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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Dec 26. 2022

결핵, 두렵고 부끄러운 병명

_객담배양검사 결과가 나오다

2022.12.23.


일을 끝내고 조금 이른 퇴근으로 오후5시에 차에 올랐다.

19~23일 5일간 일한 S제과의 경로가 너무 어지럽고 위태로워 네비게이션을 켜고 출퇴근을 하는 중이었다.

네비를 켜기전 부재중 전화나 문자가 있는지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제목 MMS[Web발신]
안녕하세요 ㅇㅅㅂ병원 호흡기내과입니다
12/5일 진행한 객담검사 결과가 일부 나와 연락드렸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문자 남깁니다.
주말에는 저희가 근무하지 않아 월요일 9시 이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스크 착용해 주시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나 가족외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자제해 주세요. 직장에 출근은 당분간 불가능할 것으로 사료되니 일단 토, 일, 월은 쉴 수 있도록 해주시고 자세한 것은 월요일에 다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알기로, 객담배양검사는 두어 달 그러니까 6~8주 정도 걸린다고 하여 1월말에서 2월초에 결과를 들으러 가기로 예정된 상태였는데.....갑작스러운 부재중 문자는 나를 몹시 당혹스럽게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불과 3주만에 결과가 나왔으며 그것을 긴급하게 주말이 시작되는 찰나에 2통의 부재중 전화 끝에 남겨야만했던 부재중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나의 일상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통화에 성공했다.


"객담배양검사결과 결핵균이 나왔다"


담당자의 답변에 나는 가슴이 덜컹했다.

다음 순간, 다음주 월요일부터 정규직으로 새로 출근하기로 한 H베이커리는 어떡하지? 하는 근심으로 머리속이 가득찼다.

담당자가 계속 말한다.


"균이 발견되고 2주동안은 전염력이 있다고 보아, 격리가 필요하니까 2주동안은 집안에 머무르시고 출근도 2주후부터 가능하십니다. 지금 직장에 다니시나요?"


나는 다만 직장을 잃는 것만이 걱정스러웠다.

오늘까지 딱 5일 알바를 했고 지금 끝내고 나오는 길이며, 월요일부터는 새 직장에 나가기로 돼있는데요....새직장도 포기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절망했다.


"아, 그러세요? 결핵균이 전염성이 있다 보니까 역학조사 차원에서 며칠동안이라도 같이 일한 사람들도 검사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나가실 직장에는 아직 출근한 적이 없기 때문에 굳이 결핵균 얘기는 안하셔도 되고, 다만 2주 정도 쉬고 2주 후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하셔도 됩니다. 그후로 약만 6개월동안 드시면 완치되실 거에요."


다음 순간, 나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쩌다 결핵에 걸린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의 결핵환자 발생과 사망률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보고가 있기는 하지만, 통계에 내가 걸려들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래전,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나 흔하던, 이름 좀 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망원인으로도 드물지 않았던 그 질병에 오늘을 사는 내가 걸렸다니....부끄러움과 동시에 걱정이 밀려왔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결핵은 공기중 전염되는 질병이기에 부지불식간에 전염되었던 나처럼, 또다른 누군가가 나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감염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하자 다들 당황스러워한다. 어쩌면 함께 사는 남편과 어머니도 검사를 받아야할지 모른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같다.

크리스마스이브고 뭐고...아무것도 곱씹을 여유도 없이 주말은 황망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26일, 오늘은 보건소의 전화를 받아야 하고, 원래 객담검사를 했던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지난 5월말 열렬한 취업도전 끝에 입사하여 다니던 비타민회사를 나는 이번 11월말일에 그만두었다.


그곳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비타민 포장이라 힘든 일은 없을 줄 알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매일 십수 킬로 무게의 박스나 작업기구를 옮겨쌓는 일이 이어졌다. 느끼지 못하는 중에 스스로 한계에 다다랐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외에도 여러가지 사정으로 나는 끝내, 6개월만에 그렇게 바라던 취업의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야 했다. 그 이유에는 만56세의 나이에,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좀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해보자는 심산도 있었다.

그리고 12월 한달은 그냥 구직상태로 지내며 여러 이직처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마침 집근처의 소규모 제과공장에서 19~23일까지의 5일 동안 일하고, 26일부터는 정규직으로 새로운 곳으로 출근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꼼수가 12월 23일 오후 5시무렵의 전화통화 한통으로 수포가 될 지경에 처해버렸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스스로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글을 시작한 오늘 26일 오전, 나는 언제 올지 모르는 보건소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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