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거꾸로 뒤집어서 흔든다면

by 김은령


도망치는 것들, 드러나는 본성에 대하여



얀 마텔 『파이 이야기』



그래도 동물원에서 달아나려는 동물들은 있게 마련이다.

달아나고 싶은 이유가 뭐든, 미쳤든 아니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동물은 °다른 곳으로°가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달아난다. 자기 영역 안에 두려움을 주는 것이 생기면—적의 침입, 우두머리의 공격, 놀라게 하는 소음—즉시 도망칠 태세를 취한다.

만일 도쿄를 거꾸로 뒤집어 흔든다면, 와르르 쏟아지는 동물에 모두 깜짝 놀랄 것이다. 고양이나 개만 떨어지는 게 아니다. 보아뱀, 코모도 드래곤, 악어, 피라니아, 타조, 늑대, 오랑우탄, 멧돼지……. 이런 동물들은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 동물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 도시를 거꾸로 뒤집어서 흔든다면 ° _ 김은령





거꾸로 뒤집어서 흔든다면




도시를 거꾸로
뒤집어서 흔든다면
빗방울처럼 쏟아진다.
도망친 동물들,
숨겨온 본성의 파편들,
스스로 지워버린 이름들.

비를 피하려
우산을 펼친다.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얇은 천 한 장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다.

그 우산 위에
짐승들이 떨어진다.
살결, 울음, 두려움 —
달아난 야성의 그림자가
천의 표면을 뒤흔든다.

우산 아래 서 있는 사람의 마음에도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다.
도망친 것은
짐승이 아니라
오랫동안 숨겨 두었던
자기 자신이었음을.

도시는 계속 내리고
우산은 점점 젖어가고
그 아래,
감춰온 본성이
스스로의 그림자를 서늘히 드리운다.




본성은
마주하기를 꺼릴수록 더 또렷해지고,
감추려 하면 그림자가 길어진다.
숨기려는 마음과 드러나려는 힘이 한순간 부딪힐 때,
우리는 스스로의 뒷면을 서늘히 바라보게 된다.




° 도시숲에 숨어들다 ° _ 김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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