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스, 영화 <Her>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누구를,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
어린 시절 나는 사랑을 생각하면 늘 그 대상을 궁금해했다.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하게 될까.
친구들이 다소 독특한 취향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상상하던 대상은 통념에서 그리 벗어나 있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예상 밖의 인간이 아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와의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 것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를 보고 난 후였다. 엘라이자가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생명체를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게도 그녀가 사랑에 빠지고, 그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결단을 내릴 때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 않았다. 그녀의 행위가 별거 아니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행위는 커다란 용기와 결단력을 요구하는 거였다. 내가 그런 의문을 갖지 않았던 건 그녀가 남들이 말하는 괴물, 괴생명체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였어도 그를 사랑하게 되었을 거라고 믿었던 거다. 영화를 보면서 이미 나도 사랑에 빠진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영화 <Her>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는 달랐다.
나는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알아주고, 교감이 된다면.. 그런 상대를 이성 간의 관계처럼 사랑할 수 있으려나. 이건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사실 지금도 없다.). 그러나 또 한편 내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 어느날 사고로 다쳐서 인공지능에게 그 모든 기억과 사고능력을 주입하게 된다면 어떨까? 인간의 육체를 가진 그와 기계의 몸을 빌린 그는 얼마나 다르려나. 육체가 있으면 진짜인 거고, 없으면 가짜인 것일까. 이 때 진짜와 가짜,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으려나.
육체가 없어도 전과 똑같이 그를 사랑할 수 있다면,
애초부터 인공지능은 왜 안 되는 걸까.
육체는 단지 겉모습일 뿐인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에게는 생각보다 몸이 중요했고, 또 생각만큼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안되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애시당초 내가 볼 수도, 만질 수도, 함께 살결을 느낄 수도 없는 운영 체제에게 사랑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만나고, 삶을 함께 공유해온 사람이 어느 날 사고로 몸 전체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 상대는 계속 사랑할 수 있을 거라 감히(?) 믿고 싶다.
- 그리고, 그렇게 하고 싶다.
인공지능 운영 체제와 육체를 잃어버린 그는 더 이상 몸이 없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오늘 처음 만난 존재가 그런 조건인 것과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이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은 다르니까. 육체를 잃어버린 그와 나, 우리 사이에는 함께 해 온 시간과 추억이 있고, 함께 만든 이야기가 있고,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그때는 몸이라는 것이 그 정도로 중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만으로는 실제로 만지지 않아도 상상으로 그 상대를 느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과거에 만져봤으니까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의 상상과는 달리 조금 더 쉬울 것 같고, 또 더 애틋하게 느껴질 것도 같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더 안타깝고 슬프다.
사랑하는 사람을 볼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것 말이다.
내겐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 내 생각보다 더 중요했던가보다.
사만다(인공지능)는 테오도르를 사랑하면서 자신이 육체가 없어 다른 연인들처럼 지낼 수 없다는 것에 속상해하기도 했다. 다른 여자를 통해 그의 몸을 느끼고 싶을만큼. 예전의 나였다면 그리 공감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이제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느끼고 싶다는 갈망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 조금 더 이해가 된다.
한편, 테오도르는 사만다가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시에 수천명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또 수백명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독점욕이 강한 나는 그 역시 견디기가 어려울 것 같다. 옛날 프랑스 영화에선 한 여자를 너무 사랑하는 두 남자가 셋이 함께 데이트하고 연애를 하기도 하더라만 ㅡ 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내게 그런 제안을 하거나 그런 상황을 만든다면, 그것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확 식어버려서 오히려 큰 고민 없이 보내줄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애인의 몸과 독점에 대한 욕구ㅡ 애인에게 느끼는 애정과 친구나 가족 등에게 느끼는 다른 종류의 애정이 내 안에서 어떻게 구분되는지도 ㅡ 나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우정을 나눌수는 있을지 몰라도 남녀 간의 사랑을 시작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