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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다2

_스며들다

by somehow

이제 겨우 생산직경력 3년미만의 1966년생이 용감무쌍하게 뛰어든 새로운 환경과 조직에서 잘 뒤섞여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할 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는 그들만의 문화와 인간관계이다.




||| 나는 이제, 그 관계 속으로 잘 스며들기 위해 노력한다.


한 직장에서 3년~10년 이상 일한다는 것, 그런 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고 다수일 때 그들은 그들만의 의미있는 문화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제 막 그들의 촘촘하고도 끈끈한 문화적 정신적 유대와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 뒤섞여야 하는 신참들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벤 다이어그램이 아닐까 생각된다.


평균 나이가 40~50대인 주부들은 어쩌면 을 중에서도 최고 을로서, 쉽지 않은 시간을 개인적으로나 공식적으로 살아온 그들이 서로의 모난 부분을 감싸안고 두드려 둥글게 어울려 화합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말처럼 쉽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두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기에, 충분한 이해와 공감의 시간을 갖지도 못한 이들은 그 유대관계 속으로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고 제풀에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입사후 며칠 혹은 몇달 만에 그만두었다는 이들의 경우가 그런 것일까.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출근 후 작업시작 전까지의 짧은 시간동안은 물론 점심시간과 작업 두 시간마다 주어지는 10분의 휴식시간마다 주로 머물게 되는 B제약 생산부 휴게실은, 이제껏 본적 없는 훌륭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커다란 두개의 테이블과 충분한 의자들, 싱크대와 냉장고, 소소한 수납가구, 급수기 등등... 물론 에어컨도 빵빵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곳에서 매일 일과시간을 우리 생산부 직원들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짧다면 짧은 휴식시간에 간식을 챙겨먹거나 때때로 점심식사를 외부식당이 아닌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도 한다. 매일 10여명의 인원들 간식은 매달 1회 얼마씩 갹출을 통해 비용을 해결한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쉬는 짬이면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생과 생각을 견주어보고 나름대로 조율하며 서로의 공감대를 이루어가려 노력한다.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하다. 때때로 배려와 위로, 격려를 건네기도하며 회사의 공지사항들은 부장과 과장을 통해 전 멤버들에게 전달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작업전 함께 국민체조를 하며 일과 시작 전에 몸풀기를 하는 것도 긍정적인 그들만의 문화이다. 오랜만에 해보는 국민체조는 개인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하고 유익하다고 여긴다.

물론 아직 나는 충분히 그들사이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할 수 없다. 현재 내가 느끼고 보고 듣는 것은 어쩌면 피상적인 일부분일 지도 모른다. 적잖은 나이만큼 내안에 쌓인 시간과 관습의 농담濃淡이 그들의 세계 속으로 스며드는데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나는 아무것도 단언할 수가 없겠다. 앞으로 차곡차곡 쌓여갈 나의 시간이 그들의 세계에서 맞물리기에 충분한 톱니바퀴를 이룰 수 있을지는.


|||| 문득, 나는 나를 지켜보는 시선을 느낀다.


아직은 나의 기량器을 짐작할 수 없기에, 그들은 매순간 나의 역량力量을 가늠하리라.

그것을 느낄 때면 나는 가끔 초조하기도하다. 이제 막 수습기간이 끝나가는 신참이기에, 신참이라 봐주는 것은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기에. 가끔은 어떤 작업에서 마음만큼 민첩하지 못한 스스로가 근심스럽기에. 그런 나를 배려하는 과장이, 배려하지 않는 또다른 그녀가 때로는 두렵다. 그럴때면 나는 두려움을 감추느라 진땀을 흘린다. 오늘_수습기간이 끝난다.


||||| 나는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나와 입사동기를 적당한 미소와 호기심으로 반겨주었다.

출근을 시작한 뒤, 나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그들과 빨리 뒤섞이기 위해 애썼다. 그들의 대화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의사표현에 성실했다.

어느 순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은 대화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의 찰나, 문득 나의 언어가 공중으로 흩어져버리거나 튕겨져나오는 느낌을 받는다.

불현듯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이 사람들은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구나, 혹은 나는 아직 (어느날 갑자기 떠날 지도 모르는) 수습사원修習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 했구나...남몰래 숙自했다.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대화에 참여하려 애쓰는 것일까...어쩌면 나의 근심을 들킨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입사동기를 돌아본다. 그녀는 말이 없다. 다같이 모인 휴게실에서도 한쪽 의자에 몸을 묻은 채 조용히 휴대폰만 들여다보거나 가만히 사람들의 대화를 들을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왜 그렇게 말이 없냐고, 그러면 그녀는 자신은 원래 말이 없다고 대꾸하고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어찌보면 그녀는 사람들과 빨리 뒤섞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경력6년차의 입사동기는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님을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시간이 좀더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물에 떨어진 잉크방울이
충분히 섞이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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