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 <뛰는 사람>
추석 연휴ㅡ
고향에 못간(안간?) 대신 카페에서 책도 읽고 쓰고 싶었던 이야기도 노트에 끄적였다. 원래는 도서관에 박혀 있겠다는 계획이었으나 도서관도 명절엔 쉰다는 것을 깜빡해버렸다. 울 동네 도서관은 금요일 빼면 주말에도 오픈을 해서 착각을;; 그래서 집 근처 카페로 노선을 변경했다. (동생은 혼자 살면서 집에서 공부하지 왜 카페에 가냐고 물었다. 음.. 니네 언닌 그렇게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란다. “집에 있음 눕고 싶고 유튜브 보면서 시간 보낼까봐.” 라는 대답에 동생이 바로 알아들었다.) 나는 계획적이고 의지가 강한 타입이 아니라서 오히려 물리적 환경을 바꾸려 애쓰는 편이다. 할 일이 많을 땐 일단 일찍 일어나서 빨리 유혹이 없는 공간으로 간다.
해야 할 일이 많을 때, 사실 마음은 급하고 여유가 없지만,, 나는 그럴수록 그 일의 틈틈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끼워넣는다. 이유 없이,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내가 좋아서, 순수한 즐거움으로 하는 그런 일들. 바쁜데 뭐하러 그런 것까지 하냐고, 그럴 여유가 어딨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우리 엄마 ㅋㅋㅋㅋㅋ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 눈엔 내가 쓸데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가보다.) 그때마다 내가 말한다.
이건 일이 아니에요. 이게 나에겐 쉬는 거라구요.
지난 주에도 잠을 제대로 못자고 네 개의 서평과 발제문을 써야 했다. 누가 봤다면 대체 왜 그러고 사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힘들었고, 수면부족으로 머리가 멍..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 쓴 뒤의 뿌듯함이 더 큰 행복을 주니까.
돈이 되는 것도, 커리어와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 쓸데 없어 보이는 그런 걸 해줘야 다른 걸 할 힘이 난다. 그런 일에 는 전공과 무관한 책을 읽거나, 사람들이 잘 안볼법한 이상한(?) 영화를 보는 것, 무작정 걷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렇게 어딘가에 생각나는 걸 끄적이는 것도.
문득 할 일 많고 바빠서 고향에 못간다고 하고선, 급하지도 않은 책이나 읽고 글을 쓰는 딸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엄마는 빨리빨리 할 일 끝내고 쉬라는 타입이라, 이러고 있는 내가 답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스스로에게 양분을 주는 마음으로 하는 거란 걸 이해해주길 바랄뿐. (엄마를 보면서 이해와 사랑은 정말 별개의 영역이란 걸 느낀다. 엄마가 나를 엄청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단지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고맙게도 주로 엄마가 나를 받아준다. 생각보다 큰 딸이 이상하고 특이한 면이 있다고ㅡ 그냥 그게 내 딸이라고.)
연휴 기간 동안 존 듀이의 인간관과 시민교육에 대한 글을 써야만 하는 내 손엔 <뛰는 사람>이라는, 아무리 봐도 그 주제와 무관해보이는 책이 들려져 있다. 오전 한나절 카페에 앉아 이 책을 읽는 것이 추석날 나에게 주는 양분이다.
나는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그래서 더)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지금은 <이지은 다이어트>와 유튜브의 각종 영상이 나의 아침 시간을 차지했으나, 한 때는 출근 전 집근처 공원에서 한 시간씩 운동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내 눈길을 잡아끈 이들은 모두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저 사람 멋있어! 하며 가끔은 뒤따라 달리게끔 만든 분이 있었는데, 얼핏 봐도 꽤 나이가 있으신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가 묵묵히 달리는 모습, 기계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팔다리에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작심 2주일을 2주마다 갱신하는(^^) 내가 몇달간 매일 그 뒷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아마 지금도 달리고 계실 것이다.
지은이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그냥 달리기를 좋아하는 생물학자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기록을 가진 마라토너였다. 24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계속 달려 252.2 km 라는 상상조차 어려운 기록을 가진, 80세에 100km 마라톤에 도전하겠다는 더 어마어마한 꿈을 가졌던 생물학자. 그 모든 기록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진심으로 자연과 달리기를 좋아했다는 것. 그는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무릎 관절도 생각하고 심박수도 생각해서 그만 달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무리한 운동이 노화를 앞당긴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이가 들었다고 그 모든 게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우리의 선입견이 얼마나 많은 일을 평생 가지 않은 길로 만드는지 알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암요, 맞아요 진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두 갈래 길 중에서 베른트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해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젊은 나이에 캘리포니아 주립대 정교수가 되었으나 3년만에 고향의 통나무집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달리고, 나방과 애벌레를 연구하고, 또 사슴을 따라 달렸다. 여든이 넘어서도 산을 달리고 있는 노학자를 상상한다. 특별한 야망이나 이루고 싶은 것이 없었다는 그는 이 모든 삶에 만족했다.
그런 그에게 친구가 보낸 편지가 이 책의 모든 내용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야. 가슴과 영혼을 채우는 지복(지극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니까.
(자네 말대로) 우리가 누린 그 달콤한 시간, 황금같은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라네. 달리기가 주는 황홀감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운 좋은 사람들인지. 모두 참 대단했지.
