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그리고 아버지
수목장...
어제는 아침 일찍...9시쯤, 전날 마음먹은대로
엄마를 보러 갔다.
당신은 이미 한줌의 재가 되어 작은 소나무 아래 잠들어 계시지만,
열두 번쯤 엄마를 생각하다가 한번은 엄마 나무를 보러 간다.
그동안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가려고 생각했었으나, 몇번 빼먹은 적도 있다.
이번에도 두달만에 온 것 같다.
꽃값...
보랏빛 고운 저 꽃은 조화다.
처음엔 생화를 준비했었는데, 가격이 좀 세다 싶은 생각에...아껴 볼까 하고 조화가격을 알아보니
그것도 겨우 몇천 원 차이였다.
처음엔 또 수목장에 있는 꽃가게가 독점으로 판매하느라 꽃값이 비싼 것같아
동네에서 내 마음에 드는 꽃으로 골라 다발을 만들어 가기도 했는데, 그것도 역시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수목장 꽃가게에서 꽃을 사는데,
조화든 생화든 그순간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날이 추웠던 어제는 어쩐지 생화를 고르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날이 너무 추운데, 엄마 나무아래 놓아두면 향기를 뿜어내기도 전에 그냥 얼어죽어버릴 것 같다는 걱정때문이었다.
그래서 저 보랏빛, 제비꽃을 닮은 조화를 샀다.
엄마는 보라색을 좋아하셨다.
사랑_제비꽃의 꽃말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의 수목장 묘원은 밤새 내린 서리가 이불처럼 하얗게 덮힌 채였고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새로 누군가의 나무자리를 알아보러 온 가족인 듯한 몇 사람들이 저멀리 조용조용히 걸음을 옮긴다.
그저 형식적일 지언정, 엄마를 보러간 자리에 명백한 사망의 표식처럼 느껴지는 묏자리가 아닌
사철푸른 저 나무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수한 키작은 소나무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으나,
어느새 내 어머니를 기억하게 하는 특별한 의미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혼자 조용히 어머니를 보러 다니는게 좋다.
특별히 어떤 생각에 골몰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주위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집에서 멀지 않아서 마음먹을 때마다 달려와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아버지...
엄마를 보러 다니다 보니, 언제부턴가 아버지를 종종 생각한다.
1999년 10월말께 1년간의 폐암 투병끝에 돌아가신 아버지.
그의 묘지는 포천 어디께 어느 교회의 공동 묘원에 썼다.
그로부터 10여년간, 어머니와 나는 기일마다 아버지의 묘지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또 아버지의 무덤을 찾았을 때,
그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버지의 원래 가족_본처+자식들이 그들의 선산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올 것이 왔다, 고 우리는 생각했다.
그후로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의 기일을 서서히 잊어갔다.
이제는 정확히 몇 일이었는지, 대체로 기억하는 그 날짜가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는 죽어서, 자신의 본가로 돌아가서 마침내 안식을 얻었을까....
이제는 다 끝났다고, 어쨌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아무런 설명도 답도 없이 눈을 감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 속에는 뜬금없는 바람이 분다.
산책...
어머니를 보고 돌아오는 길,
집앞 천변을 걸었다.
날이 추워서, 이전처럼 땀이 나지도 않고
콧속으로 스며드는 찬공기의 밀도가 머릿속을 탱탱하게 한다.
차가운 피가 조금 따끈하게 데워진 듯한 기분이 나쁘지 않을 정도.
한겨울의 태양은 제아무리 희번덕여도 뜨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더운 얼굴을 번들거리며 내리쏘아대는 태양볕조차 1억5천만 킬로미터를 달려 내게로 향하는 동안 열기를 잃어버리는 까닭일까.
12월 6일.
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내 생일
언제부턴가 미역국을 생략하게 되었다.
엄마가 계실때, 언제부턴가 엄마는 생일기념 용돈을 주셨다.
이제는 그 용돈을 바랄 수가 없게 되었다.
다만, 난 어제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제는 조금 더 괜찮아지겠지요. 엄마도 내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쉬셔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엄마.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