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광주퀴어문화축제 무지갯빛 절대평등 무.등.
광주퀴어문화축제가 다시 열린 건 정확히 6년 만이다. 지금까지 7년이라고 잘못 말해왔는데, 2019년 2회 축제가 마지막이었으니, 그로부터 6년만에 축제가 열렸다. 2025년 11월 29일의 일이다. 물론 그 사이에 3회 광주퀴어문화축제가 영화제로도 있었고, 2022년 퀴어문화주간도 있었으니까, 아예 뜸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축제의 형태로는 6년만이 맞다.
나는 축제를 준비하는 기획단원 중 한 명이었다. 실은 공동조직위원장이었다. 아니, 집행위원장이었다. 내 역할을 축소하고 싶은 기분이 자꾸 든다. 충분히 잘했는지 자꾸 되묻게 되는 탓이다.
축제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부담을 덜려고 애썼다. 너무 완벽하게, 잘 해내려고 하면 마음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챙겨야 할 일은 하나부터 백까지 산더미인데, 그걸 신경쓰려면 총 천 개의 경우를 가늠해야 해서. 경찰,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기획단 내부, 자원활동가와 인권침해 감시단,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느라 바빴다. 내심 두려웠다. 그래서 혼자 최면을 걸었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즐거우면 그만이야!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보니 약간은 뼈아픈 지점도 있다. 그래도 충분히 잘 챙겼어야 맞는데, 놓친 부분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참가자 평가를 살피다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었을지, 생각하는 것이 가장 좋은 마무리일지도 모르겠다. 뒤늦은 눈물을 훔치며 쓸쓸함에 잠겼다. 뒤에서 축제(라는 이름의 집회) 하나를 열기 위해 뛰어다닌 우리의 노고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축제 현장은 정작 기억 나는 것이 많지 않다. 상황을 살피고 현장을 살피고, 무대를 점검하고 사회를 보고, 퍼레이드를 무사히 보냈던 기억 뿐이다. 그 와중에서 내가 직감했던 실책 - 퍼레이드 차량을 좀 더 적절히 분배했어야 한다는 생각 - 이 선명하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온 행진 인원들을 보며 안도했고 기뻐했고, 님을 위한 행진곡 퍼포먼스를 함께 하며 소리 높여 노래 불렀던 것도 생각난다. 광주퀴퍼가 가장 광주다웠던 순간이었다.
우리 추산은 2,500명 정도다. 실은 유동 인구를 모두 합산하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계수기를 샀어야 했다. 입장 팔찌 만으론 부족했다. 이렇게 많은 인파가 축제장을 채울지 몰랐다. 행진 진행하기 직전까지 경찰과 행진 인원을 가늠하느라 씨름을 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자 축제장이 텅 빌 정도로 모두 행진을 나갔다.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그 많은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 하나 행복하게 하기도 삶의 가장 큰 퀘스트인데, 남을 행복하게 완벽하게 만들기란 쉽지 않겠지.
깃발이 참 많았다. 무수하게 솟아오른 깃대와 빼곡히 모여 현장을 즐기던 사람들.
그리고 아쉬웠던 몇 가지의 실수와 예상치 못한 오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에서, 다시, 퀴퍼를 열었다는 안도감.
퀴어문화축제가, 고작 하루 하는 행사가, 무슨 의미냐고 해도, 그 하루에서 온전한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의 마음. 그들이 무사히 살아 노령이 들어 자연사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게 된다.
함께 활동한 공동조직위원장 두 사람이 기어코 각자 다른 이유로 울던 것이 생각난다. 무대 위에서 눈물을 글썽이던 이의 마음을 헤아리자면 무수한 퀴어-비퀴어들이 자신의 삶을 생존해 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고. 다른 공동조직위원장은 앞서 떠나가버린 친구를 그리워 하며 아이처럼 울었다. 안아서 달래주면서, 나 역시 그 이를 알고 지냈던 탓에 속이 아팠다. 결국엔 죽음이 너무 가까운 이들 덕에 우리는 줄타기를 하며 이 행사를 기쁘고 또 슬프게 치뤘다.
그러니까 모두가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
무사히 살아서 우리가 버티고 있음을 말해줘야 한다.
우리의 존재는 무사하다. 명명백백하다. 무등이다.
우리가 광주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