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온유, <경우 없는 세계>
우리는 폭력, 집착, 자학과 같이 누군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접하면 그 원인을 그의 과거에서 찾는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가,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조짐이 어릴 적부터 있었어.
그런 환경에서 컸으니 그럴 수밖에.
그의 과거가 불우했다면, 현재의 불가해한 많은 것이 이해가능한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우는 그와는 정반대의 의미로 이상한 아이였다.
인수의 표현대로라면, 한번도 사랑받아본 적이 없으면서 사랑받고 자란 아이 같았고,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구김살이 없는 아이였다.
경우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의를 베풀었고, 어른들에게는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가출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자신의 옷을 빨아 깨끗하게 입었고, 하루만 지나면 다시 엉망이 되어버리곤 하는 집(가출 청소년이 모여 살던 곳)을 청소하고 정돈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그날그날 써버리는 아이들과 달리 설거지를 해서 번 돈을 조금씩 모으는 아이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인수를 치과에 데려갔고, 역시 돌아갈 집이 없는 쌍둥이들에게 운동화를 사주기도 했다. 경우의 말대로라면 그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랐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경우를 본 다른 사람들은 그를 불량스런 학생이나 가출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똑같이 집을 나왔어도 경우는 다른 아이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백온유 작가의 소설 <경우 없는 세계>는 가출 청소년들의 삶을 담고 있다. 인수와 경우, 성연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모두 가출을 해서 한 집에 살고 있다지만 집을 나온 사정은 저마다 달랐다.
성연은 그를 살뜰히 챙기는 할머니와 엄마를 두고도 새아버지와의 갈등을 못이겨 집을 나왔다. 거칠고 제멋대로였던 성연의 뒤에 그를 애지중지하는 할머니와 엄마를 보며 인수는 그들 중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갈 아이는 성연일 거라 생각한다. 그는 기다리는 이들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는 아이였다.
인수는 넉넉한 집안, 기숙학교까지 보내주겠다는 번듯하고 열성적인 부모를 두었다. 그러나 그 번듯함 뒤에 감춰진 과도한 기대와 아버지의 폭력으로 늘 주눅이 든 채 청소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막아서는 자신보다 오히려 그런 아버지를 두둔하는 어머니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왔다. 인수는 "이제 그만 돌아오라"는 부모의 전화 한통이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아이였지만, 인수의 부모는 성연의 엄마나 할머니와는 달랐다.
경우의 엄마는 어린 나이에 혼자 경우를 낳았다. 아이를 키울 형편이 안된다는 이유로 경우를 보육원에 맡겼고, 가출하기 전까지 경우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가끔 찾아온 엄마는 착하게 살면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고, 경우는 그 말을 믿고 착하게 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착한 행동을 하며 사랑을 갈구했던 경우는 보육원의 원장에게도, 보육원의 형들에게도, 가출 패밀리의 일원들에게도, 엄마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경우를 예뻐해주는 사람들은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인수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 가출, 그때 겪은 사건으로 인해 그는 한여름에도 지독한 추위를 앓을만큼 심각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다. 인수에게 성연, 경우와 있었던 시간은 치기 어린 날의 무용담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경우'와 'A'가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에 인수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좀처럼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게 아닐까.
A는 비교적 늦게 가출패밀리에 합류한 녀석이었다.
A는 이른바 자동차 사고를 빙자한 사기로 운전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의 몸은 온통 멍투성이였다. 대충 부딪히는 척이 아니라, 이쪽도 정말 꽤 큰 상처를 입을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한다던 A. 어느날 밤 A는 또 그렇게 사고를 낸 것인지 처참한 몰골로 들어와 잠을 자다 세상을 떠났다. A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로 다투던 밤, 경찰에 신고를 하자던 경우에게 인수를 포함한 모든 아이들은 거칠게 반대했다. 특히 인수가 그랬다. 평소에 얌전하니 아무 말한마디 없던 녀석이 말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몰래 A의 시신을 가져다 묻었다.
그러나 결국엔 경우의 신고로 A의 죽음이 드러나게 되고, 성연과 경우를 포함한 다른 아이들은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인수는 아버지의 빽, 시신을 묻으러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을 면했다.
경우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사건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경우의 장례식에서 인수는 경우가 탄 오토바이가 훔친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인수는 오토바이에 치인 척 돈을 뜯어내는 청소년을 못본채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아간다. 잠깐만 데리고 있다가 내보내야지, 했던 그 아이에게 나쁜 데 어울리지 말고 학교 가라고 잔소리도 해가며 점차 애착을 가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신기하게 그의 몸에 들러붙어 있던 한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경우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보육원에서 자랐지만 누구보다 사랑받고 자란 듯 예의바르고 잘 베풀었던 아이
아르바이트로 열심히 돈을 모으지만 그 아르바이트를 위해 오토바이를 훔치기도 하는 아이
A의 죽음 앞에서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그 순간 정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는 아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A의 시신을 산에 묻으러 갔으나, 결국에는 경찰에 신고했던 아이
경우는 어떻게 보면 무척 착하고 좋은 사람같고, 또 어떤 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고.. 그래서 어쩌면 책을 읽는 나도, 인수도 경우를 제대로 알고 있는게 맞는지 의심이 든다.
그렇지만
조금은 혼란스럽고 낯설었을지 모르지만
인수에게 경우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남았을 것 같다. 설령 그가 훔친 오토바이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해도 말이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선한 면도 있고,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구석도 있고, 또 여기에서는 수다쟁이가 저기에서는 묵묵부답의 과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학교에서는 모범생이 집에 와서는 가족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이 중 어떤 것이 그의 진짜 모습일까? 여기에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고, 또 그 판단에 따라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결정되는 것일까? 예전에는 나도 사람을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에게 모순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것, 선과 악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다.
인수에게 과거의 기억은 한여름에도 덜덜 떨게할만큼 끔찍한 것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다른 가출 청소년에 비해 인수는 마음이 여렸고, A의 죽음 이후 처벌받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혀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은 피할 수 있었다면 안겪는게 더 좋았을 일이다.
하지만, 그의 그 나쁜 기억과 후회가 현재 어른이 된 그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오토바이 사고를 위장하는 아이들을 보았던 그 순간, 그는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가 경우와 성연, 어머니와 아버지, 일그러진 얼굴의 A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자기를.
그가 어떤 대단한 결심으로 소년을 데려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자신도 혼란스러운 채로, 자기도 모르게 집으로 데려와 어느날은 후회하고, 어느날은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그가 자신의 과거에서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그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