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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Aug 29. 2023

비 내리는 천변

_우산을 쓰고 걸어요

비가 내린다, 오늘도.


어제부터 시작된 비는 산책을 건너뛸 핑계로 무척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어제 산책을 빼먹었다.

오늘도 눈을 떴을 때 비가 오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또 자연스럽게 빼먹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나 더 자버렸다.

불현듯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생각하며 곧장 털고 일어났다.


늦었어도 오늘은, 비가 오지만 오늘은, 꼭 산책을 하자.

그리고

오전 7시반 무렵 집을 나섰다.


텅 비어 있는 산책로...가을이 제법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한다.


비는 이슬비처럼 오다 말다.....

그래도 공기가 축축하게 젖어있어서 우산을 쓰고 나섰다.


천변의 중간쯤 다다랐을 때는 8시가 다됐다.

예상한 일이긴 하지만, 비가 오니까, 시간이 늦었으니까, 천변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없다.


혼자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천변으로 들어섰을 때, 한 사람이 걷다가 달린다.

그녀가 사라진 뒤로,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 동안 천변에는 나 혼자였다.


아니지, 흐르는 물소리와

젖은 나뭇가지들을 흔드는 바람과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귀뚜라미소리...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까치들, 이름모를 새들의 소리들로 가득했다.




어제 면회가서 만난 어머니는 많이 호전되었다.

어제 오전 의사의 보고에 의하면, 폐렴이 잘 치료되어 거의 다 나아간다고 한다.

염증수치도 1점 몇 정도라고 하니, 8월3일 입원이래로 가장 좋은 수치라고 할만하다.


의사는 또, 병원 내성균의 감염을 폐렴의 원인으로 의심했으나 결론적으로는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며,

8월9일 수술후 성급하게 시도했던 연하곤란검사중 일어난 흡인으로 인한 흡인성폐렴이 악화되었던 것같다

자신들의 견해를 정정했다.


그럼 그렇지...염증수치가 8이 넘는 상황에서조차 호전기라고 우기며,

성급하게 퇴원시키려 서둘러댈 때 바보처럼 등떠밀리 듯 퇴원했더라면??

결국 어머니는 이번처럼 폐렴악화로 다시 응급차로 되돌아 왔을 지도 모른다.


눈에 띄게 호전되어 가는 수치들과 임상적 상태로 보아, 이번에는 나도

퇴원이 가까웠음을 알아차릴 수 있겠다.

오늘이 화요일, 주말즈음까지 상태를 좀더 지켜보아 안정적인 상태로 들어가면

다음주 초에는 병원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는 엄마의 막내동생 부부가 함께 면회에 들어오셨다.

내게는 작은 외삼촌과 외숙모가 되신다. 어제는 외할아버지의 제삿날이었기에  제사를 지내러 형님댁에 오신 작은 외삼촌 내외분이 큰누님을 뵈러 오신 거다.

누구인지 알아보겠느냐는 물음에, 미소를 띠며 정확하게 알아보고 표현하신다.


ㅡㅡㅡㅡㅡ


엄마, 나 왔어!

내가 갔을 때, 엄마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는 왜 안왔어?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면회가 안되는 날이라 못왔지... 기다렸어?

응...

엄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기약없는 병실에서의 생활은 그리움만 키운다.


언니와 나는 갈 때마다 가져간 수건을 따뜻한 물에 적셔 얼굴과 손과 발을 닦아드린다.

간호간병 통합병동인지라, 간병인이 없는 상태로 간호조무사들이 2인1조로 환자들을 돌본다.

그들이 거동이 불가한 내 어머니를 돌보는것은 매우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위변경이다.

3일 입원당시, 욕창이 큼지막하게 퍼져있는 것을 확인했었다.

조무사들은 입원 이후로 하루에 2~3시간마다 어머니의 체위를 변경시켜드림으로써 욕창이 커지거나 심해지지 않도록 애썼다.

그 결과 입원 1주일여만에 확인했을 때, 욕창은 사라진 상태가 되었다.

나는 조무사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욕창관리관심이 우선이다.

관심을 가지고 수시로 체위를 바꿔주지 않으면 욕창은 순식간에 생겨나고 피부와 근육은 물론 뼈까지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양치질을 못하는 대신 정해진 도구를이용하여 구강청결을 조무사들이 돕는다.

물론 스스로 양치질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만족스럽겠으나,

지금까지 어머니의 상태는 그것이 쉽지 않았다.

이제, 안정적인 상태로 퇴원하여 요양원으로 가게되면 예전처럼 활력을 되찾고

스스로 양치질도 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주고 받으며 지내시길 바란다.


요양원에는 주간보호센터에 준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테이블에 모여 그림그리기나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하는 시간이 있다. 그시간은 어르신들에게 잠시나마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요양병원은 그런 프로그램이 없다.

정말 병원인 척, 침대에 눕혀두고 처치하고 생명이 끊어지지 않도록 지켜보는 일만 한다.

그러니 어머니의 욕창이나 활력 회복을 위한 조치는 없었다.


나는, 병든 노인들이 인간성은 배제된 채 숨이 끊어지지 않도록 관리해야하는 도구적 생명체로서만 존재의미가 있는 요양병원-그곳에 어머니를 다시는 보내지 않을 생각이다.

차마 생각하기도 힘들지만, 의식도 없는 상태라면...그곳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명징한 의식이 있다.

몸이, 평생 가족을 위해, 어느 구석이 닳아 없어지는 지도 모른채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진이 다 빠져 푸석푸석해진 쭉정이만남은 그 몸을 스스로 가누기 어려울 뿐...

이제 조금이라도 남은 시간동안만이라도 어머니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내실 수 있었으면... 바랄뿐이다.


면회가 끝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면, 나는 힘들다.

엄마...이제 가야 돼...

가지마...

왜...여기 있으라고?

응...

어머니는 가지 말라고 말한다. 눈빛은 애원에 가깝다.

....갔다가 내일모레 또 올 거야...그때까지 잘 기다리고 있을거지? 약 잘 먹고 기운 내야 해.

가지마...

조서방 밥해 줘야지...그러고 낼모레 또 올건데 뭐..

가지마 소리만 반복하며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잡는다.

번번이, 나는 하릴없이 단호하게 돌아서야 한다.

그때쯤이면 늘 눈앞이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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