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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Aug 25. 2023

조금만 더 내 곁에

_병원내 항생제 내성균 감염된 어머니

8월 9일 어머니의 암적 존재, 담낭제거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뒤,

병원측에서는 보호자들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다음날부터 비위관제거를 위한 성급한 도전을 시작했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고 하루이틀뒤에는 바로 퇴원도 가능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경우가 아닐까. 내 어머니는 90세, 더구나 담낭에 문제가 생긴 줄 모르고 두어 달을 참다가 곪아터지기 직전에야 응급실에 들어갔었다. 6월 5일의 일이었다. 

그게 겨우 두 달전이었는데, 염증이 너무 심해서 수술도 곤란하여 배액관만 뚫어달고 패혈증까지 겪으며 중환자실을 오갔던 경우이다. 

의료진들은 사람을 무조건 살리고 보자는게 목표인지라, 온갖 기술을 동원하여 살려내었다. 땡큐였다

어머니의 고통을 진작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두어달이나 속으로 곪게 하다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니, 그대로 이별하는 것은 차마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어머니의 목숨은 연장되었으나 몸은 뼈와 가죽만 남은 상태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비위관을 삽입하게되었던 것이다. 회복이 되어가니, 가족들로서는 비위관따위는 당연히 제거하고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게 당연한 일이다.


의료진은 자신들이 죽을 사람을 살려내었다며 자화자찬을 해대며 입원 한달만에 퇴원을 시켰다. 담낭배액관을 연결해둔 담낭제거는 체력이 회복되면 실시하기로 하고.

그게 7월4일이었다.


그뒤로 7월말까지 요양병원에 계시던 어머니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종종 토하기도 하고 잠결에 비위관을 뽑는 일이 반복되어 나중에는 침대에 양손을 결박당해야 했다. 

그러다 7월26일 담낭제거 일정논의를 위해 찾았던 외과의사와 8월10일로 수술일정을 잡고 돌아왔다. 

그날 병원에 간 김에 망가진 허리와 골반부근의 상태를 보기위해 정형외과에 갔다가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그 약을 한두번 드신 뒤로 위장출혈소견을 보인다고 요양병원에서 연락이왔다. 

진통제때문일까...요양병원에서도 또다른 이유를 짐작하지 못했다. 

수술일자까지 남은 10여일 동안 금식을 시키겠단다. 

답답한 것은, 요양병원에서는 피검사 정도만 할 수 있고 그외 엑스레이검사나 위내시경이나...다른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 어이가 없었다. 


명색이 병원이라며, 요양병원은 요양원과 다를 게 없었다. 

요양원에는 요양보호사라도 있어서 다인실에서 혼자 여러명을 돌보는 중국인 혹은 조선족 간병인이 있는 요양병원보다는 돌봄의 기본 수준이 다르다....진실을 알게 될수록 답답하고 괴로웠다. (요양병원에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욕창이 악화되었다. 7월4일 ㅇㅅ병원을 퇴원하여 요양병원에 갈 때만 해도 긴 입원생활로 인해 어쩔 수없이 생긴 욕창은 가벼운 1단계정도로 거의 나은 생태였다. 그러나 요양병원을 떠나 다시 8월3일 ㅇㅅ병원에 입원하던날 확인한 어머니의 꼬리뼈부근은 벌겋게 부풀고 손바닥정도크기로 넓어진 상태였다.)


나는 황당했다. 

기운이 이미 바닥을 친 90살 노인네에게 위장출혈소견때문에 또다시 금식을 시키면 수술은 불가할 것같았다. 외과의사를 만나 상담했다. 그리고 위장출혈소견과 관련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하고 어머니의 체력을 감안하여 담낭제거수술 여부를 판단하자고 했다.


곧바로 입원결정이 나서 8월3일 입원했다. 

그리고 위내시경시술 결과 어머니의 위장에는 작은 상처들이 있다고 했다. 

내 생각이지만, 비위관이 들어가며 위벽에 상처를 낸 것이 아닌가...무심결에 자주 스스로 비위관을 뽑아낼 때마다 다시 그 줄을 쑤셔넣을 때마다 연약한 위벽을 긁어댄 것은 아닌가 싶었다. 

어쨌거나, 원인을 알게 되었고 더이상 출혈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고 8월 9일에 마침내 골칫덩이였던 담낭제거를 무사히 마쳤다. 그과정에서 자잘한 담석도 4~5개정도 나왔다며 보여주었다


담낭제거수술이 끝난 8월9일부터 의료진은 퇴원을 이야기했다. 

그주 말에는 나가 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면서 다음날 비위관제거를 위한 연하곤란검사를 성급하게 시도를 했다. 

그들은 가족들이 원하기에 조치를 한것 뿐이라는 입장이었다. 

문제는, 어머니가 비위관제거를 위한 연하곤란검사에 제대로 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을 제대로 삼키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조금 넘기다가 흡인이 일어나 기침을 하여 테스트를 중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비위관제거는 무리라는 입장을 보이며 수술은 잘 끝났으니 빨리 퇴원하라고만 재촉했다. 연하재활이 가능한 요양병원에 전원시켜줄테니 그곳에 가서 시도하라는 것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의구심과 불만이 생겼다. 

아무리 수술이 잘 끝났어도 90살 먹은 노인네를 바로 끌고 내려가 연하곤란 검사를 하다니...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닌가...그뿐 아니라 빨리 퇴원하라고 종용을 하다니...우리가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전공의라는 이는, 뻐꾸기처럼 같은 말만 되뇌었다. 

