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액설로드, <협력의 진화>
로버트 액설로드라는 정치학자가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앞으로 계속 영향을 주고받아야 한다면 언제 그 사람과 협력하고, 또 언제 이기적으로 굴어야할지 알고 싶어했다. 단순히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서로 도우며 살라는 식의 도덕 교과서 같은 답이 아니라 현실에서 인간을 협력적인 행동으로 이끄는 실제적인 동기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실험적인 대회를 개최했다. 널리 알려진 ‘죄수의 딜레마’ 상황(여러 차례 반복된다는 점만 다르다)을 상정하고 전세계의 수많은 게임 이론가들에게 <컴퓨터 죄수의 딜레마 대회>에 프로그램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 수학 등 여러 분야의 게임 이론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게임 결과 ‘팃포탯(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 우승을 차지했다. 액설로드는 이 전략의 유효성이 우연인지 확인하고자 1차 대회의 우승 프로그램과 대회 결과를 공개한 뒤 2차 대회를 열었고, 두번째도 ‘팃포탯’이 우승을 차지했다. 팃포탯은 대회에 참가한 프로그램 중 가장 단순한 것(상대가 하는 대로 해준다)이었다. 액설로드는 가장 단순한 전략인 팃포탯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 전략의 네 가지 특성으로 꼽았다.
1) 상대가 협력하는 한 나도 협력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처음 만나는 이에게는 우선 협력적 태도를 취하고, 먼저 배신하지 않는다.)
2) 상대의 예상치 않은 배반이 있을 경우 나도 응징한다.
3) 상대의 도발을 응징한 후 (상대가 다시 잘 지내자고 협력적 태도를 취할 경우) 용서한다.
4) 상대가 내 행동 패턴(난 먼저 배신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잘못하면 가만 있지 않겠어!)에 적응할 수 있게 행동을 명확하게 한다.
액설로드는 이 대회의 결과를 <협력의 진화>라는 책에 실었다. 결론은 남을 돕는 것이 나에게도 이득이다. 이타성의 필요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이 ‘호혜성’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니 타인에게 협력하는 것이 내게 손해가 될까 망설일 필요가 없다. 진화의 측면에서도 남에게 비협력적인 이기적 인물은 처음엔 유리할 지 모르나, 관계가 반복되면 되면 평판이 나빠져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인생은 1회성 죄수의 딜레마가 아니라 장기전이고, 몇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이고, 과거에 알았던 사람을 또 만나게 되니까.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차드 도킨스는 <협력의 진화>에 엄청난 추천사를 남겼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이 책을 공부하면 이 행성이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거라고, 또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둬놓고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성경을 대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 책이 그 정도인가? 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 액설로드의 결론을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다면 세상이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을 것은 분명해보인다.(이 순간, 푸틴이 이 책을 읽었다면..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알려주는 것
난 팃포탯의 4가지 특징을 보고 특히 4번에 공감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거나 비밀 전략을 쓰는 것이 유리할 거라 생각하는데, 나는 반대쪽에 가깝다. 내게 비밀 전략은 상대와 길고 깊은 관계를 맺지 않을 때, 언제든 배신할 마음을 먹고 있을 때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무엇보다 이런 관계는 긴장하고 있어야 하므로 피곤하다.
오히려 길게 가려면 팃포탯 전략의 4번 특징처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숨기지 않고 명확히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게 자신에게도 편하다. 나는 다 알려줬으니 그 이후의 모든 것은 상대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나를 끝까지 믿든, 떠나든 그건 네 선택이야.)
계산적인 팃포탯도 충분히 괜찮다
여러 의문을 남겼지만 나는 많은 관계에서 팃포탯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실험의 결과를 남겨준 액설로드에게 감사한다. 이 책 이후로 학생들에게 친구들과 도우며 지내야 하는 이유를 도덕적 당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잘 설명해줄 수 있어서 더더더 고마웠다!
흔히 ‘계산적인’ 사람이란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지만, 사람이 성자가 아닌 이상 자기의 이익을 고려해서 행동하는 것 그 자체는 전혀 나쁠 것이 없다. (아니, 이건 당연한 것이고, 오히려 이게 너무 안되면 더 문제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스스로 지쳐버리거나, 상대에게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우리가 세상과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인생을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 보느냐 상호 윈윈이 가능한 것으로 보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이 제로섬 게임이라면 상대가 잃어야 내가 더 많이 갖게 되므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곧 타인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도 똑같다. 그럼 나는 타인을 도울 동기가 없어진다. 승자독식의 무한경쟁만이 남을 뿐.
그러나 삶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상대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은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진다면(호혜성의 관점) 자기이익과 이타성은 얼마든지 공존이 가능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아주 경쟁적인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때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계산적인 행동을 한다면 대부분 이해해줄 것이다.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 여기서 말하는 자기 이익을 고려하는 ‘계산적임’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고려하는 것으로 의미를 넓힌다면,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여러 계산 결과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을 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이익을 더 장기적이고 폭넓은 관점에서 보는 능력을 기르는 게 더더 중요해진다.)
나는 액설로드의 실험이 보여준 결과에 상당 부분 동의하며, 팃포탯이 대부분의 관계에서 효과적일 거라 생각한다. 특히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예를 들면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의 외교 전략을 취할 때 매우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모두 팃포탯을 쓴다면 전쟁이 안났겠지) 아, 물론 이 모든 것은 양자가 어느 정도 대등하다는 전제 하에서 유효하다. 한쪽이 너무 약하면 상대의 도발에 응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까. 그러니 관계에서의 균형이란 건 장기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매우 중요한 전제 조건이 된다.
대신 내 눈에 팃포탯은 쫌 비인간적이다. 현실의 인간이 이런 전략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면, 그는 감정이 결여되어있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번 잘못에 바로 응징한다거나, 용서를 빌면 또 바로 잘 지낸다거나 하는 이런 태도가 깊은 애정 관계에서는 힘들 거 같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여러 번의 배신에도 끝까지 믿어주고 싶을 수 있다. 또 어떤 사람의 배신에 대해서는 설령 상대가 사과하고 다시 잘 하려 한다고 해도 용서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그건 우리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이기만 한 게 아니라, 감정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배신(잘못? 실수?)이라면 적절한 응징 후 관용과 너그러움이 동반되어야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배신의 종류가 아예 신뢰를 잃을 정도의 그것이라면.. 흔히 말하는 비즈니스적인 관계나 가벼운 관계에선 (상대에게 얻을 것이 있거나 원래 깊은 신뢰가 없는 경우) 적당히 넘어가줄수도 있지만 오직 상대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관계에선 치명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말 가까운 친구나 연인, 가족과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특별히 이익이 되거나 잘 해줘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서, 그 사람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데 이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팃포탯이 유효할지 모르겠다. 설령 유효하다 해도 이런 태도를 실전에서 잘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도, 힘들게 하는 것도
늘 애정을 가진 가까운 사람인지도.
그들에게는 합리적인 이성이라는 게 잘 작동을 안하니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에 나오는 질문이 다 가족, 연인 문제인 이유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순간의 감정보다
대의(?)를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고 갑자기 변하면 안좋다지만..
내게 장기적으로 좋은 선택을 하려고, 넓은 의미에서 '계산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작은 것에는 관용적이 되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생각하자^^
또 딴소리가 많았다.
요는, 내가 나의 욕구에 더 관심이 많아졌고
그래서 계산적이 되고 있다는 것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