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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how Jun 07. 2017

니스에서 온 편지

_오래된 기억 속에서 찾은 엽서


오늘 우연히, 어릴적 어떤 사진을 찾으려고 오래된 사진들을 뒤적이던 나는 이 엽서를 발견했다.


20여년전 어느해 6월 니스에서 온 엽서@somehow

니스의 샤갈미술관에서 산 엽서의 뒷면에는 그해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동생의 글씨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이 편지를 1996년이거나 1997년 6월이거나 7월의 어느날에 받았을것이다...어렴풋이 그때가 기억나는 듯도 하다.


지금은 물론 그즈음 동생은 내게 무척 자랑스럽고 대견한 존재였다. 어릴때부터 나와 다르게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그시절 이야기를 좀더 하자면 막내인 동생은 나보다  야무지고 머리도 좋아서, 내게 열등감을 느끼게 했으나 그런 사실을 본인은 알지 못 할지도 모른다.

그 작은 소녀는 자라면서도 계속 똘똘하여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전에 이미 광고회사 인턴사원으로도 발탁되는 등 자신의 미래를 향해 분명하고 확고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또한 대학 졸업과 동시에 국내 대형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로 당당히 입사하여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적극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으며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대체로 그러하듯 그전까지 자신이 꿈꾸어왔던 일들에 도전하기 마련이다. 나의 똘똘한 동생도 씩씩하게 회사생활을 해나감과 동시에 종종 해외여행을 다니며 자신의 견문을 넓히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postcard from NICE@somehow

이 엽서는 그녀가 다녀왔던 몇번째 여행중에 보낸 것인지 사실은 기억나지 않으나 내용과 보낸 날짜로 보아 아마도 1997년 6월이 아니었을까...하는 확신이든다. 왜냐하면 엽서말미에 적혀 있듯, 그녀는 그곳에서 나에게 엽서를 보내며, 유럽여행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실제로 나는 그해 겨울이던가 프랑스 파리로 혼자 일주일간 떠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아온 날에는 그날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에게 한표를 찍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이 엽서에서 동생은 언니인 나를, 올해안에 유럽에 보내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나는 이 엽서를 받고 놀랍고도 기뻤던 것같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커리어우먼인 여동생이 별볼일 없는 언니에게 그렇게나 큰 약속을 하다니.....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바보처럼 그약속이 지켜지기를 기대했다. 그즈음...나는 1995년 9월, 대수로울것 없는 단편 소설을 어느 문학상에 응모하여 뜻밖에도 당선되는 일을 겪었다. 그러나 1997년 즈음 나의 일상은 지루하고 막막했으며 망망대해의 한가운데 나뭇잎같은 조각배에 간신히 올라붙은 채 머리위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아래 서서히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던 것같은 희미하고 아득한 시절이었다.

그런시절을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제보니 내 소중한 가족들 덕분이었음을 깨닫는다. 변변치 못한 언니를 이렇게나 생각해준 하나뿐인 동생. 그녀의 마음이 이렇게나 귀하고 소중한 것이었음을 20년이나 지나서야 깨닫다니... 그런데, 그런 동생 덕분에 홀로 파리에서 일주일을 묵게되었을 때, 나는 참 어리석고 황당한 일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일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 운이 좋아서 그정도로 끝난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것같다.


동생은 나에게 파리에 가면 만날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보다 먼저 파리에 갔을 때, 우연히 알게 된 유학생 교포 부부라며 자신이 여행할 때 도움을 받았으며 내가 가면 역시 도움을 줄테니 만나라는 것이엇다.

마침내 파리에서 나는 젊은 유학생부부를 만났다. 외국에서, 홀로 외국에 갔을때 만나게 되는 말이 통하는 한국사람은 반가운 존재였다. 하루이틀 그들의 집에 머물렀고 나중에는 호텔로 방을 옮기며 헤어졌다. 그리고 무사히 혼자 나머지 기간을 보내고 한국에 온 뒤 뜻밖의 일이 터진 것이다. 내가 가져갔던 동생의 카드가 어디선가 불법적으로 이용되어 수백만원 정도의 피해를 본 것이다....나와 동생은 너무나 황당했다.

어떤 이유였는지 정확히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동생이 카드를 주며 유학생부부에게 받은 도움에 보답하는 의미로 렌트카비용 결제를 해주라고 했던것같다...그래서 그 남편이 렌트카센터에서 어떻게 해서 나로부터 그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아내어, 또 어떻게 카드번호를 알아내어 그렇게 한 것이다.....아 나중에야 그들이 상습적인 교포사기꾼임을 알게 되었을 때의 황당함이란... 그후 한동안 나는 한국에 사는 그들의 부모와 가족들을 찾아다니며 피해를 보상받아 보려 노력도 했으나 소득없이 끝난것 같다..나는 바보같이 그렇게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고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라도 동생에게 그 지나간 시절의 한심하고 철 없었던 나의 실수와 부주의함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싶다...


