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의 도쿄
나의 첫 혼자 여행지는 도쿄였다. 첫 혼자 여행지로 도쿄는 적절한 곳이었을까? 도쿄는 일단 서울만큼 아주 큰 도시다. 물리적으로 땅덩어리가 크다는 소리다. 그 여행을 서울에 비유해 보자면 마포구 언저리의 숙소에 짐을 놓고 경복궁과 인사동 구경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남산타워에 걸어 올라간다. 골 때리는 건 다음날인데 서울 시청사를 보고 걸어서 용산구의 공원에 갔다가 강남 대로를 걸으며 이 빌딩 숲에서 내가 봐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걷고 걷다 가로수길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여의도 한강공원에 가서 유람선을 타는, 동선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하루였다. 마지막 날엔 캐리어를 끌고 홍대에서 햄버거를 먹고 기념품을 사 공항에 갔더랬다. 말하자면 대-충 이런 식이었다 이 말입니다..
세 살 위의 언니는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 분리불안이 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둘째는 독립심을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마음먹고 키운 결과물이 지금의 나다. 세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봉고차 타는 곳까지 혼자 걸어 다녔던 어린이였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주 초반에 모두 끝이 났고, 원래는 친구랑 함께 가려던 여행이었다. 친구가 함께 가기 어려워지면서 마음을 접은 나에게 혼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한 것도 엄마였다. 엄마는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엄마가 못해봐서 나에게 권유했던 건지 해보니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서 갓 성인이 된 딸 혼자 보낼 생각을 한 건지는 모르겠다. 당시에 엄마와 잘 알고 지내던 여행사 실장님을 통해 비행기와 한인 민박이 결합된 에어텔(?) 상품을 예약해 주었다. 왜였을까..
지금이야 어느 드럭스토어가 가장 저렴한 지까지 앱을 통해 알 수 있는 세상이지만,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구글맵 대신 가이드북의 종이 지도와 “윙버스”같은 사이트를 참고해 맛집 리스트를 인쇄해서 보며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종이 지도의 축적이 어떻게 되는지 거리 개념이 모호해 이 정도면 걸어갈 수 있겠지? 했다가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이드북을 보면 보통 유명한 지역 명으로(신주쿠, 시부야, 긴자, 아사쿠사, 이런 식) 카테고리가 나눠져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곳에 가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그 후에도 도쿄에 세 번 정도 더 가보았지만 여전히 도쿄 지하철은 복잡하고 신주쿠역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길 찾아다니기 참 어려운데 그때는 오죽했을까. 지금이야 가보고 싶은 식당이나 카페, 편집숍, 쇼핑몰 같은 걸 딱딱 찍어 다닐 수 있지만 열아홉 살 대학생 1학년에게 무슨 정보와 돈과 안목 같은 것이 있었겠는가. 그저 최선을 다해 가이드북에서 하라는 대로 걸어 다녔을 뿐이다.
한번 혼자 가보니 별거 없네 싶었는지 여행 중독자처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모든 알바비의 종점은 비행기 표가 된 삶. “나 내일 제주도 가”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후회했을까. 세 달이나 인도에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2년 전의 일을 후회했을까. 나는 그저 나를 세상 밖으로 보내줘서, 혼자 다니는 맛을 알게 해줘서 엄마에게 고맙다. 덕분에 20대 초반에 나는 이런저런 여행을 하며 나의 취향과 성향을 알게 되었다.
분명 “도쿄” 여행이었는데 첫 혼자 여행이라는 사실만 남았다.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점 나간 사진들만이 나 대신 여행을 기억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