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적당한 기대를 품고 입사한 (주)S에서 수습기간 딱 3개월만에 제발로 뛰쳐나왔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자문했다.
왜 견디질 못하니? 남들도 다 하는 걸, 뭐 어렵다고 절절매면서 나갈 궁리만 한 거니?
그랬다. 나는 못 견디고 다시 튕겨져나왔다.
프리미엄실리콘원료를 사용하여 갓난아기들도 사용하는 영유아용품부터 주방용품 등 수만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그 직장에서.
집 근처에 있어서 예전부터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던 그곳.
그동안 여러 번 이력서를 던져도 도무지 홀인원이 안 되어, 어디 될 때까지...하는 심정으로 송부했던 이력서가 드디어 지난 1월 초, 채용담당자의 눈에 띈 것은 운명이었을까, 악몽의 시작이었을까.
알고보니 사장님의 처남이라는 관리 이사가 1시간 넘게 면접평가표를 옆에 두고 나를 이리저리 꿰어보고는 결론적으로 채용을 결심하기까지, 내가 너무 과하게 나를 어필한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도 했다.
어쨌거나 이 적잖은 나이에도 이사님의 Pick으로 일하게 되었던 첫 날부터, 시간이 갈수록 나는 내 자리가 가시방석이거나 바늘방석이 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면접날 대강 둘러본 나의 일터는 앉아서 일할 수 있는 훌륭한 자리였다. 드디어 여기저기 헤매다닌 보람이 있다 느끼며,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조용히 내몫을 해내며 늙어가자고 다짐했었는데.
우리 부서의 말단관리자인 대리님은 어쩐지 처음부터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뚱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내가 하는 말이나 질문 따위에 타박을 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수록 나이많은 게 죄로구나 싶어 더욱 공손하게 굴었다. 나이만 많고 검수업무는 처음이다 보니, 일을 시켜야 하는 대리의 입장에서는 답답한가 보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대리가 나보다 2주정도 먼저 들어온 38세의 젊은 아기엄마, 그녀를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선명하게 달랐다.
놀랍게도 대리는 잘 웃는 편이었다.
놀랍게도 언제나 걀걀걀 웃어가며 부원들과 이야기한다. 그러다 나와 얘기하게 되면 얼굴에서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녀의 음성은 가시처럼 내 가슴에 와 박혔다.
2월말...나는 집어치우기로 결정했다.
내 가슴에 와 박힌 가시는 잘 빠지지 않을 뿐더러 조금씩 언짢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자꾸 나에게는 저러는 걸까...
내가 잘 몰라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하는게 귀찮은 듯도 보였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은근 나를 만만하게 혹은 업신여기는 듯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즈음, 매일 8시간 아니 9시간 넘게-왜냐하면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 매달려야 했으므로 날마다 거의 한시간도 채 쉬지 못했다, 실제로-제품검사를 하느라 눈을 부릅뜨고 손을 쉬지 못하고 움직이다보니 조금씩 몸에 무리가 가는게 느껴졌다.
눈이 침침해졌다.
손관절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탈출할 궁리가 시작됐다. 이러다간 말라죽을 듯하다...
그리고 3월초 어느날 퇴사의사를 밝혔다. 아무도 나의 퇴사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딱 한사람, 나보다 2주 먼저 들어온 38세 그녀가 물었다.
왜 나가려시느냐고.
나는 눈이 아파서 그만두겠다고 대리에게 말했었으나, 실은 저 대리년이 나한테 하는 태도가 너무나 이해가 안 되고 불편해서 그만두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저도 느꼈어요, 언니를 왠지 못마땅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 그렇지? 내가 잘못 오해한 것만은 아닌 거였지. 그럼에도 나는 나이많고 경험 없어서 민첩하지 못하고 답답하게 구는 나의 죄로만 여기고 깊이 반성하며 더욱 고개를 숙이고 공손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허리를 숙일수록 뒷통수에서 불편함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느낄 정도로 대리의 나를 대하는 태도는 그런게 맞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했는데, 뜻밖에도 이사님이 알고 왜 그만두려고 하느냐고 하시네. 그러면서 그나이에 다른데 가면 써줄것 같느냐며, 좀더 해보면 익숙해질 거라며, 그러면 나아질 거라며...사직서는 찢어버릴테니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뜻밖이었다.
일개 나이 많은 생산직원 하나가 두어 달만에 힘들어서 때려치우겠다는데, 나를 뽑았던 당사자 이사님께서 친히(그는 매일 아침 생산현장을 돌며 직원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어가며 인사를 했다. 그날 아침에도 우리 부서에 들러 한바퀴 훑고나서는 나를 불러내어)퇴사 결정을 재고할 것을 권유하다니.
결론적으로 나는 그의 태도에서 작은 배려심을 느꼈다.
모른체 하고 넘겨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한낱 스쳐가는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다독여주는 관리자의 모습에서 약간의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로써 나의 퇴사소동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이사님의 마음씀에 대한 보답으로 더욱 열심히 일해보려 노력했다.
그때 생산부장이 나를 호출했다. 실제로 생산현장을 총괄하는 부장은 그동안 나라는 존재를 불편해했던 것같다. 그날의 면담을 통해 서로의 오해를 풀었다고 해야 할까.
나의 채용과정에 부장은 배제되어 있었다고 했다.
내가 출근하는 날까지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 혼자 나의 채용을 결정한 것이다.
그러니 그는 나이많고 경력부실한 나의 출현이 불편할 것이 당연했겠다.
게다가 내가 퇴사해프닝까지 벌이는 과정에서 이사님이 개입한 것도 언짢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내가 퇴사결심을 이사에게 먼저 알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자질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왜? 굳이 이사에게 퇴사결심을 미리 알리겠는가. 그것은 부장의 오해였다.
면담과정에서 부장이 오해를 풀고 나서 물었다.
힘들어서 나가려한거냐고.
나는, 일보다도 사람이 더 힘들다고 발언했다.
퇴사를 결심하게된 경위와 내가 느꼈던 곤혹감에 대해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뜻밖에도 부장은 나를 이해한다며 내가 더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렇게 지원을 해주었다.
나는 그에게도 감사했다.
아 그냥 나간다고 하면 알았다고 하면 될 것을...이 회사 관리자들은 사람을 적어도 일회용으로 취급하지는 않는가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일회용 인간, 인간 소모품으로 취급당했던 지난 초콜릿공장에서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무튼 그로부터 나는 더욱 흐려지고 아파오는 눈과 손의 고통을 참아 삼키며 인내의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