시작했던 도전자들이 얼마 못가 힘들다며 도망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고, 혹시 나도 그런 경우가 될 수도 있으니, 귀찮게 4대 보험 신고니 계약서 작성이니 하는 것이 뭐가 급하겠느냐는 뜻이다. 그냥 첫달은 알바려니... 일하다가 노-사 간에 서로 마음이 계속 맞을 것같으면 그때서야 정식근로계약서를 쓰자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얼마나 일해보겠다고 왔다간 사람이 많길래 저러나 싶기도 하여 이해가 가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그렇게 하는게 맞는건가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너도 역시 그리 오래 못갈 사람이라고 미리 낙인찍어 두고 보겠다는 심산이다싶어, 역시 빈정이 상했다.



아무튼 워크넷과 고용센터를 통한 취업시도는 결과적으로 모두 불발되었다. 그로써 나는 다시 새로운 업체를 탐색하여 이력서를 날려야했다. 가능하면 보건증이 필요한 식품업체는 피하고 싶었다. 그냥 단순 공산품 제조업체를 찾고 싶었으나 그렇게 정하고 나니 또 그리 많지도 않았다.


그 다음날 저녁, 나는 우연히 알바전문알선 앱을 검색했다. 만만했던 경험이 마스크제조업체였던 기억으로 마스크를 키워드로 검색하니 마스크, 마스크팩 등의 제조업체가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눈이 번쩍 뜨이는 업체를 하나 발견했다. 집에서 차로 7분거리의 산업단지내에 있는 화장품제조업체였다. 그곳에서 마스크팩을 제조생산포장하는 일에 사람을 채용하는데, 뜻밖에도 내 나이는 충분하고도 안전한 조건에 해당되었다. 다만, 그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아웃소싱이라고 하는 인력파견업체를 통해서만 입사가 가능했다.

화장품제조회사_S&S 로 축약가능한 그 업체에 필요 인력을 모집하는 아웃소싱업체의 담당자와 연결되었다. 나는 정규직을 원한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내가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정규직이 될 수있으니, 다 본인 하기 나름이라고 희망을 불어넣었다. 집에서 가깝고, 만에 하나 야근을 하더라도 밤이면 5분이면 달려올 수 있는 거리이니 도전의지가 불타올랐다. 담당자는 다음날 정식으로 통화하면서 당장 내일부터라도 나올 수없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23일이 실업급여수급종료일이라 적어도 23일(월요일)부터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침내 5/23일, 실업급여수급만료일인 동시에 화장품회사에 첫출근을 하게 되었다. 비록 정규직도 아니고 인력파견업체의 파견직신분이지만 열심히 일하면 그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될수도 있다니 희망을 가지고 시작해보고, 다른 한편으로 다른 곳을 찾을 수도 있을것도 같아서였다.

화장품제조회사_S&S에 시간맞춰 출근했다. 식품회사도아니지만 위생이 중요한 화장품의 특성상 위생복을 입어야했다. 답답하고 불편했지만 규정을 따르는것은 당연했다. 나같은 파견직 여직원이 20여명은 되는것같았다. 그외 파견직으로 오래 일하다가 마침내 회사의 권유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경우가 10여명남짓되는것같았다. 처음해보는일이지만 화장품이라는 특성상 별로 어렵거나 힘든일은 없었다. 나는 그저 앞으로 얼마나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잇을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첫날 파견직원을 관리하는 반장에게 물었다. 얼마나 있어야 정규직이될 수 있는지.그러자그녀가 대답했다.

_적어도 2년은 넘어야 될 거에요. 정규직 잘 안 해주더라고요...

그녀의 답변은 나에게 크나큰 좌절을 안겨주었다. 2년이라니, 2개월도 아니고. 그때까지 나는 파견직 신분으로 연차도 없이 달랑 매월 만근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월차인생인 것이다. 그렇다고 2년 후에는 반드시 누구나 정규직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는게 더 큰 문제였다.

나는 첫날부터 하루종일 속으로 고민에 빠졌다...일은 쉽고 집에서 심하게 가깝고 야근도 없고...다 좋은데 불완전한 신분이 문제로구나.

갈등과 혼란 속에 하루 일과가 끝났다. 정규직이라는 반장들이,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개구리새끼들마냥 노골적으로 나를 포함해 처음 출근한 이들에게 잔소리와 타박을 늘어놓는 것 말고는 해볼 만한 일이라 생각하고, 아직까지는 뾰족한 대안이 없으니 일단 노느니 일 한다는 생각으로 한달은 해보자 하고 퇴근을 했다.


그런데 뜻밖에 아웃소싱업체의 채용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_내일부터 3일간 집에서 쉬시라고요.

이건 또 무슨 헛소린가?

마스크팩에 들어가는 원재료가 대기업에서 들어오는데 아직 안 들어와서 일을 못하니, 최소한 3일은 쉬고 금요일에 다시 출근하라는 것이다. 나는, 잠시 헛갈렸다. 나를 이런 식으로 자르는 건가 싶었다. 누가 숨어서 눈여겨보다가, 제 성에 차지 않는 나를 해고하려고 이런식으로 꼼수를 쓰나 싶었다. 그러나 담당자는 그런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가끔 원료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이런식으로 일을 쉬기도 한다며 금요일에는 꼭 정식출근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앞으로도 종종 일없으니 쉴 수도 있느냐는 물음에 절대로 그런일 없을거라고 장담을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다음날 아침, 갑자기 공중에 붕떠버린 일정때문에 나는 혼란에 빠졌다. 알바든 뭐든, 매일 출근하여 일할 수있는 곳을 찾고싶었는데 이렇게 종종 일없으니 정규직 아닌 너희들은 푹쉬어라, 라는 대우는 결코 원치 않는 것이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갑자기 쉬게 된 3일동안 다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야 할것 같았다. 다시 워크넷을뒤적였다. 그리고 몇군데 이력서를 보내고, 되든 안되든 탐색을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장품제조회사_S&S 는 그렇게 한번씩 원료공급 차질을 핑계로 강요인듯 아닌듯 파견직원들을 쉬게 했다는 것이다. 그로써 거의 한달에 1주일 정도씩은 기본적으로 출근을 하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3월엔가는 일주일 정도 일하고 나머지 3주동안은 출근을 하지 못한 채 집에서 쉬거나 다른 알바를 찾아 전전해야 했다는 것이다. 역시 원료공급 문제로.

그동안에도 정규직들만은 출근해서 정상적으로 자기들끼리 일을 한다고 했다. 바로 그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결정적인 차이와 차별이 상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몇년씩 그 곳을 천직삼아 다니던 사람들은 2년만에 정규직이 되었다고도 했다. 놀라웠다. 기본적인 월급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알바수준의 일터를 오로지 정규직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끝까지 사수할 수 있다니.

나같은 잔머리돌리기선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반강제로 이틀째 쉬던 날, 나는 워크넷에서 어떤 제약회사의 구인공고를 발견했다. 마음에 들었다. 마침 그것은 고용센터의담당자를 통해 면접과정이 치러지게 되어 있었기에 오전에 전화를 걸었고 곧바로 면접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은 수요일이었다.

곧이어 회신이 왔다. 오후 2시에 B제약(주)에서 면접을 실시하니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찬찬히 준비를 마치고 시간에 맞춰 면접에 나섰다.

집에서의 거리는 12~15분정도였다. 가는 길도 뻥뚫린 것이 나쁘지 않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