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냄새 May 02. 2022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면 <콘택트>의 애로웨이 박사

우리는 작고 하찮지만, 얼마나 드물고 소중한 존재인가

누군가 나에게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냐고 묻는다면 조금도 망설임 없이

" 난 영화 <콘택트(1997)>의 애로웨이 박사(엘리)! "라고 말할 것이다. 수많은 로맨스, 감성 넘치는 멜로 영화 다 제쳐두고, 볼때마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주는 빌리 엘리어트나 양조위의 영화도 제쳐두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을 산다면 이 영화속에 등장하는 애로웨이 박사(조디 포스터)처럼 살아보고 싶다. 비록 영화 속 가상의 인물이지만, 나는 그녀를 무척 사랑하고 존경한다.


어째서?


외로움을 감춘, 패기 넘치고 열정적인 과학자.

우선 성격이 아주 매력적이다. 로맨스 영화의 아름다운 여주인공보다 자신이 믿는 것, 진리를 알아내기 위해 때론 거친 욕도 하고 몸싸움도 마다 하지 않는 엘리의 열정과 진지함이 더 마음에 든다. 내 눈에는 그런 그녀가 정말 멋있고 아름답다. 과학자로서 쉽게 인정받기 어려운 분야를,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길을, 연구비 지원받기도 어려운 것을 계속해 나가는 그 끈기와 믿음도 좋다. 동시에 그런 모습 뒤에 숨겨진 외로운 엘리도. (아마 엘리가 그런 진지하고 끈덕진 모습만을 지닌, 언제나 똑부러지는 이성적인 과학자이기만 했다면 나는 엘리를 이만큼 좋아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엘리는 평탄하고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우주와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이야기해주던 아버지마저 갑자기 돌아가셔서 일찍부터 혼자였다. 그런 그녀가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어쩌면 우주와 미지의 세계,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믿고 싶은 강렬한 열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

무엇보다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사람

과학자가 되어서도 엘리의 인생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녀는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주와 외계 생명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나갔고, 마침내 목숨을 걸고 자신이 믿었던 것을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했다.

그녀가 경험한 또 다른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그녀는 연거푸 과학자가 아니라 시인이 왔어야 해.. 라며 정말 아름답다고 되뇌인다.).

하지만 자신이 본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법정에서 마치 '너는 과학자잖아? 과학자는 증거로 보여줘야지. 자, 증거를 내놔 봐!'라고 다그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한 그녀는 과학자로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며 머뭇거리지만 진실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경험했습니다.
증거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인간으로서 제가 아는 모든 것이
그것이 실제(real)였다고 말하니까요.
우주에서 우리가 얼마나 작고 하찮고,
또 얼마나 드물고 소중한지요.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무언가에 속해 있고,
우리 중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요.
그걸 모두와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엘리가 천천히 한 마디 한 마디 이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무척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그토록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것,

그렇게 힘들게 추구했던 진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중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지만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진리를 추구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과학자가 진리를 추구한 이유가 이런 것이었다니 뭔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과학자가 아니라, 꼭 종교인이 하는 이야기 같으니까. 하지만 이 영화가 이상한 울림을 주는 건 바로 그 때문이기도 했다.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재판이 끝나고 나오는 팔머 목사(매튜 매커너히)와 엘리.

성난 군중들이 팔머 목사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느냐"고 묻는다. 그때 팔머 목사는 "신앙을 믿는 사람으로서 과학자와 입장은 다르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습니다. 바로 진리에 대한 추구지요. 저는 그녀를 믿습니다. " 라고 답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또 사랑한다. 그래서 그는 신을 믿는 것처럼 엘리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딴 얘기지만, 매튜 매커너히가 이토록 매력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평소에 헐리우드가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내가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지...). 여하튼 "저는 그녀를 믿습니다."라고 말하던 순간, 그리고 엘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꿈꾸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는 세상 어떤 사람보다 멋있었다. 그래서 영화 속 최애 장면은 법정씬과 더불어, 요 아래 장면이다.


이야기 해 봐, 더 이야기 해.

네 이야기 정말 재미있어. 내가 다 들어줄게. 이런 느낌? ^^


리얼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서 내 머릿 속에는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팔머 조스 목사가 엘리에게

 "아버지를 사랑했어? 그럼 증명해 봐."라고 하던 순간도,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의 아내가 환각을 보고 괴로워하는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가슴에 손을 갖다 대며 " (당신이 보는 게 아니라) 이게 리얼이야. "라고 하던 순간도,

약물 중독에 빠진 키타가 정신을 잃어가면서 " 나에게 리얼은 (사랑하는) 야지상이야! "라고 외치며 중독에서 벗어나려 괴로워하던 순간도,

20여년 전 교장 선생님이 초임 교사이던 내게 " 보이는 것을 믿기는 쉽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진짜 믿는 거 아니겠어요? "라고 했던 순간도.

우리는 리얼한 관계인지를 논하던 옛사랑도_


이 넓은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면 얼마나 공간 낭비인가?

나는 공상과학 영화에 그리 흥미가 많지도 않고, 누군가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 외계인이 있다는 걸 믿는다는 거야?"라고 그냥 흘려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마지막 이유는 엘리가 보았던 그 아름다운 세계, 우리 외의 또 다른 경이로운 존재를 만나고 싶어서다.


과학이나 기술의 발달을 위험하게 보고 경계하는 사람들도 많을 테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기술 문명의 발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영화 마지막 자막이 흐를 때,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이 떠올랐다. 아, 이 영화가 <코스모스>를 쓴 그.. 칼 세이건의 작품이었구나. 그럼 시인이 쓴 거네..^^

저도 정말 고마워요, 칼.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오르는 언덕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