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태우는 비상

찰나를 태우는 궤적의 피부 : 날개

by 김은령


헤르만 헤세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



나비는 삶의 최고로 화려하고 소중한 상태에 머무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또 가장 창조적이고 죽음에 대비하는 단계에 이른 동물이기도 하다.


나비는 오로지 사랑하고 잉태하기 위하여 산다. 그러기 위해 나비는 보기 드물게 화려한 옷으로 가득 치장을 하고 자기 몸보다도 몇 배나 더 큰 날개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날개에 새겨진 줄들과 색채, 비늘과 솜털에는 존재의 비밀이 아주 다양하면서도 섬세한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나비는 오로지 자신의 현재를 집중적으로 산다.


크고 화려한 나비들을 관찰할 때마다 뭔지 알 수 없는 유년 시절의 희열 같은 것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었다. 숨 막힐 듯한 희열이었다.


나비의 마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말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에게 나를 이끌어 가는 작은 문, '놀랍고 경이로움'에 이르는 숭고하고도 지칠 줄 모르는 길을 나는 따라갔다.






찰나를 태우는 궤적의 피부


° 찰나를 태우는 궤적의 피부 ° _ 김은령





나비는 더 이상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찰나를 태우며 남긴 궤적, 그 현재이다






찰나를 태우는 비상


나비를 바라볼 때마다
언제나 먼저 유년의 희열에 닿는다.
그것은 기억을 더듬는 감정이라기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종류의 기쁨이다.
이미 알고 있던 세계가
다시 처음처럼 열릴 때 느끼는 떨림.

나비의 날개 전체를 보기보다는
오히려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늬는 하나의 문처럼 보인다.
선과 색, 비늘과 결이 겹쳐진 그 표면은
무언의 질문을 품고 있다.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가,
이 경이를 통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애벌레는 한 번 죽는다.
인형의 시간은 정지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이미 다른 삶이 형성되고 있다.
나비는 그 죽음을 통과해
껍데기를 벗은 존재다.
그래서 나비의 삶은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약속에 가깝다.

그 약속은 길지 않다.
대신 밀도가 극단적으로 높다.
나비는 미래를 축적하지 않고
과거를 붙들지 않는다.
오로지 지금이라는 순간을
몸 전체로 사용한다.

그래서 비상은 도피가 아니다.
살기 위한 움직임도 아니다.
그것은 찰나를 태우는 선택이며
존재가 자신을 가장 환하게 드러내는 방식이다.

날개는 형상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간 궤적의 피부이고,
무늬는 장식이 아니라
경이가 남긴 흔적이다.

나비는 지금을 산다.
아니, 지금을 태운다.
그리고 그 연소의 자리에서
다시 한번, 우리를 경이의 문 앞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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