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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Feb 06. 2023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영화 <팬텀 스레드>의 알마와 레이놀즈

어린 시절 나는 사랑이 감정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두근대고 설레이고, 그래서 차분하고 안정되어 있기보다는 요동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이 이성의 영역이라면 어쩐지 차갑고 계산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러한 '감정'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두근거림이나 설레임은 낯섦과 신비함, 조금 거리감을 둔 상태에서 극대화되고, 장기간 지속되기 어려우니까. 이제 나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은 두근거림도 있지만 그보다 상대방을 아끼는 마음이랄까, 기뻤으면 좋겠고 편안했으면 좋겠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에 가까워졌다. 그런 마음은 어떻게,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대방의 무엇을 보고 그런 감정이 생겨나는 것일까. 내 안에 있던 감정을 끌어낸 어떤 무엇이 없었다면, 그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다른 수많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 않았을까. 왜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은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일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상대의 특정한 면을 좋아해서 그런 감정을 갖게 된 거라면, 그게 얼굴이든 목소리든 성격의 어떤 부분이든 그가 그것을 가진 것과 내가 그것을 발견한 것 모두 '우연'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게 우연이라면 나는 다시 그런 유사한 면모를 가진 누구에게라도 끌림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빅토리아 시대 서양의 고전적인 복식이 어울리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런 옷이 어울리는 모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 옷이 어울린다는 사실 때문에 누구를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안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옷이 어울린다는 점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내 의식의 아래에는 그 둘을 구별하는 다른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상형'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소개받을 때나 이야기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특정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이렇게 파고들어가다 보면 사랑은 감정의 영역이지만, 그 감정 또한 이성(그러나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재미있게도 mbti 유형 검사에서 infp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것도 f가 꽤 강한 편으로 나오는데, 주변인들에게서 종종 "그래도(?) 공감을 잘 해주잖아. 정서가 풍부하잖아."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가 찜찜하지만 어쨌거나 ㅋㅋㅋ)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보편적으로 좋은 사람인가의 여부를 떠나 '나'라는 사람과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직관적으로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잘 맞을 것 같다, 우리가 제법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직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그 잠깐의 순간에 우리 머릿속에서 온갖 이성이 작동한 결과 "당신을 오랫동안 찾아헤맨 것 같아.."라는 달콤한 대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때 발휘되는 직관이나 끌리는 감정은 어쩌면 살아오면서 축적된 나의 경험, 가치관 등이 모두 결합되어 나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이성이 바로 그 순간에 마법처럼 작동한 결과물인지도.


또 딴소리가 길었지만, 사랑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왜 누군가는 특별해지고 또 다른 사람은 평범한 존재로 남는지 생각해보게 된 건 영화 <팬텀 스레드> 때문이었다. 주인공 알마와 레이놀즈의 사랑이 좀처럼 쉽게 이해되지 않았기에. 그래서 오늘은 그 빅토리아 시대의 옷이 잘 어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마담 올랜스카..."라고 부르며 올랜스카 부인의 발등에 입을 맞추어서 20대 초반의 나를 설레게 했던 <순수의 시대>의 뉴랜드 아처,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 <팬텀 스레드>에 대한 단상이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는 관계


영화의 주인공 레이놀즈(다니엘 데이 루이스 역)는 사교계와 왕족들이 줄서서 찾는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이다. 모든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그는 좀 강박적인 예민함을 가지고 있다. 작은 소리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특히 일에 집중했을 때는 최고조에 달해서 옆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마음에 드는 여자와 함께 살아도 금방 싫증을 느끼며 독신주의를 공언한다. 사소한 것에서 싫증을 느끼고,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를 귀찮다고 여기며, 그렇게 지겹고 귀찮아진 여자를 누나를 통해 떼어내는 나쁜 남자이다. 그런 그가 시골 식당의 웨이트리스로 일하던 알마(빅키 크리엡스 역)에게 빠진다. 재미있게도 그가 다소 평범해 보이던 알마에게 눈길을 주게 된 것은 식당에서 실수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였다. 이후에도 알마의 입술에 묻은 립스틱을 지우며 맨 얼굴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는 조금은 투박하고 순수해보이는 알마의 모습에 끌렸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투박함이나 조심성 없음이 그를 괴롭힌다. 레이놀즈는 알마를 좋아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때때로 그녀에게 (교양이 없다고) 실망하고 경멸을 느낀다. 사람들이 흔히 연애할 때 좋아했던 바로 그 점이 나중에 싫어지는 이유가 된다고 하더니, 이 영화의 레이놀즈도 꼭 그렇다. 알마가 가진 순수함은 소녀같은 순수함이라기보다(사실 그녀는 굉장히 능숙하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에 솔직하고 사교계의 여자들과는 다른 거칠고 투박한 면에 가까워보였다. 이런 여자의 매력이 고상함이나 격식 있는 자리에 어울리는 교양과 공존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의 어떤 면모는 특정한 순간에는 장점이나 매력이 될 수 있지만, 뒤집어보면 그로 인한 단점도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이면에 있는 결점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자신이 끌어안을 수 있으냐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중요한 부분이겠지. 어쨌거나 레이놀즈는 첫눈에 알마에게 빠졌고, 그녀가 자신이 오랫동안 찾아헤매던 사람이라고 믿었다.


