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은 아주 간단해,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by 햇볕 냄새

말이 아니라 행동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는 까다롭고 도도한 꽃과 그 꽃을 돌보는 어린 왕자가 등장한다. 어린 왕자의 별에 피어난 장미꽃은 꼭 순진한 남자친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도도하고 새침한 여자친구 같다. 꽃은 내숭과 허영도 부리고, 가끔은 거짓말도 하고, 그러다 거짓이 탄로날까 부끄러워지면 어린 왕자에게 탓을 뒤집어 씌우기도 했다. 그리고 춥다, 배고프다 등등의 이유를 들어 이것저것을 해달라고 해 어린 왕자를 지치게 만들었다. 곧 어린 왕자는 장미꽃을 사랑하면서도 의심하게 되었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불행해졌다. 하지만 장미꽃을 떠나온 어린 왕자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꽃이 하는 말이 아니라, 꽃의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했다는 것을. 장미꽃의 거짓말 뒤에 숨겨진 진심을 알아주어야 했다는 것을. 자신은 장미꽃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몰랐다는 사실을.


장미꽃은 왜 그렇게 거짓말을 하고 새침하게 굴었을까.

정작 어린 왕자가 떠나려고 할 때 장미꽃은 미안하다고,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보내주었다. 자신과 어린 왕자 둘 다 어리석었다는 말과 함께. 아마 장미꽃은 어린 왕자를 좋아하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러 거짓을 꾸며내고 잘난 척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역시 어리석었던 어린 왕자는 그 모습 뒤에 감춰진 진심을 알지 못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으로 장미꽃을 오해하고 떠난 것이다.


어떤 사람의 진실한 모습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가끔 친구나 가족, 연인이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리고,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땐 ' 왜 저래? '라는 마음과 함께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리는 이면에는 외로움, 불안과 두려움이 있을 때가 많다. 이상한 말을 하는 것도 진심을 말할 용기가 없어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다. 장미꽃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경우에는 그럴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어린 왕자의 뒤늦은 후회처럼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그 뒤에 숨겨진 마음을 읽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 이 순간 나는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선균 역)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꽂힌 말들을 쏟아내던 냉소적인 얼굴의 지안(이지은 역)을 떠올렸다. 어둡고 그늘진 얼굴, 무뚝뚝하고 냉정한 말투로 무장한 뒤에 숨겨진 지안의 진짜 얼굴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외로운 어린 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진짜 모습을 동훈은 알아보았던 것이다. -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상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고 책임을 진다는 것


정원에 핀 수많은 장미꽃을 보고 자신의 장미가 특별하지 않다는 생각에 우울해진 어린 왕자에게 여우가 다가온다.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전세계에 널리 널리 전파한 그 유명한 어린 왕자의 여우^^

여우는 서로가 길들여지지 않은 상태, 상대를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은 어린 왕자에게 수많은 다른 여우와 하나 다를 것이 없고, 어린 왕자 역시 자신에게 아무런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길들이게 되면 마치 마법처럼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 "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오후 3시부터 설렐거야. "라는 명대사과 함께, 밀을 먹지 않는 여우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던 밀밭이 어린 왕자의 금발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두근거리고, 밀밭의 바람소리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이별이 슬프다고 해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 해도

여우는 어린 왕자와 슬픈 이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눈물이 날 것 같지만 여우는 어린 왕자를 장미꽃에게로 보내준다. 괜히 여우를 길들여서 슬프게 만들었나 생각하는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자신에게는 밀밭의 황금빛이 남았다고 말한다. 어린 왕자가 떠나도, 여우에게는 밀밭을 보며 황금빛 머리칼을 떠올릴 추억이 남는 것이다. 만약 여우가 헤어짐을 두려워해서 관계를 맺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눈물을 흘릴 일도, 가슴 아픈 이별도 없었겠지만... 밀밭을 보며 그리워하고 행복해하는 순간도 역시 없었을 것이다.

아, 용감한 여우.


이별의 순간,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단순한 비밀을 하나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 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장미꽃이 정원에 핀 수천 송이의 다른 장미와 달리 소중한 것은 그가 장미꽃에게 들인 시간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여우.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시간과 노력이 모두 다 똑같게만 보이는 꽃의 겉모습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장미꽃보다 더 이쁜 모습을 한 꽃이라도, 그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텅 비어있는 것일 뿐이었던 거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의미 있는 것으로


아저씨가 어느 별에 있는 꽃 한송이를 사랑한다면 말이야.
밤마다 하늘을 보는 게 행복할 거야.
모든 별에 꽃이 있으니까.
......
아저씨는, 아저씨 혼자만,
아무도 갖지 못한 별을 갖게 될 거야.
아저씨가 밤마다 하늘을 볼 때 말이야...
내가 그중 한 별에 살고 있으니까.
그중 한 별에서 내가 웃고 있으니까.
아저씨는 마치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낄 거야.
아저씨는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된 거야!

여우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던 밀밭이 사랑스럽게 변해버린 것, 스치는 밀밭의 바람소리마저 기분 좋게 들리게 된 것은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색과 닮았기 때문이다. 꽃 한송이 때문에 밤하늘의 모든 별이 아름답게 보이고, 친구가 된 어린 왕자 때문에 밤하늘의 모든 별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마법같은 일. 그것은 나를 둘러싼 무관심하고 무의미했던 세계가 모두 사랑하는 누군가와 연결되어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오기 때문에 벌어진다. 그저 그랬던 것들, 지루했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렇게 누군가와 진실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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