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이섬

꿈을 앓고, 섬이 피어나는 자리

by 김은령


° 앓이섬 ° _ 김은령



유년 시절에 늘 꿈을 앓았다.
세상의 끝에는 우주를 품은 고래가 있고,
그 위에는 한 권의 펼쳐진 책이 놓여 있었다.
고래의 책장은 은하수가 되어 흘렀고,
페이지마다 빛의 문장이 반짝였다.

미지의 꿈이 숨 쉬는 저편,
그곳에서 나의 섬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이름 없는 섬, 그러나 앓는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섬.

한 소년이 침묵이 내려앉은 고래의 숲에 고요히 앉아 있다.
그의 발밑에는 바오밥나무의 어린 뿌리가 꿈틀거렸고,
하늘에는 장미의 향이 노을처럼 번져 있었다.
어린 왕자가 떠난 별,
그 별이 내게로 와 섬이 되었다.

그 섬에서는
시간이 물결처럼 흐르고,
기억이 구름처럼 흩어졌으며,
빛이 머물렀던 자리에서는 꿈이 피어났다.

나는 그 섬을 바라보며 자랐다.
고래의 숨결은 바다를,
책의 숨결은 꿈을,
나는 페이지마다 이야기를 엮었다.

그 섬은—
우주의 심연을 유영하는 고래이며,
공중정원의 기억에 켜켜이 쌓인 침묵의 책이며,
바오밥이 하늘을 향해 뿌리내리는 뒤집힌 대지이며,
노을을 향한 어린 왕자의 적요이며,
부르는 순간 꽃이 된 단 하나의 장미이며,
아직 쓰이지 않은 한 문장이었다.

그 섬에 노을이 내리면,
모든 별들이 나무 위로 떨어지고
소년은 책을 덮는다.
그러나 책은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그 여백에서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 꿈의 장을 연다.

그때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
나의 언어는 현실의 끝이 아니라,
그 섬의 노을빛과 어둠에서 비롯된 것임을.

그 섬의 심연은 지금도 내 안에서 낮은 빛으로 숨 쉬고,
나는 여전히 그 노을의 잔광을 따라
한 문장, 한숨씩 써 내려간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의 글은 그 섬으로 돌아간다 —
빛과 어둠이 맞닿은 경계,
나를 앓게 하고, 다시 살게 하는
나의 앓이섬으로.




° 앓이섬 ° _ 김은령


‘앓이섬’은 나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기억의 대지이며,
언어가 태어나기 전 머물던 몽상의 뿌리다.

이 섬은 ‘앓이별’에서 내려온 빛이 땅의 숨으로 변한 자리다.
그곳에서 꿈은 형태를 얻고, 상징은 몸을 갖는다.
고래는 우주의 호흡,
책은 그 호흡을 기록하는 언어의 표면이다.

섬의 바오밥은 성장의 고통을,
장미는 사랑의 상처를,
소년은 순수의 기억을 품고 있다.
그들이 모여 나의 ‘앓이섬’을 이루었다.

앓는 섬은 지금도 내 안에서 자란다.
노을빛이 들면, 나는 그 섬으로 돌아가
다시 한 줄의 문장을 피운다.
그 문장이 곧 나의 존재이며,
나의 앓음이 피어난 흔적이다.
이전 08화낡은 서랍 속의 향수(鄕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