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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l 26. 2024

8-2.원칙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

-사람의, 사람에 의한, 나와 같은 존재를 돌봄에 있어서

기저귀 좀 갈아주세요!


어르신들은 그나마 갓난아기들과 달리, 의사표현이 가능하다.

인지력이 현저히 떨어져 본인이 똥오줌을 쌌는지 안 쌌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아니면, 인지가 있는 분들은 당장 자신의 기저귀에 나온 배설물을 즉시 치우고 싶게 마련이다.


아무리 나이들고 병들고 인지력이 떨어졌다 한들, 그역시 인간의 본능 아닌가.

아니 모든 생명체의 본능 아닐까.


15년간 내손으로 똥오줌을 치워주었던 강아지 슈나우저 뤼팽이도 절대로 제 집에는 똥오줌을 싸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또 어떤가. 고양이도 집과 멀리 떨어진곳에 둔 모래 화장실에 똥오줌을 해결한다.


하물며 인간이랴!


첫출근을 시작하고 하루하루 어르신들을 돌보는 일에 익숙해지려 애쓰는동안, 바로 그문제가 딜레마였다.


정해진 시간에 어르신들의 방을 돌며 기저귀 교체일과를 수행하다 보면, 어떤 분은 기저귀가 넘치도록 소변이 가득 담겨있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대변과 소변이 가득 들어 있기도 하다. 인지가 있든지 없든지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거의 4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드리는데, 그사이 흥건하고 질펀하게 기저귀가 채워진 채로 다음 교체시간까지 누워계신 경우를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말을 못하시는 분들은 그렇다치더라도, 거동만 불편하고 의사표현이 가능한 경우에는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하면 될텐데 왜 그냥 참고계실까.

갈아달라고 하면 바로 갈아드릴텐데....


그런데, 현실은 내 생각과 달랐다.

인지가 있어서 이후로 기저귀교체시간까지 기다리기 끔찍하여 중간에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분들이 더러 있으나, 그 요청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는게 현실이었다.


기저귀 갈아달라고하시는데요? 갈아드릴게요....

생초짜였던 나는 그 외침을 듣고 선배와 동료에게 말했다.

당연히 갈아드리는게 맞을 것같아서, 잘 못들은 것같아서.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야, 그냥 둬요. 조금전에 갈았는데 뭘 또 갈아요?

-저분은 조금만 싸도 저렇게 만날 갈아달라고 야단이니까. 무시해요.

-갈달라고 할 때마다 갈아주다 보면 한이 없어요. 그러니까, 다음 교체시간까지 기다리라고 해요.


처음, 나는 이런 대답들에 귀를 의심했다.

물론 그분들도 기저귀교체시간 간격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요구할 때는, 해드려야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러나 선배들 중에서도 특히 강짜였던, 나의 파트너 그녀는, 한마디로 얄짤이 없었다.

그녀의 논리는 이랬다.


OO어르신이나, @@어르신은 새로온 사람에게 특히 그렇게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한단다. 이른바 신입길들이기라는 것이다.

어르신들도 눈치가 빨라서 새로온 사람, 아직 이곳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저런 무리한 요구(기존 근무자들에게는 아무리 졸라도 먹히지 않는다는 의미로)를 한다는 것이다.

나처럼 초짜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의욕만 가득하여, 그런 어르신들의 요구를 즉각즉각 해결해 주는데, 그러다 보면 버릇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못들은 척 하라고 말했다.

그런 '버릇'은 초장에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분에게 쫓아가 악을 쓰듯 큰소리쳤다.


기다려요, 기다려! 기저귀 갈아드린지 얼마나 됐다고 금세 또 갈아달라고 하세요?! 그냥 더 싸시라고요!


나는 마음 한쪽이 심란해졌다. 저렇게까지 악에 받친 듯 해야 할까....

사실, 내 어머니가 아직 요양원침상에 누워계시던 때, 내가 자주 면회를 다니던 그 즈음, 교체시간이 되기전에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분명히 있었기에 더욱 괴로웠다.


