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 힘들어서 퇴사합니다.
마음속에 균열이 생겼던 것 같다.
참을 만해서, 큰 일은 아니라서, 다들 이러고 살아서, 힘든 일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 넘어갔던 수많은 사소한 일들이 기억을 스쳐 지나갔다. 혈관만큼이나 촘촘하고 세밀하게 내 안에 퍼진 균열 덕에, 별스럽지 않은 말들에도 바사삭 부서질 수 있었다. 마음이 부서졌는데 몸이 형체를 유지해서 하루를 또 보내야 한다는 것이 고통이었다. 마음이 부서질 때 몸도 같이 사라졌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부모님 생각이 떠오르면 눈물이 났다. 이 정도로 무너진 스스로가 어이없고 한심했다. 다들 잘 사는데, 나약하고 예민한 인간 같으니라고.
힘들지는 않았다. 힘든 것과는 달랐다.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사람들을 만나면 즐거웠다. 농담을 하고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으면 행복했다. 그러다가도 자려고 누우면, 사라지고 싶었다.
생각했다.
'난 마시멜로우야. 괜찮아. 난 말랑해. 나는 구름 같아. 나는 구름 같은 마시멜로우야. 괜찮아.'
양을 세는 것보다 마시멜로우 주문이 수면에 효과적이었다. 그렇게 잠들고, 다음 날을 시작했다. 회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팟캐스트를 들었다.
"일생동안~ 당신이 읽어야 할~ 백 권의 책, 일다앙~ 백!"
제목조차 들어본 적 없는 고상한 제목의 책들을 소개하고 탐구하는 팟캐스트다. 듣기 좋은 목소리와,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를 쫒다 보면 나의 생각이 나에게 집중하지 않았다.
일찍 도착한 회사에서 영어 공부를 했다. 어느 날은 단어를 외우고 어느 날은 화상 영어 수업을 들었다. 영어실력은 미미한 곡선으로 더디게 향상되었지만, 어차피 인생은 기니까 괜찮았다.
그리고, 9시. 10시. 11시. 12시.
점심식사는 보통 집에서 준비해 온 샐러드나 빵, 계란으로 해결했다. 체중 때문이다. 그리고 12시 30분이 되면 따뜻한 동료와 함께 운동을 했다. 계단 오르기, 스쿼트.
깔깔깔깔.
점심시간 끝, 1시, 2시, 3시, 4시, 5시, 6시.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
안전한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퇴근은 지하철로 한다. 언제나 사람이 많은 빽빽한 지하철. '탈 수 있을까?' 망설이면 못 타고, '나는 탄다.'라고 다짐해야 탈 수 있는 지하철.
지하철 안에서 땀이 쏟아졌다. 이마, 등, 머리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들에 따뜻한 동료가 놀란다.덥다고 핑계를 대본다. 다들 멀쩡히 잘 있는데 왜 나만 이렇게 땀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간 이것도 유난이다. 예민하고, 나약한 인간 같으니라고.
지하철 탈출.
안전한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