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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Feb 06. 2023

악당을 쳐부수는 뒷맛이 씁쓸하다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파이아키아>에서 이동진씨가 크리스토퍼 발츠의 연기를 하도 극찬해서,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궁금해진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시작한 지 몇 분 안되어 이미 이 남자의 웃는 얼굴이 징그러워 꼴도 보기 싫어졌으니까 연기력은 뭐 말 다 했지. 특정 장면이 잔인해서 으... 하는 순간도 많고 개인적인 취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영화 자체로의 몰입감과 재미는 있었다. 10대 후반, 20대때 좋아했던 독일 배우(틸 슈바이거, 다니엘 브륄)가 두 명이나 등장해서 추억은 방울방울~ 반가운 시간을 가졌고, 또 멋있고 아름다운 멜라니 로랑이 나와서 넋 놓고 '아아아...' 하는 시간도 가졌고, 마지막에 목표로 하는 악을 응징하며 대폭발을 이뤄냈으니 개운하고 좋았어야 하건만, 그렇지가 못했다. 음.. 왜 불편한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혼란스럽다.

그래서 아마 이 글도 혼란스러울 거 같다는... ^^;;;



누가 더 나쁜 놈일까.


영화의 한 축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악, 히틀러와 괴벨스 일당으로 대표되는 나치 독일이 있다.  또 다른 한 축에는 이들과 맞서싸우는 연합국측의 비밀 부대(이걸 부대라고 하자니 규모가 작고, 첩보원이라고 하니 또 그 느낌이 안 살지만.. 뭐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엘도(브래드 피트 역)라는 인물이 이끄는 바스터즈가 있다. 그리고 이 양끝 사이에 이어진 수많은 지점에 많은 사람들, 평범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고, 확실히 더 많은 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영화의 맨 처음에 등장하는, 유대인 이웃을 숨겨줬음을 자백한 뒤 눈물을 떨구는 프랑스인 농부와 갓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짓고 축하주를 들이키던 독일인 병사처럼 어느 편이든 전쟁의 광풍 속에서 평범한 인간들이 겪는 갈등과 고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좋다. 스케일 크게 폭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우두두두 들리고, 얼굴도 알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은 스펙타클하지만, 수전 손택이 했던 말 그대로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 소비하는 것 같아서 전쟁의 비극을 오히려 더 멀어지게 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클로즈업해서 일그러진 한 사람의 표정과 눈빛,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면 그 사람의 슬픔과 두려움, 고뇌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다. 그 사람은 적이고 나쁜 놈이기도 하지만,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에게도 지켜야할 것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주장, 쟁점에 있어서 확실하고 극단적인 입장이 겉으로는 두드러져 보이지만, 실제 많은 사람들은 중간의 어떤 지점에서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그런 건 잘 드러나지가 않는게 아쉬워서 또 딴 소리로 잠깐 샜다 ㅋㅋㅋ

다시 본론으로.    


'악'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는 선함도 악함도 추상적인 것으로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히틀러와 나치로 대표되는 악은 크리스토퍼 발츠가 연기한 한스 대령으로 구체화되면서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맘껏 미워해도 되는 존재가 되었다. 한스 대령은 유대인을 찾아 죽이는 나치 친위대 대장이라는 역 자체도 그렇지만,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웃으며 공포에 질린 상대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을 배우가 너무 잘 연기해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동정심 같은 것을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이 인물은 나치가 추구하는 어떤 목적이나 이상에 동조해서라기보다는 유대인을 잘 잡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자신의 성공과 위대함에 도취되어있고, 유대인을 죽인다는 행위보다 겁에 질린 사람을 보며 자신이 더 강한 위치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을 즐기는 진정한 새디스트처럼 보였다. 그래서 분노가 치밀기도 하지만 소름끼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 인물을 보면서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옳다고 광적으로, 또 스스로는 진심으로 믿어서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과 비교하니 좀 더 혼란스럽다.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이 위대한 독일,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를 만든다고 믿었다면, 그래서 그런 끔찍한 짓들을 서슴치 않고 했다면 세상을 더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이 쪽일 거 같은데, 개별적인 인간으로서의 미움은 한스 대령 같은 인물이 더 크게 느껴진다. 둘 중 더 나쁜 놈은 누구일까.



영화 속에서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첫번째 장면은 엘도와 그의 부하들이 독일 병사들을 잡아 머릿가죽을 벗기는 살육을 벌이는 순간이었다. 나치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을 이해한다 해도, 죽은 사람의 머리에서 두피를 벗겨내는 모습은 차마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독일군이 숨은 곳을 알려주면 살려주겠다며 한 독일군 병사를 협박하는 장면에서, 그 병사를 조롱하고, 동료를 배신할 수 없다며 발설을 거부하는 그를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 또한 마음이 불편했다. 한스 대령은 이미 악을 대표하는 입장에 서 있었으니 밉지만 그러려니 하는데, 나치와 맞서 싸우려는 이쪽은 그럼 악당이 아니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장면을 보는 순간엔 너무 잔인해서 이쪽도 악당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악과 맞서는 쪽은 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내 고정관념에도 문제가 있었지..) 전쟁은 특수 상황이긴 하지만, 어차피 죽일 것이라면 그냥 죽이고 말 것이지, 그렇게 모욕과 멸시, 조롱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택할 필요가 있을까. 나치도 그러지 않았으냐고? 꼭 똑같이 되갚아야만 하는 것일까. 악을 처단해야 한다면 이쪽은 좀 더 품위 있게 해주었다면, 더 큰 복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이상적인 생각을 하는 것일까나.