긴 시간 동안 불을 지펴준 자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네. 영원히 소중한 나의 벗 베른트, 최후의 순간까지 달릴 위대한 주자 ㅡ 128쪽
지극한 행복을 찾은 사람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진심으로 행복한지, 꽉.. 채워지는 느낌으로 충만해지는지 아는 사람은 진짜 복 받은 이들이다.
나는 순수하게 자신을 위해, 오롯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고 영혼을 채워주는 시간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믿는다. 밥벌이와 무관하고,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자신을 위해 하는 일. 우린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해 그런 일을 찾아야 하고, 운좋게 찾았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자신에게 그 양분을 채워주면 된다. 그런 일은 의외로 대단한 것이나, 큰 돈이 들거나, 아주 힘든 일은 아닐 것 같다. 대신 매일 어딘가를 향해 쫓기듯,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생각할 틈 없이 살기에 그런 순간을 의식하기가 어려울 뿐. 맨몸으로도 가능한 달리기에서 지극한 행복을 찾은 베른트와 달리기를 사랑하는 그의 친구들은 그런 면에서 더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하면 자기 계발이나 건강 관리 같은 걸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 이건 오히려 반대 의미에 가깝다^^ 그냥 순수한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이라는 게 핵심이므로, 게임도 괜찮고 멍 때리는 시간도 괜찮다. 그때의 즐거움은 순간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쾌락이 아니라, 편안하고 모든 게 충족된 듯한 느낌, 아무 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느낌과 비슷할 것이다. 베른트에게는 달리기가 그랬다. 젊었을 때는 1등을 해보겠다는 마음, 기록을 깨겠다는 마음도 있었으나 이제 여든을 넘긴 그는 그저 순수하게 달리기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 점에선 나도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 주말 낮,
집안에 앉아 혼자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소설을 읽다가 문득 창밖을 한번 보고, 나도 모르게 “아, 좋다.. “라고 혼잣말이 튀어나온 그 날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그런 순간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사실 하루 정도만 약속을 잡지^^;;) 혼자 시간을 보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는 죽은 후 단 한 가지 기억만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면, 당신은 어떤 순간을 간직하고 싶으냐고 묻는다. 극중 평범한 오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차창밖에서 불어온 바람이 뺨을 스치던 순간을 택한 사람이 있었다. 단 한 가지 기억만 가지고 사후 세계로 떠나야 하는 사람의 선택 치고는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런데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든 건지,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원하는 기억을 다시 만드는 장면을 보여줘서인지,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던 건지ㅡ 바로 그 바람이 내 뺨을 스친 것 마냥 이해가 되어버렸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서, 하늘이 파래서, 내가 좋아하는 초승달이 떠서, 햇살이 따뜻해서, 그날의 모든 피로를 잊고 잠드는 것처럼.
행복은 그걸 의식하지 않는 평범한 순간에 있는 것 같다. 여름밤 매미 소리의 운율을 느끼며 공원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봤을 때처럼ㅡ 아무 생각 없이.
아, 이대로 좋구나.. 싶은 순간.
언젠가 유명인사들이 남긴 마지막 말(유언?)을 보다가 뉴턴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그전까지 버나드쇼의 ‘우물쭈물 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를 가장 좋아했는데, 뉴턴이 내 마음을 더 앗아갔다. 뉴턴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겸손하면서도 그가 평생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는지 잘 보여준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나는 모른다.
나 자신에게 비춰진 나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소년일 뿐이다.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으며,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나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가끔씩 자그마한 돌과 예쁜 조개를 찾으며 즐거워했을 뿐이다.ㅡ 뉴턴
바닷에서 돌과 조개를 찾으며 즐거워하는 소년이라니ㅡ
<뛰는 사람>의 베른트 역시 숲에서 애벌레를 관찰하고 언젠가 한 그루의 나무에 대한 책을 쓰고싶다는 바람을 가진, 소년의 마음으로 즐겁게 공부하고 또 달렸다. 그는 고교 졸업 때도, 대학 졸업 때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분명한 인생 계획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달리기의 단순명료함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 계획이 없었어요. 그저 그때그때 관심이 있는 것을 좇았을 뿐입니다. ‘지금’ 달릴 수 있으니 달렸고, ‘지금’ 뒤영벌 애벌레가 내 앞에 있으니 놀고 연구한 것이었어요. 어릴 때나 늙을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여전히 ‘지금’ 재미있는 걸 합니다. 너무 앞서서 일일이 계획하다 보면 오히려 막다른 길에 도달하거나 좌절하기 쉽죠. 오히려 끌리는 일을 하면 하나 다음에 다른 하나가 찾아와요. 그리고 그건 결과가 아닌 새로운 행로의 시작이 되곤 했죠. 돌아보면 생물학과 달리기의 인연은 정말이지 신기해요. 제가 그 길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건, 그저 그 길이 제가 가야 할 길인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ㅡ <김지수의 인터스텔라>,조선비즈, 2022.9.3.
마지막 순간에 뉴턴처럼,
베른트 하인리히처럼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계획된 범주를 벗어난 우연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고 나면 가슴 한구석이 꽉.. 채워지는 그런 일을 하면서
즐겁게.
그래서 마감일이 다가오는 날에도
이런 짓을 하며^^ 나에게 양분을 준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지났다. 하하하, 이런 모든 것이 존 듀이와 시민 교육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라며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음.)
나를 위한 일을 했으니, 이제 해야 하는 일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