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은 스물 여덟살에 자연의 모든 과정이 예측가능하다는 생각과 결별했다고 한다. 그는 1872년에 이미 당시 그 존재가 확실히 규명되지 않았던 원자에서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물리학과 인간의 모든 존재 영역에서 '무지'와 '무질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불변의 법칙과 진리를 추구하는 학계에서 그는 강력한 비판을 받았고, 동료들과의 마찰은 우울과 혼돈의 삶을 살았던 천재 물리학자를 자기 회의로 몰아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볼츠만이 조금 더 늦게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 시대보다 더 무한한 정보와 사람, 사건이 얽혀 누구도 100% 확실히 알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세계에서 태어났다면_ 불변의 진리와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학계에서뿐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도 인정하는 시대에 살았더라면_ 그는 후보에 머무르지 않고 노벨상을 탔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또 한참이 지나 1944년, 아인슈타인은 막스 보른에게 " 신은 우주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신이 우주와 주사위 놀이를 하느냐 마느냐가 왜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_ (나중에 알고보니 중요한 거였다.)
그리고 또 또 한참이 지나 2025년 여름부터 가을, 오늘까지도 나는 안톤 쉬거와 동전 던지기, 우연에 대한 생각에 골몰했다. 그리고 왜 아인슈타인이 편지까지 써가며 주사위 놀이를 운운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신은 주사위 놀이뿐 아니라 동전 던지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영화가 상을 받고 한참 인기있을 땐 쉬거가 엄청 무서운 캐릭터라고 해서, 또 제목만 보고 노인 복지나 고령화에 대한 영화인 줄로만 알았던 것은 참으로 .. ㅠㅠ)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등장하는 안톤 쉬거는 주사위 던지기 대신 동전 던지기로 목숨을 결정한다(주사위보단 확률이 훨씬 높아졌다). 그는 날씨를 묻는 슈퍼 마켓 주인에게 뜬금없이 동전 던지기를 제안한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자신은 게임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거부하는 슈퍼 주인에게 당신은 이미 게임을 하기로 했다면서, 거기에 걸린 것은 바로 당신의 목숨이라는 황당한 제안, 아니 협박을 하는 것이다. 슈퍼 주인은 그의 강요에 못이겨 끝끝내 동전의 한 면을 선택하게 되고, 우연히 동전의 윗면을 맞힘으로써 운 좋게 살아남는다. 영화 마지막 즈음, 쉬거가 쫓던 돈가방을 가져간 르웰린의 아내에게도 역시 동전 던지기로 목숨을 결정하라는 요구를 한다. 그녀는 쉬거에게 자신을 죽일 필요가 없지 않느냐며 애원하기도 하고, 동전 던지기로 사람 목숨을 결정하는게 말이 되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죽임을 당한 것 같다.
쉬거는 자신을 죽일 필요를 운운하며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 하나같이 똑같은 소리를 하는군. 목숨에 대한 미련을 버려. “
아니, 내게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내걸었는데 어찌 동전 던지기 같은 우연과 운에 맡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내가 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을 알려달란 말이야. 네가 꼭 나를 죽여야 할 필요가 뭐가 있냐고, 그런게 없다면 너무 억울하잖아. 나라도 그렇게 외쳤을 것 같다. 내가 왜?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항변은 쉬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불변의 어떤 법칙, 원인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는 인과 관계, 그로부터 도출되는 필연성.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려 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그 원인이 결과를 도출하기에 적절한 것인지를 따진다.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세상은 생각만큼 합리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이성적으로 굴러가지도 않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그런 이상적인 단어들로 설명가능하겠지만, 또 다른 절반쯤은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이유를 고통받는 아이들에게서 찾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굶주리고, 버려지고, 학대당하는 아이들에게서 그 고통의 필연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더 많이 노력한다고 해서 꼭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도, 더 착하게 산다고 해서 꼭 복을 받는 것만도 아니라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생각하면 세상사 모든 것은 우연이고 운이다, 그래서 아무 것도 애쓸 필요가 없고 무의미하다~ 로 결론내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인간으로서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연이고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 후에 내 손을 떠난 우연과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준다는 점에서, 인생을 조금 더 가볍게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 그 우연과 불확실성마저 내가 통제하려고 하면 다른 누구보다 내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수록,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좋아진다.)
아주 오래 전 M방송국에서 <샐러리맨들의 천국...>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인간은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채찍은 필요 없다.'는 경영 철학을 가진 할아버지 사장님이 운영하던 일본의 '미라이 공업'에 대한 다큐였다. 그 회사는 여러 모로 샐러리맨의 천국이었으나, 한 가지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제도가 '승진 시스템'이었다. 사장님은 직원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접어 선풍기 바람에 가장 멀리 날아간 사람을 승진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런 승진 제도라면 열심히 일하고, 더 능력 있는 직원은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 모두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고 대충 대충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의외로 직원들은 그 승진 시스템에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동료가 승진을 하고 나는 못 한다 해도 그것은 선풍기 바람의 결과였지, 자신이 더 무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승진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의 부담과 시기심을 덜어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승진한 사람도 자기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선풍기 바람의 신이 자기 이름을 더 멀리 날려준 우연과 운에 감사할 뿐이므로 더 교만해질 이유도 없게 만든다.
우연과 불확실성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내가 애쓴다고 해서 기대했던 결과가 반드시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서 가끔 화가 날 때도 있다.
이 세상이 나한테만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드넓은 세상에서 '나'는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닐 것이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런 우연을 겪을 수가 있다. 영화 속에서 남들에게 동전 던지기를 강요하던 쉬거 역시 마지막 순간에 갑작스런 교통사고를 당하니까. 그런 우연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나는 내가 (소중하지만) 또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살기가 조금 더 편안해지고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_
신은 동전 던지기를 한다고 믿으며,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기로_
여름 내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어렵지만 흥미로웠던 영화와 안톤 쉬거에 대한 생각은 이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