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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Nov 27. 2024

첫 눈, 오늘

_등 따숩고 배부른 겨울 철새의 하루를 기원하며

어제 천변 산책길,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


날이 밝으며 다행히 비가 그쳤기에 밖으로 나섰다.

갑자기 추워진다는 예보만큼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여름내 무성했던, 짧은 가을이나마 알록달록 물들었던 나뭇잎들도 모조리 떨어져버리고 앙상하고 굳은 가지들만 남은 채 묵묵히 닥쳐오는 겨울을 견디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하늘은 쨍하게 파랗고 구름은 불투명 화이트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20여분 걸으면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절로 옷깃을 풀고 음악을 들으며 되도않는 팝송가사를 어설프게 흥얼거리며 걷는 걸음이 가볍다.


어제 오후,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하늘이 검어지더니 우당탕거리며 우박이 쏟아졌다.



오늘 아침,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대로 눈이 내렸다.


첫 눈.



10층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산 아래쪽이 천변이다.

그 앞으로 하얗게 눈 덮힌 농지가 보인다.

추수가 끝난 뒤, 알곡들이 떨어져 있는 저 들판에는 아침이면 식사를 하러 모여든 철새들로 북적거린다.


천변을 걷노라면, 어디선가 줄지어 일사불란한 대열을 이루어 창공을 가르고 지나가는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시끄러운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 보면, 멀리로부터 비행편대처럼 내 머리 위를 날아 저 들판으로 착륙하는 새떼를 목격게 된다.


뜻밖에도, 그들은 조용히 날갯짓만 하는게 아니다.


수십 수백 마리의 그들은 우두머리를 좇으며 끊임없이 대단히 소란스레 ^&*^%$#$*+%$@ 떠들어댄다.


소란스런 소리에 서둘러 카메라를 켜지만, 어찌나 빠르게 날아가는지 좀처럼 그 대오를 제대로 담기가 어렵다..


이 길이 맞던가?

어제 갔던 거기로 가는 거야?

아 배고파, 아직 멀었나?

응, 다왔어...조금만 더 가면 돼!

엄마, 날개 아파요~~

그래, 힘들지, 아들! 고생끝에 낙이 온다잖어, 힘내!

아 그만 좀 떠들어라 자슥들아~

대장, 엊그제 갔던 들판은 그만 가야겠어요! 먹을게 다 떨어졌잖아.

영차, 영차, 얼른 갑시다!

어라, 저기 좀 봐, 벌써 한 떼거리가 자리잡고 있잖아?

그러게 어서 가자고! 아직 저 들판엔 먹을게 충분하니까!

.

.

.


나는 고개를 뒤로 꺾어 그들의 소란스러운 대오를 올려다 보며 아마도, 뭐, 이런 대화들을 나누며 지루한 날갯짓의 무료함을 달래는 것일까, 상상한다.


오늘도 새들은 아침식사를 하러 저 들판으로 몰려들 것인데,

더운 밥은 아닐지언정 충분히 배를 채울 정도는 되기를, 그래서 돌아가는 날갯짓에도 힘이 들어가고

부른 배를 다독이며 또 하룻밤을,

이번 겨울을 든든하게 지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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