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운이 좋았습니다.

패미리트립to유럽 5화

by sincerely yours

여행지에서 날씨는 중요하다. 나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쉬운 마음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흐린 날씨를 아쉬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비우는 데에는 여전히 시간이 걸린다. 엄마는 한국에서부터 이번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산악 열차를 타는 것이었고, 왕복 열차 비용은 비쌌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 타는 거 꼭 시야가 좋은 맑은 날이길 바랬다. 뾰족한 융프라우요흐의 봉우리를 꼭 보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히 차려진 조식을 먹고 서둘러 인터라켄 기차역으로 갔다. 창구의 대기 줄이 길어서 바로 다음 열차는 타지 못하고 조금 더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티켓은 미리 구매하여 바우처와 티켓을 교환하고 시간표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들었다. 한 열차에 많이 욱여넣어 태우지는 않는지 대부분 자리에 앉아서 가는 분위기였다. 오후 일정이 기차 시간 때문에 어그러질까 봐 걱정이 많은 딸내미 가이드는 무사히 네 가족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고 앉은 후에야 한시름을 놓았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올라가는 산악열차는 약 5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 아주 천천히 가는 기차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였다면 이 열차가 몇 년도에 생겼고부터 시작해서 온갖 질문을 받아줬을 텐데 딸내미 가이드는 아는 게 없어 머쓱했다. 그저 함께 감탄만 할 뿐. 창 밖 풍경은 연두색이었다가, 황토색이었다가, 흰 눈이 등장할 무렵 내려서 열차를 한 번 갈아탔다. 차가워진 공기가 신기했다.


설산을 앞에 두고도 추워봤자 얼마나 춥겠어? 하던 건방진 생각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에 사라졌다. 사방으로 날리는 머리카락과 미끄러운 바닥. 그러니까 우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에 융프라우요흐가 아주 선명하게 보였고, 조상신께 감사드리는 마음이 갑자기 생겼다.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포즈로 빠르게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내부로 들어와 열차 티켓을 사면서 받은 신라면 쿠폰으로 몸을 녹였다. 백인 점원들이 쉴 새 없이 컵라면에 물을 붓는 장면은 융프라우요흐 관광국과 신라면의 관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광경이었다.


사실 꼭대기에서 딱히 할 건 없었고 우리는 아이거글렛쳐 역에서부터 클라이네샤이덱 역까지 걸으며 짧게나마 하이킹하는 기분을 내기로 했다. 풍경은 멋졌지만 경사가 심하고 돌길이 많아서 딸내미 가이드는 조금 당황했다. 내가 상상했던 건 하이디 느낌의 가벼운 산책이었는데. 열차 티켓만 있으면 아무 역에서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기 때문에, 기차를 타고 조금 더 내려온 뒤(초록초록이 보일 때쯤) 걷는 것을 추천한다. 계속해서 비현실적인 풍경이 이어졌기 때문에 눈에 익숙해져서 좋은 줄을 잘 몰랐다.


패러글라이딩 예약 시간까지 조금 여유가 있어서 라우터브루넨 역에 내렸다. 라우터브루넨에는 높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멋진 폭포가 있다. 한적한 동네 길을 걸어 폭포 아래 벤치로 가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라우터브루넨 역 안의 마트에는 스타벅스 자판기가 있어서 잠시 고향 도시의 맛을 보았다.


다시 인터라켄으로 돌아와 패러글라이딩 업체와의 미팅 장소에서 셔틀버스를 탔다. 뛰어내릴 높은 곳으로 가면서 기본적인 설명을 듣고 함께 뛰어내릴 짝을 정했다. 기억할 것은 단 하나. "안찌마!!" 다리가 바닥에서 뜨는 기분이 들어도 계속 발을 구르라는 것이었다.


버스는 한도 끝도 없이 계속 올라가고, 내가 이걸 왜 신청했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 무렵 도착을 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도 문제인지, 바람이 너무 없어서 원래 예정된 출발지에서는 비행이 불가하다고 해서 조금 낮은 곳으로 다시 이동했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아쉬운 연기를 했다. 하지만 이동한 곳도 충분히 높은데..? 깎아지는 언덕길을 내 뒤에 붙어있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 의지해서 달려야 했다. 나의 파트너는 크루 중 가장 막내였는데, 바람이 약해 한 번 실패하고는 내가 덜 뛰어서 그랬다고 말해 기분이 상했다. 안 그래도 겁나는데 내가 잘못했냐. 다른 사람들은 얼마 안 뛰어도 잘만 날아가더만. 이렇게 많은 말은 한국말로 가슴에 쌓아두고는 두 번째 시도에서 무사히 뜰 수 있었다. 와, 생각보다 너무 높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높은 데가 너무 무서웠다. 가슴이 뻥 뚫리기보다는 무서워서 눈을 자꾸 감았다.


높은 곳에서 보니 호수 사이에 있다는 뜻의 인터라켄이 명확하게 보였다. 바람을 타며 유유히 비행을 하다가 소위 "빙글빙글"이라고 말하는 그야말로 빙글빙글 팽이처럼 돌면서 급강하를 몇 번씩 하는데, 너무 어지럽고 무서웠지만 레저를 즐기는 타입인 척 하며 그만하라고 말을 못 했다. 아빠의 파트너는 "빙글빙글 얼마나?"라고 물어보았고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아빠는 "미디엄!"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대충 뜻은 통했다는 후일담. 숙소가 있는 아델보덴으로 이동하니 해가 모두 져서 깜깜했다. 한국인이 아니면 곧 문 닫을 것만 같은 호텔에서 룸서비스를 시켜 저녁을 먹고, 어제와는 사뭇 다른 푹신한 고급 침구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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