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벤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내가 아는 누군가는 '아름다운 이별' 따위는 없다고 했다.
그것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이별할 때는 서로 할퀴고 볼 거 못 볼 거 다 보고 끝내는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아닐 수도 있다고, 서로 응원하며 보낼 수도 있지 않냐고 했다. 하지만 그 응원이 가능하기까지, 마지막 순간에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라고 끝내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아마 그 분의 말처럼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준 게 맞을 것이다. 이제 끝이라고, 남이 된다고 하니 그 지난한 싸움과 상처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남은 삶을 응원하는 것일 뿐인지도.
비록 아름다운 이별을 아니라 해도,
그래도 이만 하면 한 때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예의를 갖추고, 그 과정에서 자신도 조금 더 성장해가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 것이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였고, 잔나비의 노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였으며, 또 바로 이 영화_1980년에 만들어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라는 영화였다.
테드는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따내고 승진한 날 저녁 아내 조안나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아내는 하나뿐인 아들 빌리를 남겨둔채 이른바 가출을 해버린다. 조안나가 떠나고, 테드는 프렌치 토스트 한장 굽는 것부터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것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우며 고군분투한다. 어느 날은 투정을 부리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후회하고, 또 어느 날은 잠깐 한눈 판 사이 정글짐에서 떨어져 다친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내달리고,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마감 기한을 넘겼다는 이유로 상사에게 다그침을 받아가면서. 그렇게 그는 조금씩 아빠가 되어가고, 빌리도 테드와 함께 하는 것에 익숙해져간다.
이 영화의 백미는 두 사람이 양육권을 갖기 위해 재판을 하는 과정이다.
나는 이 영화가 이래서 마음에 들었다.
#1. 어린 아들을 두고 떠난 조안나를 모성애 없는 악녀로 그리지 않았다.
테드의 입장에서, 또 영문 모르는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조안나는 제멋대로인, 이기적인 엄마처럼 보일 수 있다. 어느날 갑자기 집을 나가겠다는 것도, 아이를 두고 떠난 것도, 갑자기 돌아와 아이를 자신이 기르겠다는 것도. 그러나 조안나는 아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지쳐버린 자신이, 자신을 잃어버린 자신이 아이 옆에 있는 게 오히려 더 해로울까봐 그런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온전한 인격체가 되기 위해 정신과 상담도 받았고, 일자리도 구했다고. 마지막 선택까지 보면 그녀는 단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자기 욕심을 앞세운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남편과 아내로서 최소한의 인격마저 흠집내고 할퀴지 않았다.
양측의 변호사들은 재판의 승리만을 바라고 조안나와 테드를 끝없이 압박한다. 남편이 알콜 중독이었던 것도, 가정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지 않냐 라면서 조안나를 몰아부치기도 하고, 너의 부주의로 아이가 다친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테드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그런데 이때 테드도, 조안나도 변호사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변호사가 조안나를 몰아붙일 때, 테드는 그녀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주고 당신이 그 정도로 나쁜 아내, 나쁜 엄마는 아니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빌리의 상처를 테드 탓으로 돌릴 때, 조안나는 괴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끝내 그 이야기로 변호사가 공격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사과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있고, 끝끝내 아이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게 되었지만, 서로가 아내와 남편, 부모로서 아주 나쁘지 않았다는 것,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만약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를 더 나쁜 놈이라고 몰아갔다면 어땠을까? 한때 사랑했고, 내 아이의 아빠이자 엄마고, 또 오랫동안 부부로 살아왔던 사람인데 말이다.
아아아,, 조안나와 테드가 그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3. 조안나가 승소했지만 양육권을 포기하고, 또 테드가 그런 조안나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조안나는 결국 재판에서 이겼고, 테드는 빌리를 보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빌리를 데려가기로 한 바로 그날 아침, 조안나는 양육권을 포기한다고, 빌리는 테드와 있는 게 더 좋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눈물범벅인 채로 빌리를 만나러 올라가는데, 그런 자기 모습이 어떻게 보이냐는 질문에 테드는 아름답다는 말로 그녀를 안심시킨다. 조안나도, 테드도 자신의 욕심보다는 아이에게 어떤 것이 더 좋을까를 생각하는 부모였다. 조안나는 자신이 없는 동안 테드가 좋은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테드는 자신이 일에만 몰두하는 동안 그 모든 것을 도맡았던 아내가 졌을 무게와 그로 인해 포기했던 꿈을 이해했다.
테드와 조안나는 각자의 길을 갔지만,
가출, 양육권 분쟁, 재판 과정에서 서로에게 아프고 모진 말을 해댔지만.. 나만큼이나 상대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 부족하지만 빌리를 위한 마음만큼은 진심이라는 것, 상대 역시 결혼 생활 내내 나름으로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밑바닥까지 헤집지 않고 서로를 응원하며 보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정도면 현실에서 가능한 아름다운 이별이 아닐까.
자신이 나쁜 아이여서 엄마가 떠난게 아닐까, 또 다시 아빠랑 헤어져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불안하고 두려웠을 빌리. 그래도 사랑이 있는 부모를 만나 덜 상처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