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내용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빨간 안경을 쓴 씨네필까진 아닐지언정, 박찬욱 감독의 작품 대부분을 다섯 번 이상 시청했다. (복수는 나의 것 제외.) 특히 정서경 작가가 투입된 이후의 작품을 무척 좋아한다. 누군가 '박찬욱의 어떤 영화를 좋아해?'라고 묻는다면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아가씨', '박쥐', '헤어질 결심', '친절한 금자씨'? 아니,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올드보이'? 아, 영화 '스토커'도 좋지. 아무튼 그의 미친 변태 같은 미감과 스토리텔링 능력, (여성) 캐릭터 구성에 대해선 더할 나위 없다고 느끼고 사랑해 마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어쩔수가없다'를 손꼽아 고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헤어질 결심을 영화관에서 처음 본 이후, 정훈희의 안개만 골백번을 들으며 같은 영화관의 회전문을 드나들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OTT에 오른 뒤에는 주변 사람들을 불러모아 넷플릭스 파티를 이용해 강제로 시청하게 했다. 이게 짱이지. 최고지. 엄청나지. 어떻게 이런 걸 만들지. 아, 서래야. 송서래. 나는 당시의 여름 영화 '헤어질 결심'에 미쳐있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 '어쩔수가없다'도 나에게 큰 울림을 주리라 믿었다. 분명 두 번은 더 볼 것 같았기에 차곡히 영화 쿠폰을 모아가며 나를 위한 회전문 준비도 마쳤다. 그리고 개봉 다음날, 퇴근 직후 곧장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약 2시간 반 뒤, 영화관에서 나온 나는 깨달았다.
영화는 완벽함에서 시작한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집의 주인공 '만수'는 부족한 것이라곤 없다. 아름다운 아내,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 아끼는 나의 전원주택과 마당, 온실, 귀여운 대형견 두 마리, 그리고 안정적인 회사. 대부분의 한국 중산층이 각종 옵션이 딸린 아파트에 층간소음과 주차난을 이겨내며 따닥따닥 붙어서 살아가는 것을 넘어서는 '상류층의 부유', 그러니까 '완벽'이다. 그 안에 흐릿하게 엿보이는 균열이 있을지언정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다.
일단 여기서 관객 = 나는 영화의 몰입에 실패했다.
영화 자체는 A라는 상황에서 무너진 주인공 만수가 처절한 고민을 통해 A'라는 결론으로 되돌아오는, 그러나 절대 그 이전의 완벽한 A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일종의 수미상관이자, 고향으로 되돌아 오는 영웅의 이야기 (그 과정이 일그러졌을지라도) 인데, 그러기 위해서 차용한 이미지는 지나치게 '한국'의 '정상성'에 집중한다.
만수는 가부장 남성이며, 이성애자이고, 관리직 (아마도 정규직)이었고, 비장애인 (만수의 딸은 자폐 스펙트럼의 일종으로 보이나, 전형적인 '자폐증 천재'에 대한 도식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며, 빚을 갚고 있긴 하나 자가의 집, 별채로 쓰고 있는 온실과 땅이 있다. 부부는 차를 각각 쓰고, 아이들은 각종 예체능을 비롯한 비싼 학원에 다닌다. 시간이 나면 주말에 같이 고기를 구워먹는 '4인 정상 가족'은 서로를 안고 행복을 누릴만큼 (비록 만수의 자아도취성 포옹에 끼인 가족들은 고통스러워 할지라도) 안온하다.
나의 삶과는 완전히 등치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현재 경제난을 겪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얼마나 될까? 10프로? 5프로? 2프로? 누군가는 날로 팍팍해지는 자신의 가게를 꾸리기 급급하고, 다른 이는 작은 직장에서 임금체불을 겪으며 버틴다. 가정이라는 보호막이 없이 내던져진 청소년이 있고, 번듯한 집 하나 구하는 걸 평생 포기해야 하는 가난이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파트타임만 전전해야 하는 이들도,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는 이들도, 장애인이기 때문에 애초에 정규직을 꿈꾸긴 하늘의 별따기인 이들도 있는 이 한국 사회에서.
주인공의 시련은 단 하나, '실직'이다.
게다가 '완벽'한 환경은 그가 당장 '1년이 넘는 실직'을 견딜 수 있는 무기가 된다. 미국으로 회사가 팔린 이후 경영진은 갑작스러운 정리해고의 칼날을 휘둘렀고, 만수도 볏짚처럼 나가 떨어진다. 하지만 어느 누가 식솔을 먹여 살리며 몇 개월을 넘어 1년간 재정적 조정 없이 살아갈 수 있나. 게다가 실직 하나에 만수는 사람 셋을 죽이(려고 시도하고)기까지 한다. 새로 TO가 나올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은 자신의 새 일자리, 그리고 자신의 경쟁자가 될 이들을 꺾기 위해. 자신의 판단 하에 사람을 추려내고, 살인 명단을 만든 뒤, 서스럼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그 위에 나무를 심는다.
물론, 정규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조롱하고 힐난하는 현 사회가 떠오른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이 영화가 과장된 블랙 코미디이며, 가부장이라는 '맨박스'에 갇힌 남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이후 흔하게도 실직이 이뤄져 언제나 근로복지공단을 그득그득 채우고 있는 실업급여 수령인들은 '어쩔수가없다'는 이야기에 공감할까? 미안하지만 최소한 나는 사회적으로 '지배층'에 가까운 인간군상의 아주 소박한? 나락 이야기는 별로 궁금하지가 않다.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가부장 남성'의 완벽이 아닌 다른 소수자성을 애처롭게 감추고 있던 이들의 이야기였다면? 하다못해 같은 배경이었다 하더라도 만수의 아내역이었던 손예진의 시선, 혹은 자식들의, 혹은 동료의 시선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것이다. 만수가 노인이었어도 달랐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큰 소리를 내며 언제나 사회적 목소리를 주도 하고 있는 '한국 중년 남성'이 어쩔 수가 없다며 염불을 외며 사람을 죽이는 이야기는 그냥 변명 일변도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이런 거다. 공원에 바둑 두시는 어르신 한 분 붙잡고 커피 사드리면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왕년에 내가 자수성가로 내가 어릴 때 살던 집도 다시 사고 아이들이랑 아내랑도 떵떵거리며 살았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짤리면서..."
게다가 맥거핀으로 남아버린 것들조차 너무도 많다. 만수의 알콜 중독과 가정 폭력 전사은 그저 앓던 이를 빼려는 객기 정도로 마무리 되고, 돌싱으로 재혼한 아내의 삶은 불륜인듯 아닌듯 암시만 이뤄진 채 만수의 살인을 '묵인'하는 것에 그친다. 천재라고 일컬러지는 딸아이는 '첼로'를 배워야 하는 돈이 많이 드는 지출원일 뿐이며, 아들의 행적마저도 엄마가 노브라로 아들의 범죄를 덮으려 하는 무슨 싸구려 야동같은 방식의 소진만 이뤄진다. 이게, 이게 영화냐?
영화를 다 보고 뒤늦게 알게 된 것이지만 정서경 작가가 이번 영화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모든 아다리가 맞았다. 지금껏 공동집필을 해가며 영화를 만든 이유가 명쾌하다. 어쩌면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드리운 그늘에 정서경 작가이자 감독, 창작자가 덜 부각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시간이 난다면 북극성을 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