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부츠지 무잔이 싫어

<귀멸의 칼날> 시리즈

by 햇볕 냄새

얼마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무잔(극중 혈귀들의 수장이자 근본악이라고 볼 수 있는 사악한 인물)에 대한 분노가 또 한번 불타올랐다. 내가 극중 캐릭터를 이렇게 미워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처음엔 미워했다가도 그의 서사를 이해하면 또 한편 연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의 아카자가 그랬고 <귀멸의 칼날>에 등장하는 많은 혈귀들도 그랬다. 평범한 사람들을 죽이고, 탄지로와 그 일행들을 괴롭히는 사악한 혈귀들도 마지막 순간엔 조금씩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잘못했고, 그 잘못을 용서하지도 않지만, 혈귀들을 거기까지 몰고간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던 것이다. (탄지로도 혈귀에게 칼을 겨누고 싸우지만 재가 되어 타버린 그들에게 애도를 나타낸다.)


또 나였다면, 내가 아카자처럼 가난하고 병든 아버지의 약값을 구해야만 했다면 나는 얼마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인다해도 절대로 안 그럴 거야,'라고 단언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내가 사회의 규범 내에서 어느 정도의 도덕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내 의지나 양심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우연히 얻은 행운 덕분이다. 나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지도,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태어나지도, 지독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무잔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물론 무잔에게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겠지. 그러나 그는 가난하고 힘없고 괴로운 순간에 빠진 인간을 유혹하여 혈귀로 만들뿐 아니라, 그렇게 자신을 위해 충성하는 혈귀들에게도 일말의 애정이 없다. 그는 자신이 아닌 모든 존재를 수단으로 여기는데, 그 점이 아주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뺏어가고 그 얼굴과 눈빛이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만약 무잔이 자기 부하(?)라 할 수 있는 혈귀에 대해서만이라도 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거나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었더라면, 나는 그를 완전히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초반에 그리드를 아주 미워하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게다가 무잔이 겉보기엔 사람들 속에 섞여서 너무 멀쩡하게 하고 다니는 것도 싫다.

무잔은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 늘 갖춰진 옷을 입고, 본색을 드러내지 않을 때는 세련된 매너와 말을 구사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 뒤에서 더 나쁜 짓을 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살인이나 물리적 폭력과 달리 은밀한 조종이나 사기와 같은, 이른바 화이트 칼라 범죄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거나 또 직접적인 공포, 끔찍함은 덜해서 그 악함이 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는 훨씬 더 큰 피해를 초래하는 데도 불구하고. 내게 무잔은 그런 이미지의 악인이다.


내가 어떤 인간을 싫어하는지 키부츠지 무잔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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