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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유 Oct 31. 2023

서문

 원래 작가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뭐든지 일단 쓴 뒤,
소설이 완성된 이후 첫 문장을 지워버려라.


첫 문장이라는 이유로 너무 깊이 고민해서 오히려 뒷 이야기들과 결이 맞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저 역시 서문의 첫 문장을 어떻게 쓸지 고민을 한지 어언 2시간입니다. 저는 일단 쓰고 있습니다. 무작정 써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할 것 같아서요. 


  지역에서 퀴어 페미니스트로 살아남는다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인가 싶기도 합니다. 부디 또다른 지역의 퀴어 페미니스트가 탄생할 때를 위한 지침서를 쓰고자 했던 당찬 포부는 어디로 가고, 괜히 위축되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무작정 텀블벅으로 후원해주신 여러분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저를 믿어주신 애정과 정성에 감사하고, 퀴어 혹은 페미니스트 혹은 활동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을 우리를 응원합니다.


  2023년 6월, 국가인권위와 인권재단사람이 주최한 '인권옹호자대회'를 갔다는 이야기부터 재차 시작하려 합니다. 130명 사이에서 저는 내향적으로 방황하던 와중이었습니다. 행사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초년생 활동가 토크콘서트'였는데, 제 또래의 서울청년활동가들이 겪는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낮은 임금, 1인 다역의 책임, 인간 관계에서 부딪히고 성장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서울에는 청년활동가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들끼리 모여 어려움을 공유하고 팁을 전수 받을 수 있는 카톡방과 오프라인 모임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내가 서울에서 활동가로 첫 발을 내딛었다면 이토록 좌충우돌 하진 않았을텐데요. 억울함과 슬픔, 분노, 실수, 잘못, 무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한 번 걸러서 겪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역에는 퀴어페미니스트는커녕, 활동가로 이름 올리고 있는 청년들조차 드뭅니다. 광주광역시에는 제가 아는 풀이 고작 저 포함 열 손가락 안쪽으로 끝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수도권 광역시/특별시를 중심으로 열 명씩 있다면 오십명은 넘는 청년 활동가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떤 네트워킹도 형성되지 못했고, 각 지역만의 고유한 이야기도 없습니다. 각 지역으로 지방으로 따로 떨어진 청년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2017년경 이후로 각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자체적으로 꾸리고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인천, 부산, 제주, 춘천, 경남 등등 무수한 지역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는 지역퀴어문화축제를 꾸리기 위해 앞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서울과 대구 조직위원회에 대담을 가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10년 이상 해온 서울과 대구만큼, 막 시작하는 조직위원회는 기틀이 다져지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입니다. 광주퀴어문화축제 역시 제가 참여한 2회동안 해야할 일은 많은데 뭐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는 아수라장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매년 퀴어문화축제를 비수도권 지역에서 다시 올리려고, 혹은 새롭게 만들려고 지역에서 시도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그 분들이 미리 알고 준비해야할 일들이 있다면, 저의 작은 경험에서 미리 비추어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조직위원회 구성부터 내부 홍보, 광장 집회 신고, 후원금 모집 및 축제 굿즈 준비까지. 기억과 회고를 더듬는다면 제가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는 기록의 데이터베이스화가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저는 제 앞에서 앞서 활동하던 청년 활동가들이 나섰다가 힘겹게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들이 사라진 이후로 저는 선배도 없이 다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선례와 지침, 인연이 없는 활동가는 무력합니다. 사람을 만나서 해야 할 일이 많은 활동가라서,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건 더욱 외롭습니다. 제가 겪었던 외로움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작은 자조와 위로를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퀴어로서, 페미니스트로서,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특히 광주광역시에서 살아온 퀴어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해야할 말이 있습니다. 인권의 도시의 광주가 그렇듯, 이 책은 딱히 꿈과 희망과 인권을 이야기 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내가 왜 하필 '퀴어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활동가로 마주했던 사회와 문턱은 무엇인지, 앞으로 함께 걸을 지역 청년 활동가는 무엇을 알고 시작했으면 좋겠는지, 이 연재글로 정리해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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