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 탐방기 in 부천
나는 언젠가 작은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꿈을 꾼다.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책으로 가득 둘러싸인 공간, 그 한 켠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작은 방도 있다. (사실 돈 많이 벌어서 3층 짜리 건물에 1층은 책방, 2층엔 미니 영화 상영관을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3층엔 나의 작업실 ㅋㅋㅋㅋ 옆으로 넓거나 위로 높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 수도권에는 무리려나...) 책방 이름 후보도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적어놓고 있다. 검색하면서 보니 참 아이디어가 반짝반짝하는 이쁜 이름을 가진 서점들이 많더라.
남들은 어떻게 책방을 꾸며놓고 사는 것인지, 어떤 취향의 책을 파는 것인지 궁금해서 종종 책방을 찾아다닌다. 나는 부천에 살고, 부천은 인구 밀도에 비해 의외로 책방이 많지 않다. (대신 작은 도서관들이 많다. 나는 그 점에서 부천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근데 책방이 적은 것이 도서관이 많은 것과 관련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흑.. 쫌 슬프다.)
내가 소개하고픈 첫번째 책방은 <역곡동 용서점>이다.
용서점은 역곡역에서 내려 조금 걷다가 조아저씨 빵집을 거쳐 주택가 골목길에, 책방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치만 조용한 곳이라 일단 마음에 든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가 좀 되어서인지, 이제 원미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 원미동 용서점) 좀 더 일찍 쓸 걸... 흑흑.. 그치만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기에 일기처럼 이렇게라도 남겨둬야지^^
책방안,
사방이 밀도 있게 채워진 작은 공간 한 가운데 한 남자가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다. 아마 주인이겠지? 손님이 들어가도 고개 한 번 안 들어보다니, 부럽다. 그 여유로움.
나 이외에 손님은 아무도 없다. 너무 조용해서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살금살금 서가를 훑어본다. 하고 많은 책 중에 왜 하필 첫눈에 들어온 것이 <성문 영어>와 <수학의 정석>이었을까.
아하하하........
논밭으로 둘러싸인 작은 농촌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3월 2일 첫날 친구들이 연합 고사(나는야 옛날 사람) 점수가 몇점이었는지 서로 물어보며 문제집 어떤 거 풀면서 공부했느냐고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입시 성적이 괜찮은 편이었는데도 그 애들이 말하는 것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더랬다. 우리 동네에는 서점도, 학원도 없었기에 문제집이라면 단체로 주문해서 학교 앞 슈퍼마켓에서 받아보던거? 그게 전부다. 그때 우리 영어선생님이 주문해준 문제집과 단어장에는 영어 발음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예를 들면 '스튜우-던트' 뭐 이런 식^^;;;
근데 성문 영어가 어쩌고, 수학의 정석이 어쩌고...
아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첫날부터 주눅이 들기도 했고, 내가 이 애들과 경쟁해서 따라갈 수 있을지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성문 종합 영어>와 <수학의 정석>은 나에게 아련한 고교 시절의 기억을 불러왔다.
이 때부터 동네 책방 투어는 길을 잃고 추억은 방울방울.. 이 되어버렸다지 ㅎㅎㅎㅎㅎㅎ
또 한쪽 서가엔 오래된 학원 광고지가 붙어있고 장국영의 앳된 얼굴이 보였다.
아, 장국영이 저런 때가 있었지...
장국영의 팬들이 들으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장국영이 맡은 캐릭터들이 어쩐지 좀 얄밉다고 생각했다. <아비정전>에서 아비는 외롭고 안쓰럽기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랑 함께 한 1분을 기억할 거야, 라는 식의 대사는 작업 멘트 치고 너무 자신만만해 ㅋㅋㅋ 또 <해피 투게더>에서는 이랬다 저랬다 변덕이 너무 심해서 양조위가 안쓰러웠단 말이지. <영웅 본색>에서도 내가 형님(적룡) 캐릭터를 좋아해서인지 장국영이 형한테 너무 한다 싶을 때가 많았고, 최고봉은 <동사서독 리덕스>의 구양봉인데 이 남자는 너무 타산적이고 사랑에 상처받지 않으려 도망치기만 하는 용기 없는 캐릭터라.. 근데 생각해보니 그 모든 것은 장국영이 너무 연기를 잘 해서였네. 내가 실제 인물과 캐릭터를 거의 동일시해서 봐버렸으니.
아... 그래도 그립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보면서 그 연기를 다시 못보는 건 정말이지 아쉬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국영의 모습은 <금옥만당>에서 코믹 연기를 하는 모습, 특히 원영의와 함께 티키타카할 때다. (그냥 내가 어릴 때 꿈꾸었던 이상형의 여자가 <금옥만당>의 원영의였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ㅋㅋㅋㅋㅋ 나는 청순가련형보다 코믹하고 귀여우면서 사랑스러운 숏컷 머리의 원영의가 진짜 이뻐보였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저런 여자랑 함께면 누구라도 행복하고 언제나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야기가 딴 길로 너무 샜다. 이제 추억은 방울방울은 그마안!!!
다시 책방으로 눈을 돌리면,
장국영 맞은 편엔 내가 소장하고 싶은 민음사 전집이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책만 있는 게 아니라 옛날 카세트 테이프도 있다. 조동진, 한영애, 가톨릭 성가.. 집을 꾸밀 때 사려 했으나 비싸서 망설였던 마샬 오디오 브라운 컬러도 눈에 띈다. 주인장은 여행을 좋아하는지 티벳 양탄자도 보인다.
그리고 두두둥! 아무튼 시리즈 ㅋㅋㅋㅋ 내가 왜 장국영만 있고 양조위는 없냐며 투덜댔던 바로 그 <아무튼 OOO>. 지금 이 순간 빨리 아무튼 양조위 2편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두번째 영화는 <동사서독 리덕스의> 고독한 남자, 맹무살수다!)
한참 구경하는데 한 아주머니가 들어온다.
단골인듯 주인장에게 자연스레 인사를 하고 말을 건다. 그러고보니 신문이라 해야할지, 잡지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이곳 동네 책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글을 실은 잡지가 눈에 띈다. 작은 책방이지만 뭔가 살뜰히 운영하고 있구나 싶어, 처음 왔는데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주인장이 쓴 책을 발견했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박용희 지음, 꿈꾸는 인생)
오오!! 이게 바로 내가 은퇴 후에 꿈꾸는 삶이다.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꾸미고, 그곳에 좋아하는 책과 그림, 음악을 넣어놓고, 나는 또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먹고 살수도 있다면 가장 좋겠지!
일단 12시에 문을 연다는 것ㅡ 그 여유로움이 아주 부럽다.
그치만 내가 책방을 한다면, 아마 새벽부터 열어놓지 않을까. 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
<새벽 6시, 책방 문을 엽니다> 아침 잠 없으신 분들, 어서 오세요!
어쩌다보니 동네 책방 투어는 나의 추억 여행으로 끝이났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반전,
주인장이 쓴 책을 골라 결재를 하려는 순간, 그동안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던 그 남자가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알바생??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냥 잠시 맡아준 동생이라며 결재 시스템을 낯설어했다. 아, 12시에 책방 문을 열고, 아는 동생에게 맡겨놓고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여유로움_ 또 한번 부럽다. 나도 나중에 그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다짐하고 조 아저씨네 빵집에서 빵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저녁.
머릿속엔 빨리 <아무튼 양조위>를 써야겠어!,
라는 생각으로 가득.
이 글을 쓰는 순간엔, 곧 <원미동 용서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