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7.
우리는 370번 만나고 1212일째에 결혼했다. 둘 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서울에서 취직했다. 30년 넘게 부모님 품 안에서 편하게 살던 우리는 결혼과 함께 첫 독립을 이루었다. 각자 여러 번에 걸쳐 짐을 옮겼지만 사야 하는 것들, 집에서 가져와야 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신혼여행지 하와이에서 사 온 KONA 커피 원두로 첫 커피를 내려 마셨다. 친구들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핸드드립 세트를 처음 개시했다. 요령 없이 드립 했지만 원두가 신선해서인지 향과 맛이 꽤 훌륭했다.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아라비아 핀란드 빈티지 잔은 스크래치가 꽤 많은 B급 상품이었지만 대신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했다. 덕분에 커피를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집에서 해 먹는 첫 번째 요리는 카레였다. 아직 한 번에 한 가지 이상 요리는 버거워서 주로 한 그릇에 해결되는 간단한 것들을 먹고 있다. 고기 대신 새송이 버섯을 구워 토핑으로 먹었다. 버터가 없어서 아쉬웠다.
금요일은 일찍 퇴근하는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기로 했다. 집에 들어가니 땀을 뻘뻘 흘리며 김치를 볶고 있었다. 김치볶음밥과 어묵탕은 (맛이 없기 힘들지만) 꽤 맛있었다.
한 그릇 요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기는 '지승민의 공기'에서 구입했다. 면기를 사러 매장에 갔다가 파스타 용으로 구입했는데 아직 파스타는 한 번도 담지 못했다.
집에 공구가 없어 아직 벽에 못질을 하나도 못했다. 갈 곳 잃은 앞치마와 달력을 위해 다이소에서 마그넷을 샀다. 개구리, 돼지, 곰돌이로 구성된 것이 꽤나 귀여웠다. 하와이에서 사 온 마그넷 두 개와 happily ever after.. 카드, 집에서 가져온 달력이 냉장고에.
집이 아직 엉망이라 주로 먹는 사진만 찍게 되었다. 한 주를 보내고 토요일 아침. 아파트 상가에서 no버터, no밀가루 스콘 두 가지를 사보았는데 생각보다 촉촉하고 맛있어서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얼그레이와 옥수수 스콘이었다.
집이 좁다 보니 책상 없이 식탁에서 많은 것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살림을 마련할 때에도 식탁을 가장 신경 써서 고르게 되었는데, 팔에 닿았을 때 차가운 유리 없이 부드러운 나뭇결을 느끼고 싶었다. 원형으로 된 원목 식탁이 로망이었지만, 원형 식탁이 생각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 아쉽지만 사각형으로 맞춤 제작했다. 원목이라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아직까진 너무나 만족스럽다.
신혼 2주 차. 아직은 문득문득 내가 내 방 놔두고 여기에서 뭐 하는 거지, 싶을 때가 많다. 퇴근하고 집에 가도 쉬는 기분이 들지 않고 늘 해야 할 집안일이 머릿속에 가득하지만 낯설었던 집을 조금씩 우리 집으로 바꿔가는 느린 과정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