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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어느날, 요양원 일기_12

_오늘의 프로그램

by somehow

대부분 스스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어르신들이 모여 계시는 요양원이지만, 매일 똑같은 일상만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밥먹고 자고 기저귀를 살피고 순번대로 목욕을 하는 일정이 반복되는 하루중 한 시간정도씩은 매일 다른 일과가 설계되어 있다.


그것은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이곳의 오전 10시부터 1시간동안은 매일 다른 인지력 향상 혹은 신체능력향상을 목적으로 프로그램이 실시된다.



매주 토요일에는 노래교실이 열린다.


다른 요일에는 미술교실 혹은 민요, 국악교실, 또는 실버 체조교실이 열리는데, 어르신들이 그나마 가장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시간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노래, 음악은 고요하고 지루한 요양원의 일상에 작은 활력이 되는 요소임에 틀림없다.


가장 최근입소하신 한금어르신, 노래 실력과 흥이 남다르시다


최근 노래교실에서는 아주 대단한 가수를 발견했다.

위 사진에 보이는 한금(가명)어르신이 그 주인공인데, 이날의 프로그램이 있기 바로 며칠전에 내가 근무하는 4층이 아닌 2층에 입소하신 신입생이시다. 패션감각도 틀림없이 자신이 선택해서 입은 것임이 분명해 보이는 컬러조합이나 옷스타일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다.


이분은 영어와 한자에 능통하시고 전성기에는 고등학교 선생님으로 수십 년 열정을 다하셨다 한다.

입소 사유는 치매, 그것도 알콜성 치매라고 한다.

여자분이 알콜성치매라니...편견때문인지 얼른 이해가 쉽지 않았지만, 평소 활발한 성격적 특성과 더불어 치매가 심하여 방금전에 한 일이나 언행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특히, 커피를 매우 좋아하시어 하루에 (과장섞어 말하지면) 수십 잔을 먹는데, 그럼에도 잠을 자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한다.


왜 하루에 수십 잔씩 커피를 드시게 하는데요?


내가 궁금해하자, 금방 마셔놓고 안 마셨다고 떼를 쓰며 커피를 내놓으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드리게 된다고 2층 담당 요양보호사가 설명해준다.


노래교실에 처음 참석하신 한금어르신은 노래강사가 틀어주는 반주기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따라 흥얼거리기 시작하시더니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온몸을 들썩거리며 리듬에 맞추어 흔들어댔다. 어르신의 흥을 알아본 강사가 노래 한 곡조를 뽑아달라고 부탁하자마자, 홍도야 우지마라를 걸쭉하게 불러제꼈다.

다른 어르신들은 마지못해 불러준다는 식으로 점잖게 노랫가사를 읊조린다면 한금어르신은 그야말로 흥에 몸을 맡긴 채 즐기는 것이다.

또 하모니카연주 재능도 있다는 것을 안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의 소지품에서 하모니카를 가져다 드리며 연주를 부탁하자, 동요 오빠생각을 멋들어지게 연주하셨다.



위 동영상 속에서 노래하는 주인공은 동은(가명)어르신이다.

그분은 평소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은 치매상태이다.

물론 그렇다고 폭력적이거나 이상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온순하고 얌전하신 분이라, 편하게 대화를 시도하며 일상적인 인삿말을 건네보곤하지만, 그때마다 무척 당황스럽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응...%^&*@#*^%$...

목욕하시니까개운하고 좋으시죠?

음...%$#@*&^&&%%...


대체로 무슨 말을 건네도 전혀 의미가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말씀을 대답하듯 하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말을 걸기보다 그냥 어깨를 한번 쓸어안아드리거나 눈이 마주칠때면 미소지어 드리는 정도로 대응하게 되었다.

바로 그런 분이기에, 나는 동은 어르신이 저렇게 또박또박 노래가사를 멜로디에 맞추어 노래부를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못했었다. 그런데 바로 이날, 강사가 어르신께 노래하시겠느냐고 제안하자 주저없이 애모라고 노래제목을 말씀하셨다.


이렇게 어느 누군가 노래를 시작하여 흥을 돋우기 시작하면 다른 어르신들도 비교적 참여율이 높아진다. 80~9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라지만, 이와같은 상황에서는 긍정적인 시샘이 발동하는 것이다.

쟤가 하는데 나는 왜 못해! 하는 생각이 동력이 되는 것일까.


