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김금희, <경애의 마음>

by 햇볕 냄새

마음이 눈에 보이면 좋을까?


상대방이 얼마나 기쁜지, 슬픈지, 괴로운지 알게 되면,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까? 미워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 후회하는 마음 같은 것은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든 행동이든 표현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그 속성 때문에 너무 자주 우리가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게, 일일이 마음을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이 싫을 때도 있어서 가끔 마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실체였다면.. 하는 이상한 상상을 해본다.



소설 <경애의 마음>은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족이나 직장 동료뿐 아니라 스치듯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런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 글이다. 우리는 그 마음이 얼마나 여리고 상처받기 쉬우며, 또 얼마나 강하고 생명력이 있는지, 서로의 마음들이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경애와 상수, 조선생, ‘언니는 죄가 없다’에 사연을 보내는 언니들을 통해 상상할 수 있다.


주인공 경애와 상수는 요즘말로 ‘인싸’보다는 ‘아싸’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았던 경험,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망가뜨리는지도 잘 알고 있다. 남들에게 설명되고 이해될 수 없기에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일 뿐, 언제나 마음은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_ 그 마음을 외면하고 아닌 척, 모르는 척 살아가는 삶은 사는 것 같지가 않다.


회사 파업에 참여했다가 노조에 성희롱을 고발하여 파업을 망쳤다는 이유로 회사 내 어디에도 낄 수 없게 된 경애와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어수룩한 느낌을 주는 상수가 '반도 미싱'이라는 회사에서 만나 한 팀을 이루고 나름의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이 소설의 대강의 줄거리다.


이 소설이 드라마였다면, 사내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의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회사에 보란 듯이 성과를 내고 해피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 두 사람의 달달한 연애 장면이나 눈부신 성과는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연민과 같은 인간적인 유대감, 달달함보다는 뻐근함과 묵묵함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상수와 경애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계속해서 각자의 삶 속에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대사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저 말이었다. (어디서 들었던가, 엄마나 큰엄마가 세상에 별 사람 없다..라고 했던 말을 내 마음대로 해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선생의 “사람 마음 다 똑같아요. 공팀장은 어떨 때 마음이 갑니까?”라는 외침처럼 우리가 누구에게나 나와 같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진지하게 의식하게 된다면, 그리고 내 마음의 움직임을 조금 더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도 함부로 할 수가 없지 않을까? 파업에서 싸워 이기자고 성희롱 사실에 대한 경애의 고발을 어물쩍 넘겨버리려던 노조 간부는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의 마음을, 성희롱 당한 직원의 마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회사와 싸워 이긴다면, 그 속에서 동료 중 누구 하나가 다치게 되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들의 명문대 입학이 좌절되자 재수, 삼수에 유학까지 등을 떠밀던 아버지는 사랑했던 어머니의 죽음, 유일한 친구 은총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버린 상수의 마음을 얼마나 느끼고 있었을까? 자신이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그 전에 스스로의 마음은 얼마나 느꼈을까.


우리들은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지만, 때때로 아니 종종 마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요구받고, 마음이 없는 존재처럼 대우받는다. 상수는 언제나 회사에서 자신의 존재와 마음을 설명해야만 하는 부담을 갖고, 그스스로가 기계가 된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


“…… 반도 미싱에서의 생활은 상수를 언니도 오빠도 형도 아닌 자꾸 ‘그것’으로 느끼게 했다. 회사에서 상수는 매뉴얼이 필요한 무언가처럼 자기 자신을 설명해야 했다. …… 그 모든 것의 해답은 좋아서 혹은 싫어서였는데 그 두 가지는 사람들에게 무섭도록 이해받을 수 없는 말이라서 상수는 늘 자기가 설명서가 필요한 연마기나 절삭기 같은 기계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37쪽)


“ 그냥 (좋아서/ 싫어서) ” 이라는 말로는 왜 부족한 것일까?


모든 것에 설명할 수 있는, 납득할만한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내 마음이 설명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런 마음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 모두가 사람 마음이 다 똑같다는 것을 안다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정말로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가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게 있지만, 또 사람은 제각각이라 특정한 상황에서 느끼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나에게는 참을 법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못견디게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상대가 내 마음과 똑같을 거라 생각하고 단정하면 가끔은 무례하거나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음은 표현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말 안하면 어떻게 알아? 무슨 독심술 해? 라는 말처럼_

하지만 그것은 '설명'과 '논리'의 영역이 아닐 것이다.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뒤죽박죽이다.

유튜브에서 박정민 배우의 오디오북 이야기를 듣다가,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이 불쑥 떠올라 내 마음대로 끄적여 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맹목적인 삶은 왜 위험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