한편으로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정말 그들이 사악한 의도로, 혈혈단신으로 파리 한복판에 떨어진 나를 더 나쁘게 이용해먹으려고 들었으면 무방비 상태의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위로해야 할까...


그 위험천만했던 1997년의 파리_혼자여행 후 나는 2010년 8월, 결혼 9년만에 남편과 함께 파리에 다시 가게되었다. 13년만에 혼자가 아닌 둘이서 파리에 다시 간 것이다.


아마도 뤽상부르공원...겨울풍경1997@somehow

그날 내가 찍은 저 사진의 날짜로 보아 그해 1997년의 겨울, 홀로 파리를 돌아다니는 일주일은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사실 아무런 준비없이 갔던 여행이라 그곳에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른 채 숙소근처에서 길을 잃어버리지않을 만큼만 걸어다니며 구경하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매일 반복했다. 겨울의 뤽상부르공원 풍경은 다시 보니 2010년에 가보았던 여름의 공원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주었음을 짐작할 수있다.


아마도 로댕박물관1997@somehow

그 당시 혼자 파리에 머물때, 파리에서 유학중인 후배를(지금의 남편에게)소개받아 함께 로댕박물관에 갔던 것같다. 그 후배는 하루동안의 귀한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여 나의 파리 유람을 도와주었다. 자신은 '공부를 하느라 바빠 하루밖에 시간을 내줄 수 없어 미안하다'던 말이 기억난다. 그의 여자친구는 이탈리아에서 성악을 공부중이라고 했던 얘기도 생각난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 후배와 전화로 연락해 나와 만나도록 도와준 지금의 남편, 불어도 못하면서 어떻게 혼자 거길 가느냐고 걱정스러워하며 배웅해주던 순간도 떠오른다.


센강의 어느 다리 위에서 찍은 풍경1997@somehow

당시 필름카메라로 찍어 인화한 저 사진들. 다시 폰카메라로 찍어 올리는 지금이지만, 사진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사진에 그 일주일의 감회가 그대로 여전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내가 찍었지만 너무나 그림같다!


 에펠탑 바로 옆에서1997@somehow

파리에 도착한 당일이 12월 12일인 듯한데. 이날 그 사기꾼 유학생부부와 공항에서 만나 무엇엔가 쫓기듯 첫날부터 바쁘게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듯하다. 그리고 저 에펠탑 가까이까지 가서 찍은 사진속의 나는 팔짱낀 모습하며 앙다문 입술하며...난생처음 천리길 멀리 홀로 떠나온 두려움 가득한 초보여행자의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무슨 증명사진찍는 것같은 어색함과 불편함이 저렇게 생생하게 찍힌 사진이라니!


에펠탑이 보이는 개선문 위에서 2010@somehow

푸크크~! 우습게도 2010년 남편과 함께 파리에 갔을때. 그때는 여행의 마지막여정이기도 했으나 심신이 좀 지친상태여서...개선문ㅜ위에 올라간 날 저렇게 에펠탑이 보이는 사진만 수십장 찍어대고는 결국 에펠탑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정말로 두번에 걸쳐 파리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사진이다.




2010년 남편과 유럽여행을 하며 니스에 갔을 때도, 나는 동생이 그보다 13년전에 바로 그 니스의 샤갈미술관에서 산 엽서를 보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전에 미리 그 엽서를 뒤적였었더라면 어쩌면 나도 그해 그 샤갈 미술관에서 동생에게 애틋한 엽서를 보낼 수 있었지도 모르는데...

마치 아주 중요한 삶의 단서를 놓쳐버린 느낌이다.


2010년 샤갈미술관@somehow


사진은 물론 편지나 엽서는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데 매우값진 단서가 된다는 사실을, 바로 20년전 바로 저 샤갈미술관 기념품부스에서 픽업되어 내게 날아왔던 동생의 엽서가 오늘 새삼 나를 단단히 일깨운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생은 나보다 네살이나 어린데도 언니처럼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한부모에게서 태어나도 그렇게 성향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새삼 깨닫는다. 그후로도 나는 동생에게 크고 작은 빚을, 또 마음의 빚을 지고 살고 있다. 이제 동생은 한 아이 엄마로, 외국에서 살고 있는 하나뿐인 내 소중한 존재이다.


오늘따라 그녀가 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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