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어머니라는 존재의 의미
세상을 떠나신지 7개월째,
엄마도 없이 맞이하는 첫번째 추석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2월9일 이후로 매일매일이 엄마없이 맞이하는 첫 날들이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속에 외로이 앓다가
더이상 참아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서야 응급실로 실려가신 후,
그로부터 차가운 수술실로 중환자실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엄마 홀로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었고 아무리 간절한 기도로도 결코 돌이킬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은 이제와
수없이 되짚어 보아도, 죄책감을 도무지 벗어던질 수가 없다.
고통에서 벗어나 끝내 안식을 찾으셨으나,
생각지 못하는 순간마다 잊고 있던 송곳에 손톱 밑을 찔린 듯 가슴이 뜨끔거린다.
엄마도 없이 언니는 뇌경색을 겪었다.
끝내 엄마도 없이 나혼자 낯선 수술실에 누웠다.
그전에 간혹 아프기도 했지만 금세 나았다.
내가 씩씩해서 그런 줄 알았다.
엄마없이 마주한 첫 번째 추석, 연휴가 하루, 이틀...사흘...나흘...
너무나 적막해서 숨이 막혔다.
엄마 없는 추석이 낯설고 서툴러서 애꿎은 남편과 다투었다.
엄마가 있어서 우리가 씩씩했고 엄마가 있어서 태평하게 살고 있었다.
엄마 허리다리 손발 안 아픈 곳이 없는 이유가 철없는 자식들때문이었다.
늘 그렇게 시름시름하면서도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갈짓자로 걸어도 낭떠러지에서 굴러도, 뒤에서 넓은 품 벌리고 언제든 받아 안아줄 엄마가 있어서, 겁도 없이 휘젓고 다녔다.
엄마는 자식들의 액운을 막아주는 바람막이였다는 사실을 몸에 칼을 대고서야 깨달았다.
세상 나를 가장 사랑하신 분, 당신의 원죄와 슬픔과 소망을 다독여 품으시고 낳으셨으나 차마 한시도 걱정을 잊어본 적 없으신 어머니...
날마다 몸을 칼로 째고서라도 엄마가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텐데요...
휑뎅그레... 엄마도 없이 맞이한 헛헛한 추석,
진실을 마주하는 일은 몸에 칼을 꽂는 것보다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