그러다가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을 향해 오는, 몽둥이를 든 반쯤 미친 사내를 바라보는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던 그 독일 병사는 어떤 인간이길래 저런 결연함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아니, 동료를 배신하는 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맞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백하고 살려달라고 해야 하지 않나. 더구나 자기네들이 잘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처음에 나는 그가 정말로 일종의 동료애나 의리 같은 것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는 나치를 신봉하는 독일군이었지만, 사적인 어떤 면에서는 존경할 만한 면모를 지녔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런 그를 모욕하고 조롱하며 죽이는 엘도와 부하들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곰곰히 생각하니 그것이 진정한 동료애(나치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전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가까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의리)의 발로가 아니라면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제 정신이 아닌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고 있는 광신도와 같은 사람이라면? 아니면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한 뒤 '악의 평범성(악의 진부함)'을 논하며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유하지 않고' 그저 "저는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제 위치에서 열심히 일한 것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인간이라면?


그래서 영화를 본 뒤 등장인물에 비추어 악인의 카테고리를 내 맘대로(?) 나눠보았다.


유형1)

보편적 정의에 어긋나는 잘못된 신념과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며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나쁜 방법도 가리지 않는 악당. 본인이 진심으로 그 이데올로기의 옳음을 믿고 있어서 그와 같은 자기만의 정의를 밀어붙이는 사람. 신념있는 사람이 무섭다더니, 로베스 피에르 같은 사람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유형2)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타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기는 한스 대령과 같은 악당. 그는 나르시스트이자 새디스트, 소시오패스처럼 보이는데, 또 영화 마지막을 보면 자신에게 더 많은 부와 지위를 준다면 지금까지 충성해오던 것을 일순간에 버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자의 면모도 보인다.


유형3)

아이히만처럼 맹목적으로 국가나 더 큰 권력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면서 스스로 어떤 나쁜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 말 그대로 누구나 될 수 있는 평범한 악인. 많은 나치 독일군인들이 그랬을 수 있다.


유형4)

목적 자체는 선하지만, 그 선을 이룬다는 명목으로 나쁜 수단을 정당화하는 사람. 이 영화에서라면 엘도와 그 부하들이 여기에 해당되려나.


음...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이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을 분류해보면 이 정도?


개인적으론 2번이 1번보다 더 잔인하고 인간의 가장 취약한 심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아서 싫은데, 그가 가진 나쁜 이데올로기도 다른 이익을 제공함으로써 금방 포기시킬 수 있는 반면 1번은 자신이 믿는 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그에 대한 의심조차 하지 않으므로 권력을 잡는다면 사회에 미치는 악은 1번이 더 클 것 같다. 3번은 누구나 될 수 있고, 또 직접적으로 악을 지시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죄책감이나 잘못에 대한 인식이 없을 것 같다는 점에서 2번보다 더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하지만 또 2번은 나쁜 짓인줄 알고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런 짓을 한다는 게..ㅠㅠ 심지어 그것을 어떤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나 뭐 그런 차원만이 아니라 게임처럼 즐긴다는 것이 무섭지. 4번 유형은 그 중 제일 덜 나빠보이지만, 그 선한 목적이라는 것이 정말로 선한 것인지 정직하게 자기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 '정의를 위한 전쟁'을 내세운 많은 국가들이 사실은 정의를 명분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데, 그걸 알고서 정의를 부르짖는다면 2번 유형에 가까워지는 거고, 모르고 있다면 1번 유형에 가까운 거겠지. 음음... 범주화를 하면 생각이 좀 더 명료해질 줄 알았는데,, 더 복잡해졌다.


그런데 나는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보다 '전체주의'와 '맹목성'을 더 무서운 것이라 생각하므로 악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잘못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 그래서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와 선을 따라야 한다고 믿고 강제하는 것, 아예 자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제일 무섭다. 흔히 몰라서 잘못한 것은 괜찮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모름이 성찰과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주 차이가 크다. 물론 알면서도 자기의 다른 잇속이나 쾌락을 위해 그런 짓을 하는 인간은 끔찍하고 싫다. 어떤 유형도 좋아할 순 없으니, 싫음의 정도를 구분하자면 권력자로서는 전자가 더 싫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기엔 후자가 더 싫다.


다 쓰고보니 씁쓸함이 조금 덜 해졌다.

잘못하면 인류애가 줄어들 뻔(?) 했으나,

다행히 유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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