특히, 아래 사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향미(가명)어르신은 앞선 에피소드에서 자기 방에 들어오려는 다른 어르신을 두들겨패서 내쫒아낸 전력이 있는, 치매가 매우 심한 어르신이시다.


그 당시만해도 그분이 오신다 할 정도로 종종 치매가 심해질 때가 아니면 스스로 거동하실 정도로 활력있는 상태였는데, 내가 못본 4개월 사이에 인지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디고 한다.

그당시에는 목욕하는 걸 끔찍히 싫어해서 한번 안하겠다고 버티면 한여름에도 2~3주씩 아예 씻지 못한 상태로 지내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런 억지를 부리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대체로 멍한 상태로, 눈빛조차 초점을 잃은채였다.


이날의 노래교실에도 선생님들의 이끌림에 그냥 따라와서 앉아있는데, 노래 강사가 노래를 시켜보자 뜻밖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찔레꽃이라는 노래를 끝까지 잘 불러주셨다.


향미어르신, 기억을 잃어가는 중에도 오래전 가슴에 품은 노랫가락은 여전하다

나는 감탄하며 그분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노래를 하는 표정은 무심하지만, 오래전 가슴속에 새겨진 노랫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채 노랫가락을 따라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주 수요일에 시행되는 프로그램으로는 체조교실이 있다.


말그대로 하루종일 침상에서 머무르거나, 움직인다고 해도 방에서 거실정도로만 왔다갔다하는 어르신들이 유일하게 전신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또한 어르신 본인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매일의 프로그램시간이 다가오면 거동가능한 어르신들은 물론 휠체어로 이동가능한 어르신들에게 참가여부를 여쭙는다.


어르신, 오늘 체조교실 있는데 참여하실 거죠?


그럴때면 대답은 두 가지다. 첫번 째는 긍정일 때.


-응! 갈게, 지금 가면 되나?

-그럼, 가야지!


프로그램을 기다리던 분들은 주저없이 따라나선다.

모든 프로그램은 1층에 모두 모여 이루어지기에 시간맞춰 참여하려면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좀 매만져 드리고 워커나 휠체어를 이용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시킨다.


다음으로는 싫다고 하는 경우다.


-아니, 싫어! 오늘은 안 갈래.

-가봤자 재미도 없어!


늘 프로그램에 잘 참여하시던 분들도 어느날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거부할 수도 있다. 그럴 때면, 한두 번 더 우리가 권해본다. 그럼에도 거부의사가 분명할때는 우리들도 더이상 우격다짐을 할 수 없다.


네, 그럼 오늘은 쉬세요, 어르신!


2월5일 수요일신바람체조교실.

강사는 흥겨운 노랫가락에 맞추어 몸을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체조동작을 준비해왔다.

그동작들을 하나하나 분절하여 어르신들께 알려드리고 여러 번 반복을 한 다음, 본격적으로 노래를 틀어놓고 박자에 맞추어 팔다리를 움직여 조금이라도 스트레칭이 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리드한다.


어르신들은 물론, 우리들도 함께 열심히 따라한다.

어제의 체조교실 막바지에는 강사가 준비해온 악기를 꺼내어 돌린다.

나무숟가락 두개를 맞대어붙인 것으로 손바닥에 대고 두드리면 나무숟가락이 악기처럼 소리를 내고 박자를 맞출 수도 있다.


강사가 알려주는 동작도 어렵지않고 악기를 다루기도 쉬워서 모든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강사가 독립적인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 두분을 불러내어 앞에 서서 함께 동작을 하며 노래도 따라한다.


저절로 흥겹게 몸을 움직인다.


체조교실의 막바지, 나무숟가락악기를 이용한 노래와 체조. 왼쪽이 강사, 오른쪽 두분은 활동적인 어르신.


체조교실에서도 한금 어르신(사진의 오른쪽 빨간 스웨터)은 두각을 나타냈다.

숟가락악기를 손에 들고 박자에 맞추어 두드리며 노랫가락을 따라 온몸을 움직이는 동작이 무척 즐거우신 듯하다.


나무숟가락 악기로 노래랫가락 장단을 맞추며 체조한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 어르신들은 마치 정지된 시간속에 희미하게 떠도는 먼지처럼 소리없이 또 지루하게 살고있으나, 이렇듯 24시간중 겨우 1시간 남짓 온몸의 열정을 끌어모아 최선을 다해 움직인다.

체조교실이나 노래교실이 그렇고, 색칠이나 만들기 위주의 미술프로그램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별것 아닌 듯한 색칠하기 동작 또한 어르신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행위임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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