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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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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erely yours Nov 30. 2019

1.

2019.11.30.

바짝 마른 사람이 입어야 태가 나는 옷이 웨딩드레스라고 들었다. 우린 둘 다 원래도 동글동글 통통한 편이었는데, 연애를 하면서 조금씩 살이 더 붙었다. 나는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으로 이직한 탓도 있었다. 2018년 11월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2019년 2월에 '다이어트의 신' 어플을 다운받았고, 4월부터 점심 도시락을 쌌다. 4월부터 10월까지 여섯 달 동안 하루 1200칼로리를 넘지 않으려고 애'는' 썼다. 결과적으로 각자 사이좋게 6kg씩 감량하고 예식을 치렀다. 


둘이 함께 살기 시작하면 야식 때문에 정말 쉽게 살이 찐다는 소리는 누누이 들어왔지만, 평일에 일찍 자는 우리는 야식 먹을 새가 없었다. 그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야 하는 직장에 다니고, 나는 그냥 잠이 많다. 역사적인 첫 치킨은 어느 금요일 밤, 야식의 역사는 교촌치킨의 허니콤보로 시작되었다.


한 사람이 새벽에 출근하다 보니 주말에만 아침에 얼굴을 볼 수 있다. 흰쌀밥에 갓 끓인 국은 아니지만 이틀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아침을 챙겨 먹으려 한다. 여의도 IFC 몰에 있는 '그라놀로지'에서 그래놀라를 구입해 즐겨 먹고 있다.


원래는 깔끔하게 벽걸이 TV을 설치하려고 했는데 집이 생각보다 좁아서 고민이었다. TV다이라도 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비싸고 예쁜 삼성 the sherif를 들였다. 나는 원래 TV를 잘 보지 않아서 TV와 소파 없는 거실을 꿈꾸었지만 남편의 유일한 요구사항이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의외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넷플릭스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어서 나의 리모컨 선점 시간이 점점 늘고 있다.

계획에 없던 렌지장은 생각보다 세탁기가 다용도실을 꽉 채우는 바람에 밀려 나온 소형가전들을 위해 구매했다.

대우 클라쎄 전자레인지: 원래 다용도실에 선반을 짜서 넣으려고 제일 작은걸 골라 산 건데 싼 데엔 이유가 있다. 사지 마세요. ㅜ_ㅜ 혼수 중 가장 마음에 안 드는 품목.

드롱기 원두분쇄기: 친구들의 결혼선물. 핸드그라인더보다 백 배 편하다.

비알레띠 모코나: 2년 전에 이탈리아 여행에서 사 왔는데 어쩐지 잘 쓰지 않게 된다. 캡슐, 파드, 에스프레소 세 가지 기능에 우유 거품도 낼 수 있지만 조만간 당근 마켓으로 갈 것 같다.

쿠쿠 2-3인용 전기밥솥: 너무 귀여운 사이즈. 딱 좋다.


볕 좋은 가을. 식탁으로 들어오는 빛이 좋다. 매 해 성균관대 명륜당에 가서 커다란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을 남긴다.


기념일은 잘 챙기지 않는 편인데 뭔가 아쉬울 땐 시늉만 하는 편이다. 한 박스만 사달라 했더니 너무 많이 사 왔다. 작년 빼빼로데이엔 크게 싸우고는 삼청동 길바닥에서 눈물이 터졌던 기억이 난다.


냉장고 털이의 최고봉 파스타. 결혼 전에도 혼자 제일 많이 해 먹었던 주력 메뉴다. 로제 소스는 제품을 썼지만 마늘 기름도 내고 토마토도 더 삶아 넣었다. 나른한 일요일 점심.





11월이 지나갔다.

'결혼식만 끝나면' 모든 게 해결되고 평화의 날이 시작될 줄 알았건만 끊임없이 밀려오는 집안일에, 가족 대소사에, 감사 인사 모임에, 이른 송년 모임까지 시작되어서 상상했던 신혼의 달디 단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제 신혼집이 집 같고, 둘 만의 약속과 규칙들이 생기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생겨나는 안정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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