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냄새 May 28. 2022

진짜 나를 알아줘요

<무간도>의 진영인

" 요새 진짜 힘들구나.

   늘 캔디 같이 씩씩한 샘이 그런 말을 다 하다니. "

  (이런 식이면 저 병가낼지도 모르겠어요! 라는 농담 같은     

  멘트를 20년만에 처음으로 해봤더니, 돌아온 대답.)

" 저 캔디 아닌데요.

 (아, 심지어 캔디 캐릭터 싫어함. ㅋㅋㅋㅋㅋㅋ)                                                                

 제가 어디가 씩씩해요?  그렇게 보였다면  다 사회적 가면

 을 쓰고 있어서 그런 거죠. "

" 스트레스 받지 마.

  아닌 줄 알았는데 스트레스 받고 있었구나. "


지난 주 나와 교무부장님의 대화_


요새 그랬다. 일도 버겁고 마음도 힘들고 다 놔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그럴 수가 없고..               

속은 괴로운데 안 그런척 하고 웃고 있자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그러다가 또 그런 괜찮은 척 하는 연기마저 제대로 못해내는 내가 어색하고 화가 나서 딴 생각을 많이 하는 날들.

그래서였나.                                                                                                                              

<어쩌다, 양조위>는 일상 속에서 작은 즐거움이라도 찾으려고^^ 좋아하는 사람 얼굴이라도 보면 그 순간만이라도 다 잊겠지, 싶어서 벌린 일이다.

근데 하필이면 첫 영화가 무간도.


아,

이건 사회적 가면 정도가 아니라 아주 가짜 인생이잖아.



 진짜 나를 알아줘요..

불안한 가짜의 삶

이 영화 속에서 양조위가 맡은 캐릭터 진영인은 실제로는 경찰이지만, 그 신분을 속인채 홍콩의 폭력 조직(삼합회)에 잠입해 오랜 시간 스파이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폭력 조직의 일원이지만 경찰 조직에 들어가 또 다른 스파이로 살아가는 유건명(유덕화 역)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면서도 가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둘 다 똑같이 불안하기만 하다.


영화 속 두 사람은 경찰과 조직 폭력배라는 진짜 모습이 무엇이든 간에, 양쪽 모두 안쓰러운 존재다. 우선 진짜 자신의 모습이 들통나면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자신을 숨기며 늘 노심초사, 불안하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누군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챌까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삶.


한 사람은 폭력 집단의 스파이면서 겉으론 다정한 연인이자 사회 정의를 위해 싸우는 유능한 사람인 척, 또 한 사람은 경찰이지만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며 거칠게 살아야 하는 상황.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상상을 했다.


저 두 사람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나을까?                                                              

처음엔 현재 가진 게 많아 잃을 것도 많은 유건명의 불안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는 탄탄대로 승진 가도를 달리고 있는 데다 결혼할 애인도 있으니까. 대신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진영인은 진실이 밝혀지면 경찰 신분을 되찾을 수 있으니, 폭력배 집단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진영인의 삶이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또 양조위의 슬픈 눈빛에 넘어간 것일까, 비극적인 결말 때문일까. 나는 진영인의 삶이 더 괴로울 것 같았다, 쓸쓸할 것 같았다, 아니 무서울 것 같았다.




진짜 나를 아는 이가 없다는 쓸쓸함

유건명이 가짜의 삶을 진짜인 것으로 자기 인생을 바꾸고 싶어졌다면(그리고 결국 그는 바꾸었다. 그래서 나는 경찰 제복을 입고 경례를 하는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미웠다. 안죽이고는 방법이 없었니? 흑흑.. ), 좋은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목표를 나쁜 방식으로 이룬 사람이라면, 진영인은 좋은 사람이지만 아무도 그런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를 외롭게 만든다. 황국장이 죽었을 때의 그 황망한 눈빛은 이제 누구도 자신이 경찰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진짜 자기 자신으로서 이야기를 나눌 이가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을까. 황국장이 죽던 날 안마방에 간다고 하고 황국장을 만나러 간 그가 큰 형님에게 오해를 받을까봐 끝까지 비밀을 말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유난히 믿고 따르던 조직의 동생에게조차.. 그가 죽어갈 때조차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영인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는 안마방이라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찾아가는 상담소의 의사에게 비밀이라며 진실을 털어놓는다.(그는 그녀를 좋아한다.) " 사실 전 경찰이에요. " 짧은 그 한마디는, 그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한 마디였던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한다고 해도, 너에게만큼은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영화 속에서 가장 슬픈 장면 중의 하나는 진영인이 옛 연인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다. 양조위의 아련한 눈빛, 그와 마주한 여인의 눈빛,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둘 다 서로의 진실을 모른채 돌아서는 장면이 생각보다 더 슬프다.


가면 무도회 같은 삶

우리는 타인과 얼마나 진실하고 정직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 순애보적인 순수한 사랑을 그리고 있는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는 그런 구절이 나온다.


항상 마음을 감추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가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며
이 사회는 그것을 관습이라든가 예절이라든가
분별 혹은 현명이라 규정지어 버림으로써
우리들의 삶을 가면무도회처럼 만들어 버린다.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도 될까,

이건 너무 지나친 걸까,

이런 말까지 다 해도 될까..

분노나 슬픔, 우울이든 애정이든 뭐든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면

무례하거나 부담스러운 사람이 될까봐

적당한 선이 어디인지 찾느라

그렇게 또 한 걸음 멀어져버리는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나를 잃는 것

진짜 나를 아는 타인이 없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나 자신조차 내가 누구인지 알수 없게 되는 혼란이다. 진짜가 가짜가 되고, 가짜가 진짜가 되어버리는 삶. 3년만, 3년만 더… 하다가 너무 오랜 시간 가짜 노릇을 한 탓에 진영인과 유건명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인간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유건명은 그 뒤바뀜이 좋은 길인 반면, 진영인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는 더 더욱 자신이 원래 어떤 인간이었는지 집착하고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리는 것은 단지 이해받고 싶다는 차원을 넘어 스스로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힘겨운 노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혼란스러운 꿈에서 깨어났을 때

영인이 안마방이라고 속이고 찾아가는 정신과에서 그는 주로 잠을 잔다. 그는 농담처럼(실은 진담) 의사에게 “ 당신 꿈을 꿔요.”라고 말하곤 장난스레 얘기를 건넨다. 보통 정신과 의사를 찾아갈 땐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을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그는 잠을 자고, 의사는 컴퓨터로 카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 곳에서 잠을 자는 시간이 그에게는 유일하게 긴장을 푸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니 잠을 자면서 꾸는 꿈마저 헷갈리고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잠에서 깨면 언제나처럼 카드 게임을 하는 그녀가 앉아 있다. 그래서 그는 혼란스러운 꿈이어도 안마를 받는 듯 편안한 잠을 잤을 거라 믿는다.

잠은 무방비 상태의 나를 그대로 보여주는 행위라서,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더 특별했을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토마시의 말이 떠오른다. 세상 둘도 없는 바람둥이로 모든 여자를 유혹하고 다니면서도 어떤 여자 곁에서도 잠들지 못하던 토마시가 테레사에게 느끼는 동반 수면의 욕구. 그는 테레사를 만나 사랑이 정사를 나누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동반 수면(진짜 잠^^)의 욕망으로 발현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곁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싶은 대상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기에.


영화의 미학 따위는 관심 없이

진영인이 살아서

경찰 지위를 회복하고 이쁜 의사 선생님과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랬지만, 양조위의 슬픈 눈빛과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며 새드 엔딩을 받아들인다. 흑흑.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콘택트>의 애로웨이 박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