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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Jul 10. 2022

여행을 가지 못해도 괜찮아요

유튜브<조승연의 탐구생활> 보다가

2021년 2월, 코로나 시국(?)에 휴직하는 나를 두고 동료들은 다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 그 아까운 걸 왜 지금 해? 코로나라 어디 놀러가지도 못하잖아? 뭐 할 건데??”

예상은 했지만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물어볼 줄이야ㅡ

그래서 정해진 대답을 준비해놓고 다녔다.

“ 동네 책방 구경 다닐 거에요.”

(이래놓고 정작 몇군데 안갔고 딴 짓하며 놀았다 ㅎㅎ)


그런데 대답하면서도 스스로 신기한 게 하나 있었다. 남들 말처럼 몇년전의 나였다면 절대 이런 시기에 황금 같은 휴직을 쓰지 않았을 거였다.(10년 근무해야 1번 쓸 수 있는 무급 자율연수 휴직을 이렇게 쓰다니..) 나는 여행을 좋아하고, 방학이면 꼭 어딘가로 돌아다녔다. 그래서 한 해에 적게는 두번, 많게는 (명절 연휴까지 끼워서) 서너번씩 놀러다녔다. 특히 해외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이상하게 마흔이 넘은 뒤부터, 정확히는 박사 논문을 쓰면서부터 여행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하는 마음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런 변화가 신기했다. 처음엔 논문만 끝내면 이제 맘 편히 다닐 거라 생각하고 요세미티에서의 캠핑을 상상하며 샌프란시스코 여행 계획까지 세웠었다. 근데 코로나로 무산되었는데, 생각보다 아쉽다거나 하지 않았다. 왜 어디 안가고 싶지? 이렇게 1년이나 아무 것도 안해도 되는데? 여행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대지 않아???


응, 괜찮아.

다른 거 하고 노는 것도 재밌어.

그 놀이터 중 하나는 유튜브였다.

장항준 감독과 희극인 송은이씨가 소개해주는 영화 채널 보면서 빵빵 웃다가 또 무슨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흘러간 곳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조승연 작가의 <탐구생활>이란 채널이었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구독 버튼을 누른 채널이다.


유투브 채널 메인 캡쳐

우선 나는 이 분과는 전혀, 1도 인연이 없음을 밝혀둔다(뭔가 홍보하는 것 같아 보일까봐 ㅋㅋㅋㅋ 구독자 13명의 브런치를 운영하면서 이런 걱정을 하다니 쓰고보니 더 웃김 ㅋㅋㅋㅋㅋ 그래도 밝힐 것은 밝혀둔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조승연 작가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으나, 예전에 가끔 티비에 나오던 그를 보며 썩 호감을 느끼진 못했다. (내가 꼬였던 것인지, 자유롭게 여행하고 많은 언어를 구사하는 삶과 능력이 부러웠던 것인지^^;; 그 당시엔 말도 많고 아는 척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였다. ㅡ 돌이켜보면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내 안의 부러움이 투사된 결과였을 것 같다.) 어찌됐든 그땐 그랬지, 그랬는데ㅡ

이 채널을 보면서 한 사람에 대해 갖는 편견, 그리고 섣부른 판단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그가 달라진 것인지, 내가 달라진 것인지, 우리 둘 다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달라졌다!



이제 내 눈엔 좋아하는 책과 영화, 자전거 이야기를 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눈빛이 먼저 들어왔다. 난 그 눈빛에 혼자 중얼중얼 감탄했다. 와… 되게 오랜만에 본다. 뭔가 얘기하면서 초롱초롱 빛나는 눈, 신나서 어쩔 줄 모르는 눈빛. 그것만으로도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 사라지고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저렇게 눈을 빛내며 하는 이야기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얼마든지 기꺼이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이 글의 첫 제목은 ‘조승연 작가의 눈이 반짝거렸다.’였다. ㅋㅋㅋㅋㅋㅋ)


역시 재미있었다.

그래서 연속으로 보고 구독 버튼도 눌러버렸다.

수업이든 이야기든 하는 사람 스스로가 이거 진짜 재밌어! 완전 신나는 거니까 들어봐봐, 하는 느낌으로 푹 빠져 있을 때 듣는 사람도 똑같이 그 재미를 따라가는 것 같다. 조승연 작가는 워낙 이야기를 재미나게 술술 풀어내는 사람이기도 했고, 영화를 소개할 땐 옷을 그날 소개하는 것에 맞춰 컨셉을 잡는 등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쓴 것도 느껴졌다. 그리고 책 이야기를 해줄 때면, 이젠 아는 척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 사람 오래 고민 많이 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몇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 중에서도 최근에 올라온 한 편의 영상(아래)은

내가 왜 더 이상 여행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지, 또 남은 삶은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https://youtube.com/watch?v=6oIzFdKzNoE&feature=share