알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깨가 너무 넓고, 가슴은 납작하고, 엉덩이는 쓸데 없이 커서 자신의 몸을 좋아하지 않았다던 알마에게 레이놀즈의 누나는 알마가 레이놀즈가 원하는 완벽한 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살짝 나온 뱃살마저도. 레이놀즈는 뱃살이 있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거였다. "가슴이 작은 건 상관없어, 필요하다면 만들어줄 수 있으니까."라고 무심하게 말하는 레이놀즈의 옷을 입은 뒤 알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시골 식당의 촌스러운 웨이트리스가 아니라, 모두가 숨죽이고 바라보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된 것이다. 그의 옷은 알마를 자신감 넘치고, 아름답고, 우아한 여자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옷을 벗으면 알마는 다시 원래의 맨 얼굴로, 거칠고 투박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레이놀즈는 식사 시간에 달그락 달그락 큰 소리를 내며 물을 따르고 빵을 자르는 알마가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했다.


레이놀즈가, 그가 만든 옷이 그녀의 결핍을 채워주었다면 레이놀즈는 어땠을까.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강해보이지만 사실은 그 강해야 한다는 강박에 묶여 있는, 자기 말대로 저주받은 인물이다. 모두가 찾는 힘 있고 잘나가는 디자이너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서 그는 이른바 사교계 여왕님들의 구미를 맞춰야 한다. 정성스럽게 만든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몸 관리도 해오지 않는 손님들을 보면 화가 치밀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함부로 굴 수가 없다. 그렇게 꽉 짜여진 긴장과 가식 속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알마는 그가 꿈꾸었던 틈을 열어주는 존재인 것 같다. 레이놀즈가 만든 옷이 구겨져도 아무렇지 않게 먹고 마시다 옷을 입은채 잠이 든 귀족 부인을 보며 알마는 몹시 화를 내고 결국 레이놀즈를 부추겨 그 옷을 뺏어오고야 만다. 그 장면에서 레이놀즈는 알마의 이런 면을 사랑하겠구나(그리고 또 이런 면 때문에 힘들어지겠구나...), 생각했다.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자신이 쏟은 정성과 자신이 만든 옷의 가치를 알아봐주고, 자신조차 어쩔 수 없는 대상에게 대신 화를 내주는 여자라니.



당신이 쓰러졌으면 좋겠어. 힘없이, 나약하게.


서로의 결여된 부분을 채워준다고는 하지만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습관이 너무 다른 두 사람. 레이놀즈는 알마가 떠나기를 바라기에 이른다. 그러나 알마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레이놀즈가 자신에게 강한 남자로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힘없이 쓰러져 자신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가 되어 자신에게 의존하기를 원했던 그녀는 레이놀즈가 먹는 음식에 독버섯을 타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레이놀즈는 병에 걸린다. 물론 죽을만큼은 아니다. 알마가 나중에 고백한대로 죽지 않을만큼, 아프고 나면 다시 강해질 수 있게끔 그 정도로만 독버섯을 넣는다. 이 장면에서 나는 이렇게 상대를 나약하게 만들어서 자신에게 의존하게 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알마의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꼭 필요한 존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긴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애인의 음식에 독을 타나.


사랑하는 사이에서 서로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그런 관계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자발적인 의지에 기초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많이 믿고 의지하고 있기에 그런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지, 상대가 어떤 덫을 쳐놓고 내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틈을 노려 자신에게 의지하게끔 만든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알마는 보기보다 더 무서운 여자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라도 붙잡아두고 싶었을까.. 나는 상대방이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 사람인데 나를 선택하기를 바랐다. 나에게 의지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 역시도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으로 그렇게 해주기를. 그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를 택한 것이라면 뭔가 나를 향한 마음이 퇴색되는 느낌이랄까. (밀당을 싫어하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두고 계산을 한다는 것도 싫지만, 그렇게 해서 상대를 불안하거나 더 애타게 만듦으로써 나에게 더 끌리도록 만드는 거라면 그게 그 사람의 진짜 마음과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사랑은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관계에서 가능한 것이라고도 하지만, 나는 필요는 사랑의 선행 조건이 아니라 결과라고 믿는다. 그 사람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사람은 내게 무용하고 불필요하다- 오직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그 결과로서 상대가 필요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떤 특정한 필요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그게 채워진 나에게 그는 더 무슨 의미가 될까.


그런데 무엇보다 마음에 안들었던 것은 알마가 레이놀즈를 속이고 있다는 거였다. 자신이 일부러 독버섯을 넣었으면서 레이놀즈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이 걸렸고, 그래서 자신이 필요한 것처럼 조작해놓았다는 것.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

레이놀즈는 자신이 먹는 음식에 알마가 독버섯을 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다 알면서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알마를 바라보면서 한 스푼씩 떠먹는다. (아, 이 장면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 연기... 와와와...)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알마는 "난 당신이 쓰러졌으면 좋겠어. 힘없이, 나약하게. 오직 나의 도움을 바라도록... 그리곤 다시 강해졌으면 해요... 죽지는 않을 거에요. 당신은 휴식이 필요해요."라고 말한다. 와, 이 여자 뻔뻔스럽다. 그런데 레이놀즈도 다 알면서 먹고 있었다니!! 게다가 "쓰러지기 전에 키스해줘."라니_ 나로서는 두 사람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레이놀즈가 알마의 행위를 알고 독버섯이 든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마가 진실을 그대로 고백했다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의존하게 만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먹을 음식에 독버섯을 타는 건 여전히 이해불가이지만, 그래도 사랑이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서로에게 잘 맞는 짝을 찾는 것이라면.. 몰래 놓은 덫이 아니라, 서로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는 키를 상대에게 줘야 하니까.


결국 레이놀즈는 스스로 알마를 선택했다.

어쩌면 혼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그 강박을 알마를 통해서만, 알마의 독버섯을 통해서만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역시도 어린 아이마냥 기대어 잠들 휴식을 간절히 원했던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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