언제였던가, 어머니가 비위관을 꽂기 이전 초기에 요양원에 입소하여 계실 때였는데, 어느날 면회를 갔을 때 어머니가 '(기저귀에)오줌쌌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요양보호사 어느분께 어머니가 소변을 보셨다고 하니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어느분인가 내 말을 들은 요양보호사는 이렇게 대꾸했다.

아직 갈아드릴 시간이 아니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기저귀교체시간이 따로 있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말도 더 하지 못했다.

어째서 항의 한번 못했는지 수십 번씩 다시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지만,

나는 그저 바보처럼 어머니께, 엄마 조금만 기다리래...라고밖에 하지 못했다.


그와 같은 일은 그후에도 또 있었다.

비위관을 꽂은 이후의 어느 날이었고, 의식은 있으나 언제부턴가 말을 거의 하지 않으시던 때였다.

그때 어떻게 알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려야할 상황임을 인지한 나는 요양보호사에게 기저귀 좀 갈아주셔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때도 어느 요양보호사는 아직 시간이 안 됐으니 기다리라고만 말하고 미련없이 뒤돌아 나가버렸다.


그때도 나는 속이 상했으나 역시 아무말도 더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을 귀찮게 했다가, 내가 없을 때 어머니에게 어떤 불이익이 가면 어쩌나(그럴 수도 있을까봐 두려웠다) 하는 우려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어머니와 나는 철저한 약자였다.


어머니가 계시던 요양원의 요양보호사가 되고 나서, 그와같은 상황을 다시 직면하게 되었을 때, 기저귀 갈아달라는 어르신의 요구에 악다구니를 떠는 그 선배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 상황 속에서 어느 쪽으로 발을 뻗어야할 지 무척 혼란스러웠다.

시간도 안됐는데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요청했다가 그런 악다구니를 당하는 어르신들은 그래도 스스로의 권리를 찾으려 애쓰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외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대소변이 기저귀밖으로 차고 넘쳐도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죽은듯이 누운 채 속으로 기저귀교체시간만 기다리고 계시는듯 했다.)


악을 쓰며 좀더 기다리라 소리를 들어도, 어르신도 마찬가지로 대항했다.

갈아달라면 갈아줄 것이지 왜그러는거냐,고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하거나 한두 번 거절을 당해도 무조건 갈아줄때까지 갈아달라고 집요하게 떼쓰듯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우는 아이 젖준다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 된다.


시끄럽고 귀찮아서,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며 귀찮아 하면서도 마지못해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것이다.

.

.

.

그 모든 상황에서 인간의 권리와 존중심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말로는 어르신, 어르신 해가면서도 막상, 가장 그토록 중요한 장면에서는 원칙을 내세우며 모멸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 모멸감.


누군들 그 자리에 누워
자신보다 한참 나이 어린 것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겠는가.
나이 들고 병 들어
하루 하루 그저 숨쉬고 먹고 싸는 일 밖에는 할 수 없는 채로,
뻔히 보이는 종착역을 향해서만 걸어가고 있는
무위의 존재라는 생각만으로도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을 존재에게,
가식적으로라도 더욱 다정하고 인간적으로 대하지는 못할망정
과연 그토록 악다구니를 떨어야만 하는가.


아직도 나는 의문스럽다.


그러나.....시간이 흐를수록,

그 선배들과 함께 손발을 맞추어 일과를 수행하는 동안,

어느새 나조차 그들*을 닮아가려는 것을 깨달으며

당황스럽고 괴로웠음을 실토한다.




그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실제로 한두 명이 아니라 대부분이었으며, 그들은 그 생각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다. 물론, 그외에는 그러한 비인간적인 원칙에 반기를 드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갈아달라고 하면 그때마다 당연히 갈아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당연히 반기를 든 그들그렇지 않은 이들과 번번이 충돌했다.


그럴 때, 나는 되짚어 보았다.

이 일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무엇때문에 이 일을 하는가.




주의:이 글은 특정인들을 고발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또한 그들이 결코 모든 요양보호사의 모습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처음 요양보호사가 되어 보고 듣고 겪었던 현실과 이상사이의 괴리, 그 모순된 상황에서의 갈등과 좌절에 대해 고백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요양보호사로서 5개월의 시간을 넘어가는 현재, 저는 보다 인간적이며 인간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에 가장 충실한 많은 분들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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