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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Aug 14. 2023

'아쉬움을 모르는' 연애 고수의 비극

주성치의 가유희사

이런 영화도 있었어?


이유는 알 수 없고,

어디 가서 먼저 이야기하지도 않지만,

나는 이른바 주성치로 대표할 수 있는 어딘가 이상한(?),

하지만 참을 수 없이 웃기고 또 한편 마음이 저리는 코미디를 좋아한다.

근사하고 멋진 캐릭터만큼이나 찌질하고 이상한 면이 있는 캐릭터에 반하기도 한다. (어느 한쪽 면만 있으면 안 된다.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멋진 사람이면 좋겠다.)


여하튼 나는 어릴 적부터

대놓고 웃기려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 내가 이런 말도 안되는 거 보고 웃고 있다니... 싶은데, 어쩔 수가 없잖아.

나도 모르게 키득키득 대고 있으니 부인할 수가 없다.


오늘 밤의 영화는 <주성치의 가유희사>다.

출연진에는 무려 장만옥과 장국영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는 각기 다른 이유지만 모두 사랑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세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큰 형 상만(황바이밍 역)은 결혼을 했지만 바람을 피우다 걸려 부인이 집을 나가버렸다. 흔한 레파토리지만 곁에 있다면 한대 때려주고 싶을만큼 어이 없게도 부인이 자신을 떠나 낯선 여자가 되자 부인에게 매력을 느낀다. 둘째 상환(주성치 역)은 결혼하지 않은 채 많은 여자를 상대로 카사노바 놀음을 즐기고 있다. 막내 상훈(장국영 역)은 도덕적이고 정조 관념이 있으나 여성스럽고 예민한 성격으로(나중에 알고보면 제일 상남자, 장국영의 앙칼진 연기와 터프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여자에게 그리 관심이 없다. 이런 세 형제가 사랑을 찾아가는 해피엔딩의 이야기


슬픈 장면도 웃음으로 승화시켜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보기에 딱 좋은 영화다.


영화 속에서 주성치는 카사노바 둘째 아들로 등장한다.

천하무적의 에펠탑 키스 기술을 가지고 있어, 모든 여자를 반하게 한다는^^ 어이 없는 설정이다.

아!! 이 에펠탑 키스를 글로 표현하니까 이렇게 재미가 없다. 직접 영화로 보면 왜 에펠탑 키스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뭐든 상상해보자,

그런데 진짜!! 에펠탑이다! (주성치니까)


그런 그의 상대역은 영화에 빠진 여자 하리옥(장만옥 역)이다. 이상하기로 말하자면 이 여자는 한 술 더 뜬다. 그녀는 좋아하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취미, 말투, 옷차림을 따라하며 애인에게도 남자주인공처럼 행동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런데 상환과 아주 쿵짝이 잘 맞아 두 사람은 온갖 코스프레와 영화 속 명장면을 따라하며 유쾌한 커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걸 보면, 연애하면 어때야 한다거나 사랑은 이래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전부다 다 가짜인 것만 같다.

그냥 사회가 만들어놓은 쓸데없는 관념.
나쁜 짓만 아니라면, 그냥 둘이 좋으면 된 거였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 이상한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게는 완벽한 한쌍이니까.


하지만 이런 완벽한 커플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상당히 엉뚱한 캐릭터인 하리옥도 여느 연인처럼 애인 상환이 자신만 바라봐주기를 바라고, 그에게서 안정감을 얻고 싶어한다. 그녀는 이제 영화 속 캐릭터 놀이가 아니라, 정말로 그를 좋아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상환은 '안정감'이라는 것을 모른다. 늘 장난스럽고 재기발랄한 그는 사랑의 문턱까지만 가보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리옥이 화를 내며 안정감을 느낄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상환은 정말로 고민하는 듯 했다.


안정감? 그게 뭐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

(에라 모르겠다, 갈테면 가. 다른 여자 또 만나면 되지 뭐.)


스킨십 기술과 말빨이 뛰어나 누구든 쉽게 꼬실 수 있는 그는 아쉬움을 모르는 인기남에 연애 고수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없다.'는 것, 누구든 곁에 있는 이를 '쉽게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비극이다.


모든 남자들이 부러워하는 비극이겠지 ㅎㅎ


그의 곁에는 늘 수많은 여자들이 있다.

그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들은 그가 그녀들을 생각하는 딱 그 정도로 그를 좋아한다.

(나중에 그도 알게 된다. 몸이 아픈 자기 곁에 남아줄 여자는 자기 곁에서 웃고 있는 그들이 아니었단 걸.)


하지만 이 여자들을 뭐라 욕할 순 없다.

자신을 가볍게 꼬시는 대상으로 여기고

언제든 대체가능하다고 여기는 남자에게 진짜 마음을 줄 여자가 있을까.  



언젠가 아는 동생이 그랬다.

텔레비전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과거의 연인을 그리워하며 울고 불고 하는 남녀를 보다가, 왜 자신은 이 나이가 되도록 저렇게 마음 아프게 그리워할 추억도, 대상도 없는 것인가.

아, 인생 헛살았나보다.. 라는 생각이.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어떤 남자친구와도 끝까지 함께 할거라는 생각 해본 적이 없잖아?

그녀는 순순히 인정했다. 예쁘고 인기도 많았기에 남자친구는 늘 있었다. 자신에겐 사랑도, 연애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어쩌면 그저 데이트 메이트 같은 상대를 만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연애 따로 결혼 따로라고 생각해서 언젠간 다 헤어질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난 이쪽의 그런 마음을 상대방도 알고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다 알면서도 여자친구가 너무 좋으니까 계속 만났을 거 같다. 이렇게 내 마음을 다 주면 상대도 언젠간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을 품었을지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내가 언제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게 되면, 글쎄..


상환에게 여자는 only one이 아니라 one of them이어서

아마 시작 단계에서부터 내 진심을 다 해야지, 하는 여자가 다가서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남자와의 결말은 크나큰 상처만 남기게 되니까.


하지만 결국 상처받게 되는 쪽은 누구일까, 생각해보면

상환과 같은 사람이 아닐까.


물론 모든 인기남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인기를 즐기며 쉽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하나뿐인 사람에 대한 애틋함과 깊은 애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문 법이니까

(스피노자 아저씨의 말씀이다.).


음.. 이렇게 되면

인기가 많지 않은 것도,

그다지 미인이 아닌 것도 다행인건가? ㅋㅋㅋㅋ

(우리 부모님의 빅 픽쳐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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