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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Feb 26. 2023

최악의 생산현장

_작업도 작업자들도 최악이었던 이상한 작업장

나름대로 분주했다.

한번 시작된 재취업작전은 일단 출발하자 쉽게 브레이크를 잡기 어려운 낡은 자동차처럼 달달거리면서도 결코 제어되지 않을 듯이 진격했다.

면접을 보자거나 하면 기뻤고 전화상으로도 나이가 많아서 어렵겠다는 답을 들으면 몹시 좌절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같은 열정과 마음자세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인 나이가 경우에따라 취업의 결격사유가 되는 것은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수많은 면접과정에서 마주한 다양한 작업환경들을 보면 세상에는 정말 무수한 업종, 인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직종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문구제조업체의 불친절한 면접이 끝난뒤, 그리 희망이 보이지 않음을 짐작한 나는 약간 의기소침해졌다.

그럴즈음 N화장품회사에서 면접을 보러오라는 전화가 왔다.

그역시 집에서 가까운 산업단지내에 있었다. 워크넷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송부해 두었었는데 뜻밖에도 회신이 온 것이다. 다음날 바로 면접을 보러갔다. 사장님과의 만남이었다.

그 회사는 인천에서 10여년 전에 시작했으며 4년전에, 이곳 산업단지에 입주하느라 이전해온 것이라고 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사장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사업체를 이끌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면접후 둘러본 생산작업장도 깔끔한 인상을 받아서 꼭 취업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다음날, 오전에 연락이 왔다.

채용되었는데,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그날이 1월 12일 목요일이었다. 나는 기뻤다.

다음날인 13일 금요일 아침부터 바로 출근을 시작했다.

나를 포함, 6명정도의 인원이 모든 제품을 생산한다. 반장이 둘이나 되는게 좀 의아했지만 그럴 수 있겠지 싶었다. 깔끔한 갱의실과 방으로 된 휴게실도 있고 식당이 있어서 외부에서 배달오는 식사를 전직원이 뷔페식으로 덜어먹는식이다. 모든 구색이 만족스러웠다.

위생모자와 작업복으로 입는 티셔츠를 입고 작업장으로 들어갔다. 두개의 방이 구멍뚫린 벽으로 나뉘어있고 그 사이로 컨베이어벨트가 서너개 설치되어 있다. 각각의 작업이 컨베이어를 타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인! 라인 작업이다.

그제서야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라인작업이 이곳의 주된 작업방식이로구나.

그러나 어쩌랴 일단은 부딪혀보는 수밖에....

라인의 시작점이 되는 A방 벽 구멍 앞에서 작업자 한 명이 일정한 크기의 병에 내용물을 담아 컨베이어 위로 올리면 바로 그 앞에서 또 한 명이 칭량秤量/稱量한다. 담겨야 할 용량에서 부족하거나 넘치면 조절하여 컨베이어위로 올려 왼쪽으로 지나가게 한다. 나는 그 라인의 중간쯤에 대기하고 서있다가 내 앞 오른쪽으로 다가오는 그것을 재빨리 잡아들어 뚜껑을 닫아 다시 왼쪽으로 보낸다. 이렇게 말로 풀어쓰자면 아무 문제가 없고 지극히 단순한 작업일 뿐이다. 이게 뭐가 어렵겠는가. 누구나 손과 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

첫날, 모든 인원이 어린이용 샴푸 생산작업에 투입됐다.

오전 9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무렵까지 무려 6시간동안 샴푸병 닫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샴푸는 액체다. 그러다 보니 뚜껑을 단단히 잘 닫아야 했다. 처음에는 무리없이 잘 진행되었다. 오른쪽에서 정확하게 칭량된 병이 내 앞으로 줄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라인을 따라 내려오면 재빨리 하나씩 잡아 뚜껑만 닫아 다시 제자리에 내려 놓으면 된다.

왼쪽 아래로 몰려간 샴푸병들은 대기하고 있던 다른 작업자가 필름지를 씌우고 스팀을 쏘여 랩(wrap)한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반장이 그것들의 갯수를 세어 박스 에 담으면 끝이 난다.


그 모든 작업과정 중에서 액체가 담긴 샴푸병의 펌프형 뚜껑을 돌려닫는 일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일과 8시간중 보통 2시간마다 쉬는 시간이 있다. 10시부터 2시간동안 그 일을 처음 했을 때, 시간이 갈수록 손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만만하던 일이 수십 수백 번 반복되자, 손가락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10분 쉬는 시간이 지났다.

