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행복>
황정민과 임수정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 <행복>(2007, 허진호 감독)을 보았다.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영수(황정민)는 간경화가 심각해져 서울에서의 사업을 접고 시골의 요양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폐가 약해 8년째 요양원에 머무르고 있는 은희(임수정)도 있다. 처음 본 때부터 은희와 영수는 서로를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다. 둘은 그렇게 정이 들고, 시골집에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게 된다. 은희의 정성어린 돌봄에 영수의 몸은 꽤 건강해진다. 그 무렵, 서울에서 찾아온 옛 애인 수연(공효진)과 친구는 서울에서의 화려한 삶을 이야기하며 영수의 마음을 뒤흔들어놓고, 영수는 매달리는 은희의 곁을 매몰차게 떠난다. 그렇게 서울로 돌아온 영수는 다시 술과 여자에 빠져 흥청망청 살아간다. 예상된 결과겠지만, 재발한 간경화로 다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을 무렵. 은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시골로 내려간 영수. 그의 곁에서 은희는 눈을 감고, 영수는 다시 은희와 처음 만났던 요양원으로 향한다.
영화는 몸이 아픈 자신을 정성껏 돌보던 여자를 배신한 남자, 그 역시 몸이 안좋았던 여자는 죽고 결국 자신은 다시 병에 걸린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였다. 네이버 영화 평에는 많은 이들이 영수를 욕했다. 영화 속 은희도 제발 네가 먼저 헤어져달라고 이야기해달라는 영수에게 "개새끼,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고 소리쳤다.
" 넌 이렇게 사는 게 재미있어? "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은희를 떠나 서울로 온 영수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장면, 그리고 밤새 놀다가 들어온 수연에게 "너는 이렇게 사는 게 재밌냐, 재밌어?"라고 묻자, 수연이 들릴듯 말듯 건조한 목소리로 "아니, 재미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영수는 자신을 미워하고 있었다.
남녀가 사귀다가 헤어지는 것, 비록 일방적인 이별이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 그리 자신을 책망하고 미워할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영수는 그랬다. (은희는 그를 용서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은 절망의 순간에 손을 잡아준 은희를 떠났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지만 아픈 은희가 부담스러워졌다. 헤어져달라는 영수에게 자신이 그 여자(수연)보다 더 잘 할테니 제발 가지 말라고 매달리던 은희를 떠난 건 이별의 예의가 아니었단 걸 그도 알았던 것이다. 그렇게 모질게 떠나왔으면, 쌍욕을 들으면서까지 헤어졌으면, 적어도 그 자신은 행복하게 살아야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영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수연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수연은 매력적인 여자였다. 쿨 하고 화려했다. 은희처럼 약초 하나를 캐면서 땀을 흘리지도, 돈 몇 천원을 아끼려 아등바등하지도, 밥을 느리게 먹지도, 자신에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에게 은희가 고맙지만 부담스러운 존재였다면, 수연과는 아무런 부담이 없는 관계였다. 같이 자고, 놀고, 웃지만 서로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맨처음 영수가 간경화 진단을 받았을 때 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별을 고했고, 다시 그를 찾아왔을 때도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수연이 그에게 쿨한 만큼 그 역시 수연에게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은희에게서 느껴지던 부담이 사라진 그 가벼움이 영수를 수연에게로 끌고 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내 영수는 서울에서의 흥청망청한 삶이, 수연과의 가벼운 관계가 재미 없어졌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아무런 책임도 노력도 필요치 않는, 부담없이 만날 수 있는 여자를 택했건만ㅡ 하룻밤에도 손쉽게 몇십 몇백만원을 벌수 있는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여러 여자를 만나 즐길 수 있게 되었건만ㅡ 술 담배 끊으라는 잔소리도, (간에 좋다는) 돌미나리 달인 물을 강요하는 이도 없어졌건만 ㅡ 적어도 재미는 더 있을 줄 알았는데 그는 행복하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던 것이다.
삶의 재미란, 거기서 오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가끔은 무겁고 버겁지만 그 짐을 지고서라도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고, 어떤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것에서 벗어나는 이보다 정말 어리석은 걸까. 영수는 왜 자신을 미워하고 재미가 없어진 걸까.
나는 영수가 은희와 헤어진 것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은희의 지인이었다면 영수 욕을 한바가지 했겠지만, 실제 내가 은희였다면 영수를 마냥 탓할 수 있었을까, 또 내가 영수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무런 고민 없이 은희 곁에 남았을까 하면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영수가 느낀 무게와 편한 삶의 유혹이 생각보다 더 강렬했을 것 같다. 현실에서는 영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이 미안함은 있지만 그럭저럭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영수는 그렇지 못했다.
그건 그가 양아치 같은 겉모습 뒤에 순수함과 양심을 간직하고 있어서일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은희를 많이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수를 탓하기보다 안타까워하는 건 헌신적인 애인을 배신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은희를 좋아하고 그 평범한 일상속에서 행복했는지를 잊고 물질적이고 빠른 욕망을 좇았던 것 때문이다.
영수씨의 행복은 부담스럽고 무거운 것,
은희라는, 평생 달리지 못하고 밤새 기침을 하고 밥을 느리게 먹는 여자와 함께 그 삶과 죽음의 무게를 매일 조금씩 이겨나가는 데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무겁기 때문에 행복과 의미, 재미를 주었을지도 몰랐다.
나는 영수가 은희를 많이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수연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