유튜브 <조승연의 탐구생활>

나는 이 영상을 보기 전 스스로도 이제 여행에 목 매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했었다. 갈만큼 가서? 아니. 그건 절대 아니다. 못가본 곳이 훨씬 더 많고, 난 지금도 기회가 되면 즐겁게 여행할 것 같다. 과거보다 더 가벼운 마음으로. 대신 꼭 가야만 해, 지금 아니면 안될 것 같아, 꼭 갈래! 같은 마음이 사라진 것뿐이다. 내가 돌이켜본 나의 여행기는 즐거웠고 추억도 많지만 어딘가 마음 한켠에 충족되지 못한 뭔가가 있었다. 혼자서도 뭐든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려 떠났던 한달간의 유럽 여행, 그 이후 10여년 가까이 내 여행의 대부분은 도피성이 짙었다. 써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 학위 논문, 이것저것 배우고 여행하느라 돈도 많이 모아놓지 못했고, 나이만 들어가고 이뤄놓은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 주위에서 한마디씩 거드는 소리도 걱정해주는 맘이지만 나도 다 아는 거라 듣기 싫고. 외국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을 잊고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즐거움이 100퍼센트는 아니었다고 솔직히 말해야겠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하고,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을 직면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마음 한켠에는 불안과 걱정.. 이래도 되나,, 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행 가는 내게 후배는 “언니야말로 용자”라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난 진짜 용자는 못된다는 것, 남아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네가 진짜 용자라는 것ㅡ


그래서일까

논문을 쓰고, 결혼과 사랑도 때가 되면 되겠지,, 놔버렸던 그 해부터, 신기하게 도망치고 싶은 것이 없어진 순간 여행은 갈수 있음 좋고 아니어도 그만, 인 것이 되어버였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돈도 모으고, 소소한 즐거움을 찾는 집순이 모드^^가 되었는데, 이 생활이 꽤 만족스러워서 이번 여름에도 어디 안가고 집 앞 도서관이나 동네 책방 구경을 하지 않을까 싶다.



조승연 작가는 ‘앤서니 보데인’이라는,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워너비 유명 인사의 삶과 선택을 통해 불안을 동력 삼아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뭔가 도전하는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었다. 영상을 보면서 나 역시 뜨끔, 내 인생을 돌아봤다. 나도 그 자리에 안주하는 것을 싫어하고, 계속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같은 게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했으니까. 하고 많은 것 중에 여행을 도피처로 정한 것도 아마 그런 성향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 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해야만 한다는 의무와 일상의 지루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과 교묘하게 결합해서, 겉으로 멋진 경험을 쌓아가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으로 귀결되었던 듯 하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런 부분이 확실히 있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과거의 그런 선택을 했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 이런 고민과 생각을 하는 나도 존재하니까. 대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이런 생각이 깊어졌다. 누군가 댓글에 적어놓은 것처럼, 나이가 들고 어떤 종류의 능력은 이제 점점 줄어들어간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 젊은 날의 자신을 유지하려 고군분투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삶을 상상해본다. 새로운 것보다 일상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지닌 가치와 소중함에 대해서도.


나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좋아한다. 육체의 늙음이야 어쩔수 없다 해도 마음 속의 열정, 상상력, 호기심은 언제까지나 그대로였으면 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열정과 호기심, 넘치는 마음을 내 몸이 더 이상 따라갈 수 없을 때 내가 큰 좌절감이나 우울감을 겪게 될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과 같다고 했던가ㅡ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삶은 위험하다고 보면서, 새로운 경험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삶은 왜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게 뭐든 궁극적인 목표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맹목적인 것이 되는 순간 위험하긴 마찬가지인데. 오래 전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나는 권태와 허무 중에 무엇을 더 견딜 수 없는 사람인가 자문한 적이 있다. 나는 권태와 불안을 피하려고 새로운 것을 배우러 다니고, 여행도 많이 다닌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허무와 공허를, 그 모든 게 아이고 의미 없다! 로 귀결될까봐 두려웠던 것 같다. 허무가 더 무서운 거였어ㅡ


마흔이 넘은 뒤에야 나는 권태로운 일상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되었고, 그 지루함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여행의 욕구는 사라지고, 그냥 하루를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물론 여행 대신 배움의 욕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사람이 한번에 다 바뀌면 일찍 죽는대니까^^;;;)


동생과 이 얘기를 하며 내가 말했다.

근데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재밌는 거 진짜 많은데, 댓글 보면 이번 편이 젤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더라, 나도 딱 그랬거든. 이번 꺼 진짜 생각 많이 하게 해주네, 그러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고민과 불안을 안고 사나봐.

조승연 작가도.

그래서 난 이제 그 이야기가 이렇게 공감이 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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