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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아침의 단상

해마다 어김없이

by 이현

올해도 어김없이 내 생일은 돌아왔다. 지난 생일로부터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365일을 보내고 딱 맞춰 돌아온 날. 어느새 40번째다. 태어나서 이만큼 나이를 먹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나이를 먹는 것도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지고 있다. 반면에 생일이라고 축하받는 것은 늘 어색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생일부터는 주욱 그래왔다. 일반적으로 축하를 받는 날이라고 여겨지는 날들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내가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그게 안 되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미련을 두지 않고 지내는 편이다. 조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들의 생일에 초대되어 함께 보낼 기회가 종종 생겼다. 케이크에 초를 꽂아 불을 붙여 노래를 부르고, 노래가 끝나면 다 같이 입 모아 후- 촛불을 끄고, 옹기종기 둘러앉아 케이크를 나눠먹는다. 생일을 맞은 조카는 본인이 주인공(스스로 주인공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임을 만끽했고, 너무 어려 생일이 뭔지 알기나 할까 싶은 조카도 그날의 입장은 전과는 매우 달라 보였다. 초에 불을 붙였다 끄고 붙였다 끄기를 세 번쯤은 반복해야 끝이 났다. 오래전, 어렸던 나도 그랬으려나.


부모님께 굳이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내 생일에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이서 케이크를 앞에 두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었냐고. 내가 많이 좋아했었냐고. 나도 주인공처럼 기고만장했었냐고. 엄마, 아빠에게는 내 생일을 떠올릴만한 추억이 있으시냐고. 첫째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두 번의 생일이 있었고, 첫 번째는 돌잔치였을 테니 넘기더라도 두 번째 생일에는 세 가족의 조촐한 파티가 있었냐고. 이제 와서 그런 여유 같은 건 없었다고 듣는다 해도 서운하거나 아쉽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조금 궁금했을 뿐. 참고로 전에 앨범을 뒤적거리다가 어린 동생과 내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찍힌 사진을 본 적은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 내 생일은 늘 방학 중에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는 서툴렀다. 그래서 친구를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해 본 적도 없다. 생일선물을 받은 적도 있었겠지만 기억나는 선물이 단 하나도 없다. 그래서인지 생일이라는 것에 점점 더 의미를 두지 않으며 살아왔다. 방학 중에 생일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다.


아마 생일이라고 챙김을 받고 싶어진 것은 19살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축하받고 싶었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지난날을 이제라도 하나하나 챙겨 주고 싶었다. 그동안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더해져 생일은 연인 사이에 가장 중요한 날들 중 하나가 되었다. 연애가 중단된 시기에 생일이 겹치면 자존감이 발 밑으로 추락해 우울하고 서러웠다. 아무도 뺏은 적 없는 행복을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정의 에너지가 넘쳤던 20대를 지나 언제부턴가는 생일에 축하를 받든 그렇지 못하든 어느 정도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내공이 생겼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아니 어쩌면 0시가 되자마자 받는 생일 축하 메시지부터 시작해서 각종 기프티콘 선물들, 근사한 식사 테이블 정중앙에 빛나는 생일케이크, "고마워요, 행복해요." 같은 말들. 이런 것들로 그날의 기분을 롤러코스터에 태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타인의 행복의 잣대를 굳이 나에게 대보지 않았다. 생일이 주말일 때보다 평일일 때 더 좋았다. 평소처럼 출근해서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지만 오늘만 유효한 사소한 비밀 하나 가진 듯 지내는 느낌이 즐거웠다.


내 생일을 기억해 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다가오는 행복을 마중하는 기분이 들었다. 함께 사는 남편의 축하를 시작으로 부모님, 동생들, 올케, 조카들의 축하를 받고 나면 그것으로 조금 더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는 게 바쁠 텐데 잊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 주는 몇몇 친구들의 축하는 보너스라고 생각했다. 로또 1등 당첨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천 원짜리 지폐를 주운 날, 나에게 생일은 그런 날과 비슷한 모양이다. 그리고 점점 확실해진다. 생일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다가도 분명 다른 날과는 다른 행복이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이 축하받지 못해 불행한 것이 아니라 이만하면 충분해서 행복하다는 사실이.


오늘은 내 생일. 조카들의 사진으로 도배될 때가 아니면 보통은 조용한 가족 단톡방이 아침부터 시끌시끌하다. 축하한다는 말,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 아가들의 혀 짧은 노랫소리, 몸으로 만들어 보내는 하트. 내 마음속 가장 오래된 편안한 친구의 따뜻한 말과 선물. 그들로부터 축하받은 오늘, 아주 행복한 날을 보내고 싶어졌다. 고마운 사람들로 인해 오늘이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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