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볕 냄새 Sep 26. 2022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0.2%의 관객이 되어드릴게요.

언젠가의 글에서 썼듯이, 나는 어릴 때 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을 구하고 지구를 들어올리는 남자가 멋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온갖 비위 다맞추고 힘든 하루를 어찌 어찌 버텨낸 뒤 통닭 한마리를 사들고 오는 남자가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이상주의자에 로맨티스트라고 하던데, 이럴 땐 완전 현실주의자^^)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자존심을 죽이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는 게 훨씬 더 힘들 것 같았다. 나는 쭉ㅡ 그냥 평범한 회사원의 아내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돌아오면 아주 호기롭게 “힘들면 때려치워도 돼. 내가 먹여 살릴게!”라고 말하고 같이 통닭과 맥주를 먹으며 상사들 뒷담화를 해주는 부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니 내 꿈을 이루려면 완벽하고 영웅적인 남자를 만나서는 안되었다^^ ( 될려면 내가 그런 여자가 되어야 함 ㅋㅋㅋㅋㅋ 그만두고 싶음 그만 둬도 된다고 하려면 김은희 작가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까나.. 너무 큰 꿈이다 ㅋㅋㅋㅋㅋ)


영웅들의 불사신 같은 캐릭터도 어쩐지 정이 안갔지만, 가족을 내팽개치고 그런 일을 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다. 그때 난 아주 어렸는데도, 처자식은 어쩌고 저러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아내와 아이, 다른 가족이 없을 수도 있단 생각은 못했다.) 그러면서 동생과 둘이서 우린 독립운동가의 아내는 될 수 없는 사람이야ㅡ 가지 말라고 붙잡았겠지, 내가 없는데 나라가 다 무슨 소용이야? 나라를 구하고 죽는 것보단 그냥 내 옆에 오래 있어달라고 매달렸을 평범한 여자들ㅋㅋㅋ 그러니 애시당초 영웅과의 남자는 만나지 말자!!! (언젠가 아이유가 이상형의 남자로 장수할 것 같은 남자를 꼽았는데, 나도 이상형에 이게 포함되어서 웃음이 났다 ㅋㅋㅋㅋ 맞아, 오래 사는 거 중요해. 나만큼은 살아야지.)


그래서 그렇게 인기가 있다는데도 마블의 영화를 좀처럼 보지 않았다. 물론 지금은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을 재밌게 본다. 그치만, 음.. 여전히 나는 영웅이 주인공인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교에 다니던 때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이런저런 스터디도 하고 농촌봉사활동도 다녔다. 1학년 여름, 서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나는 선배 오빠가 내 동기에게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사람들이 일상에선 후배에게 저렇게 권위적이라니, 도대체 우린 뭘 위해 이런 걸 하고 있는 거지? 뭐야? 우리가 밖에서 자유나 평등을 위해 싸우면서 집에 와선 부인이나 아이를 막 대하는 그런 사람들인 건가? 그럴바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 가족들에게 다정한 게 훨씬 더 나은데.


그날 난 내가 속해 있던 동아리를 탈퇴할 것인가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주머니 속 동아리방 열쇠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내가 그날의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선배가 화를 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나는 과감히 이 열쇠를 반납하고 일말의 미련도 없이 나오리라, 내 머릿속엔 그런 극적인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며칠 뒤 우린 서울로 돌아왔고,

선배와 단둘이 있게 되자 내가 얘기를 꺼냈다. 나는 우리의 모임과 공부, 활동에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나는 대의명분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오빠에게 실망했단 것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단 것도. 더구나 다른 목적도 아니고 민주주의, 자유, 평등 같은 이상을 내세우면서 우리 내부에선 더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게 싫다고. (이제 내게 화를 내겠지.. 니가 뭘 안다고!)


하지만 내 시나리오는 완전히 빗나갔다.

그 오빠는 잊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이 그런 말과 행동을 했는지 의식하지 못했다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런 줄 알았다면 진즉 고쳤을 거라고.

나는 잠시 멍ㅡ했다. 정신을 차리자, 내 마음은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섞여 있었다. 아아.. 이러면 내가 너무 이 사람을 못 믿었던 게 미안한데.. 그렇지만 실망시키지 않아줘서 고마워요!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더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실수나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보다,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고치려는 사람을 더 존경하고 또 좋아한다. 그 뒤로 나는 그 오빠를 진심으로 믿고 좋아하게 되었다.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열쇠는 졸업때까지, 아니 졸업한 후에도, 결국 그 동아리가 사라져 열쇠가 필요 없게 되었을 때까지 남아 있었다.



토요일에 내가 나에게 주는 미션(건강검진, 학회 발표) 중 남은 하나를 끝내고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잤다.

정말 오랜만에, 아무 근심 없이 푹.

그리곤 일요일엔 빠져나간 에너지와 양분을 채워주려 도서관에 갔다. 가는 길목에 물길이 이어져있는데, 작은 물고기랑 워터코인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물고기의 살랑살랑한 몸짓은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또 딴소리.


도서관에서 읽으려고 가져 간 책은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작가가 함께 쓴 <사이보그가 되다>였는데, 또 오래 앉아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서 서가 구경을 하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에세이집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런데 거기에 나온 이야기가 또 훅!! 내 마음을 잡아 끌어버렸다.

아, 이 양반 참..


감독이 영화 <킹스 스피치>를 본 뒤에 쓴 짤막한 소감이었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가 다 들어있었다.

아, 이 양반 정말!

고레에다 감독은 <킹스 스피치>를 말더듬증을 극복하는 ‘작은’ 이야기가, 왕이 국민에게 왕으로 인정받는 연설을 성공시킨다는 ‘큰’ 이야기와 잘 겹쳐진 훌륭한 영화라고 썼다. 그러나 또 한편 ‘올바른’ 전쟁에 국민들을 몰아넣는 왕의 이야기란 생각에 위화감이 들었다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있어도, 그야말로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거지 전쟁이나 폭력 앞에 ‘올바름’이나 ‘정의’라는 수식어를 쓸 수 있는 건지 아주 오래전부터 의문을 품어왔던 터라 고레에다 감독이 느낀 이 위화감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 이야기다. 감독은 만약 자신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본다.
왕이 아니라 왕의 말더듬증을 치료한 언어 치료사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자신이 쓴 연설문으로 자신의 아이들이 ‘올바른’ 전쟁에 참전해 상처받는 것을 본다… 그런 식으로 평범한 인간이 커다란 올바름과 작은 (‘아버지로서의’) 고통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야기는 어떨까. 아마 아카데미상을 탈순 없겠지만, 어쩌면 지지해주는 사람이 2할 정도는 있을지 모른다… 헌법 기념일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ㅡ <걷는듯 천천히>, 216-218쪽

그런데,

과연 뭐가 ‘큰’ 이야기이고, 뭐가 ‘작은’ 것일까

그 작은 것들이 훨씬 더 큰 게 아닐까ㅡ


스무살의 어느날 선배에게 실망감을 토로하던 나,

독립운동가의 아내는 결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던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선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가 자리를 바꿔가며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아카데미상보다 그 2할의 관객이 되어 드리겠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지루함을 견디는 법을 배웁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