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감한 변절자다
XLIII
뭐랄까, 아버지는 도덕적 영웅 심리를 가진 인물이다. 나 역시 그것을 빼닮은 구석이 있고. 혹시 몰라 짚고 넘어가자면 ‘도덕적 영웅’이 아니라 ‘영웅 심리’다. 그러니까 우리는 고작 영웅 심리를 가진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대단한 인물인 양 칭송하려는 게 아니라 대단한 인물인 양 칭송받고자 하는 꼴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의 영웅 심리의 발로(發露)는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이런 것까지? 할 만큼 일으킬 만큼 사소하고, 이렇게까지? 할 만큼 거대할 때도 있다. 이를테면 내가 초등학생일 적엔 학부모 위원으로 나서 초등학교 행사에 양복을 빼입기도 찾아오기도 했고, 조금 커서는 지역 주민 대표로 온갖 사회 문제에 나서곤 했다(지금도 어느 서울시장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거실에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있다). 실로 아버지와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아버지는 발 벗고 나섰다. 그런 게 꼭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자신이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장교 생활과 대기업 생활 속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그런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처럼. 마치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실로 사사로운 개인의 삶의 궤적임에도 그는 그 모든 것을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세상은 이런 사고방식을 촌스럽고 어쭙잖은 오지랖으로 생각할 테지만, 그는 그렇게 촌스럽고 어쭙잖은 인물이었다. 그렇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언뜻 대단히 도덕적 영웅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렇지는 않다. 그는 자주 사소한 것은 사소하다 치부하고, 거룩한 것은 영리하게 모른 척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치부를 아들의 입으로 함부로 언급할 수는 없지만, 더러 그는 게으름에 작고 못난 짓을 할 때도 있었고, 사사로운 의리에 못 이겨 그른 것을 묵인할 때도 있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런 것이 아니냐 묻는다면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니까 그는 사람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영웅이 아니라 영웅 심리에 머무는 사람인 것이다. 영웅이라면 응당 그래선 안 되는 것이다. 암 그렇고말고. 나는 남몰래 고개를 주억였다.
안준생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박문사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하고, 대뜸 사과까지 했다. 민족에게 영웅적 면모를 가진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했으니 그는 당연히 민족의 변절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영웅으로 죽은 후 가족은 개같이 살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영웅의 아들은 개같이 살고 변절자의 아들은 다시 성공한다.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게는 재앙이었다고 그는 용감하게 고백했다. 그래 어떤 면에서 나는 그것이 용기로 보인다. 질척거리는 정의로움을 부정하고, 옳음의 총알받이가 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내던진다는 점에서 언뜻 영웅적 면모까지 보인다. 어쨌든 그의 역사가 그렇듯 아버지를 부정하고, 부정한 패륜아가 되고, 나라의 정의를 부정한 변절자가 되어 사랑하는 가정을 지켜냈다. 나의 삿(私)된 가슴은 안준생의 고백에 감동한다.
어떤 면에서 나는 아버지와 닮았다. 가끔 거룩한 책임감에 취해 과감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영웅 따위가 아니라 영웅 심리에 머무는 것은 사소한 것은 게을리 무시하고, 거룩한 것은 영리하게 모른 척할 때도 있기에 나는 고작 어떤 감정에 가끔 취하는 게 전부인 인물이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이런 내가 어떤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아주 영웅스럽지도 못한 것이 이따금 영웅 흉내를 내면서 아들에게 도덕적 영웅 심리를 강제한다. 아들은 어린 마음에 그런 아버지가 멋있어 보일 때도 있지만, 한결같지 못한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한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에 어째서 침묵하는 것인가. 하지만 여전히 나는 가르치는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을. 그런 아버지에게 사사로이 욕심부리지 못하는 아들의 사춘기는 서러울 것이다. 욕구에는 애초에 당위성이 없는 것이다. 갖고 싶은 것은 갖고 싶은 거다. 그리고 가지지 못한 건 그저 가지지 못한 것이다. 결핍은 서러워야 하기에 서러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서러운 것이기 때문에 서러운 것이다. 나의 아들은 그럴 것이다. 그런 아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다. 나는 그 감정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있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있지도 않은 아이의 삶이 있지도 않게 하려는 것이다. 나는 거실에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좋아한다. 존경하고. 사사로운 모습이 미울 때도 있지만 그 모습에도 나는 애정도 가지고 있다. 그 역시 내게 그럴 것이다(존경한다는 말은 빼고). 어쨌든 그의 어쭙잖은 영웅 심리도 나는 사랑한다. 덕분에 나는 이렇게 산다. 마치 나의 글이 대단한 진실을 그려낼 수 있을 것처럼. 그런 글이 세상에 깨침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또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면 살 의미가 없다고 어쭙잖은 감정에 취한다. 그래서 나는 순덕이와 산다. 그 생명이 어떤 연유로 태어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마주한 순간부터 내게 그것은 책임감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영웅 심리를 부추긴다. 무용한 용기를 계속해서 내게 부추기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순덕이를 보며 야옹야옹 고양이 흉내를 냈다. 순덕이는 그런 아버지가 신기한 듯 올려다보았다. 이내 흥미를 잃은 아이는 내게 와서 야옹, 하고 울었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 모습을 바라봤다.
진호야, 나는 네가 덜컥 속도위반을 해도 이해해줄 수 있다. 어떤 색시든 나는 찬성이야.
나는 절대 안 할 거야.
나 아버지를 사랑하는데, 그냥 거기서 그만하고 싶어. 그냥.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순덕이를 쓰다듬었고,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버지는 가만히 우리를 바라봤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