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도서관 일대기

책이 있는 공간을 흠모하다

by 이현

도서관에 대한 가장 최초의 기억은 언제일까?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확실한 기억.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지금도 비슷한지 모르겠지만 내가 중학생이던 1990년대에는 학기마다 채워야 하는 봉사시간이 있었는데 그 당시 지역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이 가능했다. 여름방학 때 친구들 세네 명이 모여 한여름 그늘도 없는 시골길을 30분쯤 걸어서 도서관에 도착하면 유독 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봉사활동이고 뭐고 일단 더위부터 식혀야 했다. 나는 운동장에서 체육수업만 받고 나면 항상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였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빨개지는 얼굴이 너무 싫었는데 "그거 별거 아니야."하고 그때의 감수성 예민하던 어렸던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도서관 직원에게 그날 우리가 해야 할 봉사활동에 대해 설명을 듣고 일을 시작했는데 우리는 주로 도서관에 비치된 책에 바코드 라벨을 부착하는 작업을 했다. 도서관 책장 사이를 옮겨 다니며 나를 포함한 여자 아이들이 바닥에 앉아서 라벨을 하나하나 붙이던 모습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대단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처럼 신중하고 집중해서 작업을 했었다.


갑자기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도서관은 1990년 12월에 개관을 했다. 그랬다면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초등학생-아니 그때 당시에는 국민학생이었다- 때에도 도서관을 가본 적은 있었을 것 같다. 마을에 도서관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작은 시골마을의 축제 같은 일이었을 텐데 한 번쯤은 가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살던 집이 도서관 근처였는데 너무 멀어서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집에 오며 가며라도 한 번은 갔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기억하지 못한 것들이 아쉽고 아쉽다. 어린 시절 적었던 일기장이 남아 있다면 아마 마을에 생긴 도서관에 처음 갔던 날은 꼭 기록으로 남겼을 것이라고 어린 나에게 속절없는 기대를 해본다.


중학생 때에는 국사와 세계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을 좋아해서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 역사 자료를 찾아 공책에 필사하듯 적고 외웠던 기억도 있다.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두꺼운 백과사전에 기도 죽지 않고 색인표에서 필요한 자료의 페이지를 기어코 찾아내 공책에 또박또박 글자를 빼곡하게 쓰던 그때 그 아이를 기억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가끔 주말에 공부하러 열람실을 이용했던 것 말고는 도서관에 갈 일이 없었다. 꼭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싶을 만큼 책과 담을 쌓은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말은 아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시작하고, 시간을 흥청망청 쓸 수 있고, 친구도 별로 없던 나에게 학교 도서관만 한 놀이터가 없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서가에 꽂힌 그 다채로운 책 표지만 봐도 즐거웠다. 특히 일본 소설들의 제목이 귀엽고 어감이 좋아 일본 문학 코너에 자주 머물렀다. 무라카미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를 비롯해서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반짝반짝 빛나는>, <당신의 주말은 몇 개입니까>이라든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하드보일드 하드 럭>, <티티새> 등. 예전에는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그 후에 누군가와 생각이나 의견을 나눈다거나 혼자 기록을 한다는 개념이 나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 당시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그때 그 책이 맞나 싶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것 같지만 아마 그걸 읽었던 당시의 나에게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내 안에 남아 있겠지 하며 달래 본다. 간행물 코너에서 시네 21이나 까사리빙 같은 잡지를 훑어보며 낮잠을 자던 때도 기억이 난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KBS 클래식 FM 채널의 '세상의 모든 아침'을 시간 맞춰 듣기도 했고, 도서관 계단에 앉아서 해 질 무렵의 하늘을 오래 지켜보기도 했다. 도서관을 이용한다고 해서 꼭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로서 증명하며 살아왔던 때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책은 월급날-그나마도 분기에 한 번쯤-에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교양 있게 기분 내는 아이템이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나 종각 영풍문고를 시간 날 때마다 다녔다. 책을 사려고 갔다거나 특별히 찾는 책이 있어서 갔다기보다는 그냥 책 구경을 하는 게 좋아서 갔다.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 사람들 눈에 띄게 매대 위에 층층이 쌓아 놓은 신간도서들, 이 무대의 센터인 스테디셀러들, 내일도 출근하겠지만 일 년쯤 뒤에는 퇴사하고 어디든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한 자락 희망을 쥐고 살펴보는 여행에세이들,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지만 얇은 책들이 다채로운 색깔띠처럼 모여 스펙트럼을 만드는 시집코너, 베이킹을 해볼까 뜨개질을 해볼까 컬러링북을 시작해 볼까 취미생활 하나쯤 갖고 싶게 만드는 실용도서들, 내가 다 알려줄게 나처럼만 살면 돼 외치는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 바닥에 앉아 책 읽는 어린이들로 북적북적한 어린이 서적 코너 등 대형서점은 학교를 벗어나 사회인이 된 나에게 또 다른 도서관이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팟캐스트 전성시기였던 2010년대에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찐팬으로서 지금은 없어진 합정역 6번 출구 방면에 있던 '빨간책방카페'도 자주 다녔다. 알음알음 출판사에서 진행하는 북토크에 참석했던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서울을 떠나 용인으로 이사한 지 벌써 햇수로는 9년째이다. 그 사이 퇴사, 결혼, 재취업 등 굵직한 일들을 겪었다. 이사 후 점차 동네 생활권의 편한 맛에 길들여져 지금은 도보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좋다. 대형서점, 북카페, 북토크 같은 것들과 멀어졌고 돌고 돌아 시에서 운영하는 지역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이 되었다. 의도하건 아니지만 도보 가능한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건 행운이다. 동네를 찬찬히 살피며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도서관을 처음 발견했을 때, 내가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되겠구나 그런 마음이 들었다. 서울에서 사회인으로 지낼 때 나는 누가 그러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늘 이방인의 마음으로 겉돌며 살았다. 우리 집 대신 기숙사 또는 원룸, 우리 동네 대신 지하철역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사는 공간이나 지역에 정을 붙이지 않았다. 지금의 집을 구하고, 지금의 동네에서 지내면서 정을 붙이고 산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알게 됐다. 골프장 둘레길 자락에 위치해 창밖으로 나무가 많이 보이는 예쁜 도서관이 참 좋았다.



예전에 조금씩 사 모았던 책들이 거실 한 면의 책장에 가득 꽂혀 있고, 집에서 아끼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책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있는 책도 정리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편하게 이용가능한 도서관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 내가 읽고 싶은 책은 회원증만 있다면 대부분 도서관에서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고, 가끔 찾는 책이 없더라도 도서관 상호대차시스템을 이용해 관내 타 도서관에서 대여할 수 있고, 희망도서로 신청하여 새 책을 가장 먼저 받아 읽어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본 적은 없지만 종종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저자와의 만남이나 강연, 글쓰기 모임 등도 참석할 수 있다. 이 좋은 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니 아쉬움이 크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지금부터라도 도 열심히 즐기는 중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요즘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면서 나에게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말하고 싶은 마음을 늘 품고 사는 사람으로서 이참에 도서관에 대한 글도 한번 적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썼고, 조촐한 나의 도서관 일대기를 투박하게라도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도서관에 얽힌 경험들을 톺아보며 즐거운 도서관 생활이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작고 별 것 아닌 것들이 마음속에 피어나는 곳, 나의 아지트 도서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생일 아침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