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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 some Mar 03. 2023

내가 나를 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

그걸 우리는 나이라고 부르죠

 요즘 잘 주무시고 계신가요?


 나는 원래 지구 어디에서든 머리만 닿아도 잠이 드는 편이었는데(시차적응이 다 뭐야), 최근 들어 '불면증'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느껴보고 있다. 걱정할 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아무리 애를 써도 잠을 잘 수 없는 밤들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불면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더 쉽지 않은 것이라는 걸 이제야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나를 부러워하던 친구들에게 '내 잠 좀 나눠주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했던 기억이 무색하게 이제는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고통이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일단은 카페인. 불면증을 모르던 시절에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커피 마시는 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점점 카페인 마감시간이 빨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오후 6시로, 그리고 이제는 오후 3시를 기점으로 그 이후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있다. 참다 참다 정 마시고 싶을 때에는 아쉬운 대로 디카페인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요즈음 디카페인 커피를 파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건 꽤 반가운 일이다. 양 자체도 기존의 무제한에서 이제는 하루 3잔이라는 규칙이 생겼다. 아마, 앞으로는 더 많이 줄이게 될 것 같다.


 낮시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잠을 쉬이 이루지 못하는 날에는, 외부의 힘들을 빌려보기도 한다. 라벤더 오일이 숙면에 좋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수면제와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기사를 읽기도 했다. 겨울에는 가습기에 한두 방울 떨어트리기도 하고, 향초로 대신할 때도 있다. 캔들워머를 사면서 배송료도 아낄 겸 커다란 향초도 라벤더 향으로 함께 주문했었다. 이상하게 향이 약해서 그제야 상품평을 읽어보니 다른 구매자들의 평도 향기가 약하다는 평 일색이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나에겐 라벤더오일이 있으니 다행이다. 오가닉 라벤더 오일을 직접 뿌리는 쪽이 오히려 더 안심이 되기도 한다. 라벤더 오일을 몇 방울 떨어트리고 캔들워머를 켜면, 따듯한 온기를 타고 라벤더의 향이 짙게 퍼지는 걸 느끼다가 잠들 수 있다.


 잠에 잘 들지 못하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은지,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수면유도 영상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다. 물론 나는 의심이 많아서 한 번도 그 영상들을 틀어놓고 잠이 든 적은 없다. 이런 알 수 없는 음의 연속이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정말 4시간 자고도 8시간 잔 것처럼 푹 잘 수 있단 말이야? 이걸 켜놓고 자기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어떤 영상들은 틀어놓고 잤더니 옛 연인과 재회를 했다는 간증 댓글이 달려있기도 하다) 영상 길이가 7, 8시간이나 되는 걸 보면 만드는 입장에서도 쉽진 않겠지만 긴 시간 들으면서 잠드는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괜찮은 일인 것도 같다.


 유튜브에서 나를 잠의 문턱으로 이끌어 주는 건 이런 수면유도음보다는 주식 영상들이다. FOMC가 어쩌구 파월이 어쩌구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 어느새 잠이 솔솔 오는 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외국어가 그럴 수도 있고, 어느 플레이리스트처럼 빗소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나는 빗소리를 들으면 언젠가 비 오는 날 텐트에서 자던 기억이 떠올라서 더더 잠이 더 안 오더라. 밤새 떠내려갈까 봐 걱정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 태평양 한가운데 섬의 바닷가 캠핑장이었는데, 이대로 떠내려 가면 물고기밥이 되거나 국제미아가 되어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는 불안감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는 지경에 이르면 약을 먹기도 하는데 처방을 받은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내 경우 가뜩이나 아침잠이 많은데 아침에 얼른 잠이 깨지 않고 더 오래 몽롱한 것 같아서 가급적 필요할 때만 먹으려고 하고 있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내 몸을 위해 챙겨줘야 할 부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기분이다. 이미 짐작하고 있었던 피부의 탄력 저하나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하는 흰머리는 그리 놀랍지도 않다. 의외의 발견은 일상에서 수시로 느껴진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확실히 소화도 덜 되는 것 같고, 집안 내력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술도 약해졌다. 주변의 언니오빠들의 말처럼 머지않아 노안이 시작되면 조금 더 이상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가 내 몸의 이야기에 너무 소홀한 건 아니었나 싶은 생각들이 들기도 한다. 나는 원래 잘 체하는 사람인 걸 스스로도 알면서 참 무신경하게 아무거나 양껏 먹었구나 하는 생각들을 늦은 밤 속 쓰림에 잠 못 이루며 해보기도 하고, 알고 보면 술을 그리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음에도 자주 그리고 많이 마시는 걸로 그것을 늘려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마 전 숙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누워있는 채로 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간을 물려받은 우리 남매는 만나면 술 한잔씩 곁들이곤 하는데, 다음날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보고 가족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꽤 여러 잔이긴 했지만 겨우 맥주였다고) 최근 나에 대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 나는 평생을 내가 밖에서 나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집순이라는 것도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좋게 이야기해보자면, 하루 동안 나를 위한 의식(리추얼)이나 규칙(루틴)이 점점 늘어간달까. 커피는 하루 3잔까지만, 3시 이후에는 마시지 말 것. 배가 고프지 않은데 끼니 때라고 억지로 먹지 말 것. 불편한 사람과 밥을 먹지 않을 것. 특히 자기 전에 먹는 건 급체와 역류성 식도염으로 가는 급행열차임을 잊지 말 것. 술은 맥주 3잔까지만. 졸리지 않아도 자정 전에는 잠을 청할 것. 자기 전 조명을 낮추고 라벤더 향초를 켜둘 것. 침대에 누워서는 핸드폰을 보지 말 것 등.


 그 누구보다 오랜 시간 함께 했다고 해서 내가 나를 온전히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더라는 것은 진실이다. 아직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스스로의 면면을 마주할 때마다 가끔은 흠칫 놀라기도 하고 가끔은 지겹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마냥 사랑스럽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닌 타인과 긴 시간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도 해보기도 한다. 나도 내 스스로를 아직 다 이해하지 못해 맞춰주는 게 이렇게 힘든데, 다른 사람과 서로를 맞추어가면서 살아간다니.. 물론 한편으로는, 잘 맞는다면 두 배로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내 수발을 드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질 정도이므로 나에게 충성을 다하는 걸로. 그렇게 다른 사람보다 내 자신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점점 더 늘어간다. 그래도 내 허물을 내가 안고 가는 일이고 적어도 내 스스로를 상처 입히진 않을 테니까, 그 관심과 노력이 허무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아직도 나는 내가 낯설다. 내가 나를 이만하면 다 안다 싶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스무 살에는 20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서른 살에는 30년인데도 부족하군 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어쩌면 칠순잔치에서도 나는 나를 아직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계속 새로울 스스로에게 두근두근 하겠군.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본 버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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