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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을 돌본다는 것

문미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by 햇볕 냄새

자신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병든 노부모나 아내를 돌봐야 하고, 몇십년 간 계속된 간병에 지쳐 끔찍한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또 얼마전 장애가 있는 딸을 사십년 넘게 돌보다 지친 어머니가 자신이 죽은 뒤를 걱정해 딸과 함께 죽으려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판사는 3년형을 선고했고, 검사측도 항소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과 며느리, 남은 가족 모두가 탄원서를 썼다고도 했다. 그 어머니는 다른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수십년 간 오롯이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해왔다고 했다. 그 덕분에 나머지 가족들은 여행도 가고,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살았다고. 본인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하면서 가끔 그래도 이만하면 우리 가족 행복한 거지, 라고 했다던 이야기를 읽는 순간 그동안 사는 게 얼마나 고되었을까. 정말 끝이 없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라는 게 저런 걸까 싶었다.


나는 뉴스의 댓글을 잘 보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런 기사는 댓글이 궁금했다. 이런 사람들을 너무 욕하지 말았으면… 다들 내 마음과 비슷했는지 댓글도 간병하느라 지친 가족의 고통을 쉽게 판단하지 말라거나, 형량을 줄여달라거나, 이미 벌을 받은 거나 마찬가지라거나, 누구도 그만큼 할 수 없다거나, 그런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부모님이 나이 들면서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갑자기 쓰러지시거나 치매가 오면 어떡하나. 간병인을 쓴다면 돈은 얼마나 들까. 간병인이 우리 엄마 아빠를 친절하게 잘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언젠가 둘째 동생이 부모님이 아픈 상황이 온대도 요양원에는 못 모실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래,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럼 누가 모시고 병간호를 할 수 있지? 아빠가 먼저 아픈 상황이 오면 엄마가? 이제 무릎이 아파 본인 몸 하나 건사하는 게 힘든데. 아니면 우리 중에 누군가? 솔직히 자신이 없어. 그리고 한 사람에게 그 부담을 지우는 건 말이 안돼. 긴 시간 간병을 한 사람들은 나름으로 애를 쓰고도 억울함, 분노, 죄책감 등으로 괴로워한대. 그래, 그렇지. 그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엄마는 우리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일찍부터 아빠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그래야 치매가 늦게 온다면서. 그리곤 우리도 모르게 두 분 다 간병 보험에 가입했다고 했다. 그래요, 그런 게 있다면 가입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사실 간병 보험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생과 가입하고 함께 돈을 내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부모님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못했다. 아직 두 분이 본격적으로 거동을 못하는 것도, 우리가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먼 훗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런 생각을 할라치면 부모님을 두고 내가 속물이 된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이 찔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이것밖에 안 된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의 명주와 준성은 훨씬 더 대단한 사람들이다.

남편과 이혼 후 치매에 걸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명주,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고3때부터 혼자 돌본 이십대의 청년 준성. 두 사람은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명주에겐 대학을 갓 졸업한 딸이 있지만, 딸 은진은 철없고 제멋대로이기만 한게 아니라 제 엄마를 이용해먹는 악랄함이 있어 명주는 은진이 무슨 일을 저지를까 무서웠다. 준성에게는 형이 한 명이 있었으나, 군대를 제대한 뒤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해외로 떠난 뒤 대출금과 몸이 아픈 아버지만 준성에게 남겨주었다. 명주와 준성에게 아픈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거운 어깨의 짐이기도 했지만, 세상에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 끈을 놓지 않고 싶었던 존재였다. 물론 두 사람은 값비싼 간병비나 병원비를 감당할만큼의 돈이 없었다. 조리실에서 일하다 화상을 입은 명주는 사고 후론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물리 치료사의 꿈을 가지고 있던 준성은 아버지 병간호로 잦은 결석을 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봤던 성실한 청년이다. 그는 여전히 물리치료사가 되어 아버지와 잘 살고픈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험에 번번히 떨어졌고, 대리 기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버지를 먹이고, 운동시키고, 씻기지만.. 아버지는 몰래 술을 마시다 사고를 치고, 대리운전 중에 값비싼 차를 박아 몇 천만원의 수리비까지 물어줘야 하는 불운이 계속된다. 아, 왜 하필이면.. ㅠㅠ


명주의 어머니와 준성의 아버지는 우연히,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명주가 집밖에 나간 사이 무언가를 가지러 가려다 거실에 엎어져 돌아가신 어머니, 목욕을 하려다 팔을 다친 준성의 팔에 힘이 풀리면서 잡은 손을 놓쳐 쓰러져 돌아가신 아버지. 여기까지만이었다면 이 소설은 가슴 아픈 이야기로만 끝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명주와 준성은 부모님의 연금을 수령하기 위해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시신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택한다. 힘들었지만 누구보다 바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한순간 불법을 저지르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제 손으로 부모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열심히 돌보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죽은 부모의 이름으로 연금을 타서 쓰게 되면서 범죄자가 된다. 두 사람은 돈욕심에 그런 선택을 한게 아니다. 둘 다 간병하느라 안정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반쯤은 자포자기한 상태여서 그랬다. 여기에 윤리적 딜레마가 발생한다. 당신에게 이들과 같은 이웃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또 당신이 준성과 같은 상황이라면 명주가 한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두 사람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일본에서는 연금 때문에 부모의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살다 나중에 발각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처음 그 기사를 읽었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일을 해서 직접 돈을 벌면 되지 않냐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명주와 준성의 처지를 보니 이런 사연이 있는 사람도 있었을까... 싶었다. 이건 신문 기사가 전달하는 짤막한 정보, 뉴스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왜 그런 선택을 해야했던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또 아주 부유한 일부가 아니라면, 누구나 겪게 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거웠다. 나만 아니면 된다,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사회에서 명주와 준성은 얼마나 나쁜 것일까. 두 사람이 그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들 앞에서 우리가 각자도생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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