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에게 물어봐’,
고작 임출육 장려하려고?

드라마 제작비 700억의 공중분해

by 침묵
아래의 글에는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는 엔딩을 보고 난 직후의 내게 엄청난 자괴감을 선사한다. 굳이 이 작품을 보며 날린 시간과 마음이 아까워 미쳐버리는 탓이다. 엊그제, 2월 23일 일요일 종방한 드라마 ‘별들에게 물어봐’가 그랬다. 평소에 드라마를 잘 보지도 않으면서. 하필 최근 ‘허남준’이라는 배우에 빠져 그가 하는 작품을 본방사수 하고있는 탓에 벌어진 일이다. 내 16시간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해당 제작사에 고소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700억 이렇게 쓸 거면 나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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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섞여야 가족인가요?

이 드라마는 어느 재벌 총수의 아들과 며느리를 시험관 아기로 임신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모든 서사가 진행된다. 대한민국에서 내노라 하는 재벌 ‘MZ그룹’의 단 하나뿐인 아들은 꽤 젊은 나이에 사고로 사망했다. 그에겐 결혼한 아내가 있었고, 죽기 전엔 아내와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정자의 머리가 찌그러져 있어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여기까진 불임의 슬픔을 가진 어느 평범한 부부의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는 ‘핏줄’에 대한 집념이 MZ그룹의 ‘욕망’으로 설정된 순간이다. 주인공이자 산부인과의인 ‘공룡’은 죽은 남자의 정자와 아직 살아있는 아내의 난자를 우주로 비밀리에 가지고 가, 생명 윤리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체외 수정을 시도한다. 우주에선 찌그러졌던 정자도 중력의 압박을 벗어나 머리가 펴진다는 논문 때문이다. 그 과정을 기다리며 MZ그룹 회장은 며느리가 일도 하지 못하도록 윽박지르며 살아있는 포궁 정도로 대접하고, 수정란에게 내 손주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여기서 드는 1차적 의문. 이 드라마는 뭐 이렇게 혈연관계의 정상 가족에 집착한단 말인가? 정말 손주가 갖고 싶다면 출생 미신고 아기가 연 2000명을 넘는 대한민국에서, 건실하고 똑똑한 녀석을 입양해 성장시킨다는 방식은 고려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 만에 하나 위험천만한 실험 과정에서 아이가 어딘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채로 태어날 수 있다는 가정도, 저들의 머릿속에 있긴 한 걸까? 비장애인 손주만 부르짖고 있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이 드라마를 집필한 ‘서숙향’ 작가의 이전 작, ‘질투의 화신’은 외려 ‘정상 가족’의 틀을 벗어난 또 다른 가족의 가능성을 상상했다. 딸과 친엄마와 새엄마가 한집에서 살며 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퀴어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게까지 했다. 하지만 작가의 사유는 거기서 한치도 발전하지 않았다. 주인공 ‘공룡’의 양어머니는 셋이며, 그중에 한 명은 사실 여주인공의 어머니라는 막장 드라마식 출생의 비밀이 나온 순간,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며 엉엉 우는 모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작가의 문제의식은 그저 퇴보하기만 했다. 정상 가족에 대한 집념이 이 드라마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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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상도 하지 않은 수정란도 생명입니까?

생명과학에 썩 가깝게 살지 않은 사람이라면, 최소한 나의 경우는, 이 드라마를 보며 처음 들은 단어가 있다. ‘모룰라’.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된 직후 세포분열을 해 8개로 나뉜 세포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모룰라도 사람입니다!’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MZ그룹의 딸은 자궁외임신 등 질병으로 인해 난소를 절제했고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다. 여성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실시되어야 할 수술에 대고 MZ그룹을 비롯한 여러 인물은 ‘그 수술이 뱃속의 아이를 죽인 것’이라고 묘사한다. 또한 우주로 가져간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켜 생긴 ‘모룰라’가, 위험을 수반한 실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들키자 여러 차례 폐기 되는데 그때마다 주인공 ‘공룡’이 외치는 말이 있다. ‘살인자!’


혹시 여러분은 ‘미프진’에 대해서 아시는가? 먹는 임신 중절 약의 일종인데, 약 10주 차가 되기 전까지 여성은 해당 약을 먹어 중절을 시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모룰라는 몇 주차 정도의 세포일까? 많이 쳐줘야 고작 임신 3주 차다. 그러니, 냉정하게 말해 세포는 세포다. 내 몸에서 부스럼이 생겨 떨어지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소리다. 모체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할 경우, 모룰라 그 이상이 되어도, 우리는 약이나 시술을 통해 중절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2020년 4월, 헌법상 낙태죄는 폐지되었고, 아이를 지킬 권리만큼 여성이 자신의 몸을 지킬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물론 주인공은 ‘모룰라’가 인간이라는 가정에 ‘엄마가 임신을 원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모룰라를 잃는 상황은 모체가 원하더라도, 원치 않더라도, 혹은 상황에 의해, MZ그룹의 딸이 그랬듯 질병이나 부상 등으로 인해, 흔하게도 발생한다. 임신 중절을 ‘낙태’로 명명하며 죄악시 하는 근거에는 ‘수정란도 생명이다’는 논리가 자리하고, 사회는 태중에서 아이를 잃은 슬픔의 책임과 잃어버린 이유를 여성에게 덮어씌운다. 이런 현실에서 ‘모룰라는 생명’이며 ‘이를 죽인 건 살인자’라는 말은 본능적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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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아이를 위해 엄마가 죽어야 하나?


미디어 속에서 몇 번이고 재생산되는 이미지를 ‘별들에게 물어봐’도 끝끝내 답습한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는 산모. 고통의 감수는 물론 질병의 치료 거부, 심지어는 죽음까지 자처하며 아이를 살리는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 여주인공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룰라도 내 손으로 없앴는데 아이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니까, 여주인공이 임신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출산 후 사망하는 것은 모룰라에 대한 ‘반성’이자 ‘순교’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실제 임신 과정을 겪는 여성들은 ‘왜 아무도 내게 임신이 이렇게 괴로울 일이라고 가르쳐주지 않고, 그저 축복이라고, 입덧만 욱욱 하면 되는 거라고 했던 것인지’ 괴로워한다. 실제 산부인과에서도 임신 과정에서 괴로움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아이는 무사’하기때문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진료가 비일비재하다. 이게 임신을 한 여성에게만 해당하나? 가임기의 여성이 생리통으로 고생하며 산부인과에 가면 ‘임신하고 출산하면 생리통이 나아진다’라는 이상한 답을 의사에게 듣고 오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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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죽이고 살아남는 여성은 미디어에 없다. 실존해선 안 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는, 우주선을 명절에 잡아타는 KTX보다 더 쉽게 오르내리는 판타지를 가공하면서도, 출산 과정의 내장 파열로 여주인공을 사망케 한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유로 가임기여성지도를 만든 나라의 작품답다. 숭고한 모성애로 마지막 화를 장식한 ‘별들에게 물어봐’를 두고, 나는 외치고 싶다. 우주는 유성생식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여성이 숭고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우주가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정말 물어보긴 한 거야? 별은 다르게 대답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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