수술은 잘 되었고 염증수치도 안정적이고 이수술은 간단한 수술이라 하루이틀이면 다 퇴원하는것이 맞다.

나도 뻐꾸기가 되어야 했다. 

90살 노인네가 아니냐.수술 바로 다음날 그렇게 무리하게 테스트를 하는것도 아니지 않느냐...며칠 더 몸이 회복되면 다시 해봐야할 것 아니냐...

그러는 사이 어머니의 염증수치는 오르락내리락했다. 그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전원요청을 받은 요양병원과 통화중, 어머니의 염증수치가 아직 높은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인 것이다. 그래서 요양병원관계자는, 어머니의 상태가 좀더 호전된 뒤에 오시는게 낫겠다고 말했다.

나는 의사에게 따졌다. 

요양병원에서조차 어머니의 상태가 아직 불안정해서 받아주기를 망설이는데 왜 자꾸 나가라고만 하느냐고. 그러면서 염증수치가 0이 될 때까지는 절대로 못나겠다고 버텼다. 또 수술후 의사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상태인데도 그래도 퇴원을 강행시키려는 것이었다. 의사는 수술후 휴가를 갔다고 했다. 


염증수치는 3부터 10까지를 정상범주로 본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내가 확인해본  당시 어머니의 염증수치는 8정도였다. 이론상으로는 정상범위였다. 그러나 나는 그 수치가 무조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들이대서는 안되는 위험한 잣대라고 생각되었다. 

젊고 건강하거나 면역력이 충분한 사람이라면 8정도의 염증수치는 호전추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이미 오랜 병원생활로 체력이나 면역력 모든 면에서 누구보다도 불안정한 상태임에 틀림없다. 


8이라는 염증수치가 어머니의 경우에는 호전추세로만 내려가지 않고 한순간에 악화추세로 돌변할 수도 있는 지극히 불안한 수치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버텼다. 

0이 되면 나간다. 

의사를 만나고 퇴원하겠다.(의사는 8/21일에야 휴가에서돌아온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다음주 되었고 8월16~17일쯤 연락이 왔다. 연하곤란검사를 하다 흡인이 일어나 폐렴기가 생겼고 그걸 열심히 치료중이었는데 조금 심해진 것 같다고.

폐렴이다. 낙상 외에도 폐렴은 노인들의 사망원인으로 손꼽히는 병명이다.

주말에 다시 결려온 전화에서는 다른 검사를 위해 침대채로 아래층에 갔다오는길에 구토를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부씨티를 찍어보겠다고 했다. 

그후의 연락에서는 염증수치가 많이 올랐고 폐렴이 심해졌다고 말한다. 

나는 흡인성폐렴이 심해진 것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물었으나, 의사는 뜻밖의 말을 했다. 

지금 폐렴은 흡인성으로 인한게 아니라는 것이다. 병원에 오래 있다보니 그냥 폐렴에 걸린 것이라는 거다. 말하자면 병원내에 존재하는 항생제내성균 같은 균에 새로 감염이 됐다는 의미인거다. 


결국, 빨리 나가라고 할때 안 나가서 폐렴에 걸린 거라는 소리를 하는거다. 과연그럴까?

뒤집어 얘기하자면, 서둘러 퇴원을 했을 경우, 다른 요양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에서도 다시 이처럼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아닌가. 그러면 다시 응급차를 타고 돌아오게 될 수도 있었다는 말 아닌가. 

어느 곳에 있든, 어머니는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서둘러 나갔다가 다른 병원에서 폐렴에 걸려 돌아오면 책임소재가 달라지는 것뿐이다. 


그로부터 폐렴이 심해진 어머니는 기침이 심해지고 가래가 끓었다.

열이 나고 염증수치가 몹시 올라 중환자실에 가야할지를 고민할 상황도 있었다고 의사는 나중에 말했다. 

내가 8/23일 면회를 갔을 때, 피검사를 하느라 앙상한 팔다리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뽑아갔다. 

균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폐렴의 원인이 어떤 균때문인지 확인한다나..

어제 의사와 다시 통화했다. 

의사는 이미 항생제 내성균이 나왔다고 했다. 

다행히 그 내성균은 치료가능한 약이 있어서 치료중이고 계속해서 다른 균이 나오는지 확인중이라고 했다. 염증수치는 조금 내려갔다고 한다. 

항생제 내성균의 치료는 매우 어렵기에 치료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가 물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치료는 당분간 기약이 없는 거냐고. 

의사는, 언제쯤 퇴원할 수 있다고 말할 수없다고 했다. 다만 어느정도 치료가 되고 호전추세를 보이면 요양병원으로가서  항생제치료를 계속하게 될것이라고 한다.

폐렴과 싸우는 나의 어머니


지금 어머니는 다시금 지루한 싸움을 하고 계시다. 

항생제 내성균을 이겨내야 다시 퇴원할 수 있다.

수요일 면회에서 어머니는 몹시 지치고 힘겨워보였다. 얼굴과 손을 물수건으로 닦아드리고 잠시동안이라도 찬송가를 귓가에 틀어드리고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제 우리는 비위관제거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대로라도 우리 곁에 조금더 머물러 주셨으면 싶을 뿐이다. 

다만,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나날들이 고통없는 시간으로 마음의 평화로 가득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오기 전 어머니의 귓가에 속삭였다.


엄마, 사랑해...알지? 기운내서 이겨내야 해.


엄마가 끄덕였다. 

이제 가봐야한다는 말에 엄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무렵이면 눈에 눈물이 돈다.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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