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삶은 왜 위험한가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있는 나날>

by 햇볕 냄새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좋은 삶이란? 선한 의도를 가지고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열심히만 살아가면 되는 것일가? 우리는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열심히 산 결과가 나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어쩌면 '선한 의지'라는 것과 '열심히'라는 말에 가려 맹목적으로 수단과 과정을 선택함으로써 더 큰 악을 초래하기도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은 얼마나 충격적이면서도 사실적인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에는 '스티븐스'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위대한' 집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고 한평생 ‘신사'를 보좌하는 삶을 살았다. 그에게 '위대함'을 결정짓는 것은 역시 숭고한 이상과 대의에 헌신하는 위대한 신사를 모심으로써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삶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상주의자였고,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개인적인 욕망이나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는 삶을 살았다.


스티븐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순간에도 임종을 지키기보다 자신이 일하는 저택에 온 손님들을 접대하는 일을 지휘했다. 또 나치 집권기 히틀러와 교류하던 주인의 말에 따라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녀들을 해고했고, (개인적으로는 안타까움을 느꼈음에도) 그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나 안타까운 마음은 드러내지 않았다. 1,2차 세계 대전 시기 국제 정세에 대해 묻는 손님들의 질문에 자신은 그런 것에 의견을 낼 입장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으며, 자신을 애타게 좋아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청혼을 수락하는 것을 보면서도 축하한다는 말만 내뱉었다.


시간이 흘러 스티븐스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들었고, 함께 했던 주인(달링턴)도 세상을 떠난지 오래, 그는 한때 자신과 함께 일했던 켄튼을 만나러 먼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의 과정에서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선택,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작가 도리스 레싱은 <남아 있는 나날>을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슬픈 책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책은, 스티븐스의 삶은 왜 슬픈가?


우선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놓쳐버렸다.

심지어 그 여자가 자신을 무척 사랑했고, 그 마음을 표현했음에도. 평생 달링턴홀에서 일해온 그에게 켄튼은 애틋한 감정을 안겨준 유일한 여자이지 않았을까? 그가 자신의 마음을 알고, 고백하고, 열렬히 사랑을 하다가 헤어진 거라면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스티븐스는 켄튼의 표현 그대로 늘 아닌 척,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쫓겨난 하녀들 때문에 켄튼이 분노하고 슬퍼할 때에도,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를 만나러 가지 않게 붙잡아달라는 간접적인 호소에도 모두 모른 척.. 했던 그는 켄튼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평생 꿈꿔왔던 위대한 집사가 되지도 못했다. 그의 모든 선택은 '위대한 집사'로서의 역할이 기준이었고, 사랑도 뒷전으로 둘만큼 열심히 일했다. 직업 윤리를 좁은 의미에서 해석한다면 그는 지극히 훌륭한 집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는 위대한 집사가 되지 못했고,

그의 삶은 가슴이 아려온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스티븐스가 모셨던 주인 달링턴이 도덕적이고 좋은 일을 하며 세상에 기여해야 그 자신도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었건만 달링턴은 나치와 협력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설령 달링턴의 의도(유럽의 평화)가 좋았다고 해도, 그는 너무 순진했고 또 스티븐스처럼 맹목적이었다. 달링턴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기까지 스티븐스는 주인 나리를 믿는다는 말 외에 어떤 조언도,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달링턴의 곁에서 그를 보좌했을 뿐이었다.


스티븐스는 달링턴을 욕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되뇌인다. 그것은 아마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항변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달링턴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그 역시도 그와 자신의 삶이 떳떳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븐스와 달링턴은 개인으로서 나쁜 인간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는 나쁜 시민, 사회 구성원이었다.



'맹목적'이라는 말은 영어로 'blind', 말 그대로 눈이 멀어 다른 것은 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스티븐스의 삶이 '집사'라는 하나의 역할을 자신을 이루는 많은 것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것으로 여기면서 그의 성실성, 책임감, 그 모든 '열심히'가 그를 잘못된 선택으로 이끌었을 거라 생각했다.


나도 시야가 넓은 인간이 아니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주위의 다른 것들을 잘 보지 못한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집중력이 좋다고도 할 수 있으나, 그 사건, 인물을 다각도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그 결과 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다른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삶의 그물망을 이해하는 것,

어떤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맺은 이들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을 100퍼센트 모두 고려하고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상상해볼 수 있어야_ 최대한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스티븐스 같은 사람은 대놓고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만큼 나쁘다고 욕할 수는 없으나, 개인의 삶으로 볼 때 더 안타깝고 슬프다. 대놓고 나쁜 사람은 적어도 그 스스로는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잘 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갈테니까.


그리고 언젠가

스티븐스나 달링턴과 같은 순간을 맞이할 때면,

얼마나 허무하고 화가 날까.

(그런데 탓할 대상도 없다. 결국 본인 잘못이라서_)




이제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에,

"열심히만 한다고 다 되는게 아니야. 방향이 중요한 거지."라던 말의 참뜻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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