보통은 그 다음 작업시간에는 작업자를 교체한다. 단순 반복작업이므로 작업자들이 돌아가며 몇단계로 나뉘는 그 작업을 교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날 무려 2시간씩 3타임 즉, 7시간중 점심시간 1시간을 뺀 6시간동안 뚜껑 돌려닫기 작업을 했다.  

처음엔 완전히 닫지 않았다며 더 꽉 조여 닫으라는 주문을 들으니 더욱 손가락에 힘을 줘야했고 10개나 되는 손가락들이 산산이 부서져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날 나는 좌절했다. 처음 출근한 신참주제에 왜 나만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하루종일 해야하느냐고 항의 할 수도 없었다. 평소 입바른소리도 잘하면서, 정작 그럴때는 아무말도 못하고 점점 부서져가는 듯한 손가락의 고통만 헤아리며 이렇게 되뇌일 뿐이었다.

아니구나, 여기도 아니구나, 내가 간과한게 바로 이것이로구나....

하루가 천년처럼 느껴졌고, 지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되었다.

첫근무일, 금요일. 오후6시가 근무종료인데 6시까지 이일을 시킨다면 그냥 그대로 뛰쳐나가 끝내야겠다고 이를 갈고 있을때, 오후5시쯤 그 모든 작업이 끝이 났다. 그로써 나의 혹독한 뚜껑 돌려닫기작업도 끝났다.

나는 밤새 괴로웠다. 이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냥 어쩌다 한번으로 끝날일이 아닌것이다. 생각해보니 화장품은 대체로 병에 담기고 그 병의 뚜껑은 돌려닫아야 한다. 샴푸병만이 아니라 어떤 화장품용기가 됐든지, 이렇게 꼭꼭 닫아야한다...날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주말내내 나는 돌아오는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할것인지 말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나 월요일이 되자 일단 출근했다. 그리고 반장에게 물었다.

첫날의 작업이 너무 고통스러웠고 그런작업이 매일 이어진다면 계속 근무가 어려울 것같다. 그리고 작업은 보통 2시간단위로 교대를 하는데 왜 나는 그날 6시간동안이나 그일을 시켰는지?

반장이 답했다.

매일 그런작업을 하는건 아니다. 당연히 교대로 작업을 해야하는데, 그날 왜 교대를 안한건지 모르겠다며,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태도였다.

또한, 그런 일이 자주 이어진다면 그만둘 수밖에 없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알았으니 조금더 해보고 결정하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나는 일주일을 더 그들과 일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느낀 가장 큰 의문점은 그들의 태도였다.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굴러먹던 개뼈다귀인지 하 수상할지라도, 앞으로 자기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할 동료라고 생각한다면 열렬한 환영은 아니더라도 연출된 친절과 미소정도는 표하는 성의쯤은 보이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나를 대하던 그들의 태도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혹은 투명인간 아니면 내쫓아버리고 싶은 거지새끼 정도로 취급하는 것같았다.

첫 날, 낯설고 어색한 사람들과 분위기에서 조금이라도 싹싹하게 굴어보려고 나는 그들에게 한두 마디씩 건네었다. 여기서 오래 일하셨느냐, 일은 할만 하느냐... 야근도 하느냐...등등.

그런데 그들은 일부러인지 원래 표정이 그런지 하나 같이 뚱한, 심지어 약간 화가났거나 불쾌한 듯한 표정으로 내 말에 몹시 퉁명스럽게 대꾸하거나, 왜 그런 걸 묻느냐며 짜증스런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새로운 동료에 대해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어보였다. 나는 좀 어리둥절했고 그 작업장의 분위기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라인을 타며 제품을 생산하는 동안 초보인 내가 조금 서툴러서 버벅대면 소리를 지르며 지적을 하고 툴툴거렸다. 그곳 분위기에 적응도 안된 어리버리한 신참에게 '그것도 제대로 못하느냐'는 식의 타박은 심리적인 위축과 긴장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숨이 막혔다.

물론, 라인작업에서는 그중 한 사람이 제 몫을 잘 못하면 다른 작업자들의 작업까지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신참에게 일을 시킬 때는 충분히 작업의 성격을 설명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해내는 요령까지도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이 작업을 해라'가 작업지시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실수하거나 제대로 라인을 타지 못하면 부르르 언성을 높인다. 나는 미처 무엇이 잘못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뒤통수를 맞는 것처럼 어리둥절한 상태가 되어버리곤 했다.

근무 이틀째인 월요일에는 다른 신참이 한명 더 들어왔는데, 그녀는 나보다 십년이상 젊은애였다. 그 애에 대한 그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주 금요일에 일을 끝내며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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