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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냄새 Jun 27. 2022

이동진과 장항준 사이 어딘가

이상형의 변천사

어린 시절 누가 이상형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말했다.


" 처음 만났을 때 쑥스러워하고

  수줍음 타는 남자한테 매력을 느껴요.

 (그런데 알고보면 자기 원칙과 소신이 있는 남자요) "


그랬다.

결국엔 내면에 자기만의 어떤 신념이나 목표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면서도(이게 내게는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타입이 나의 이상형이었다. 사교적이고 활발한 이성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나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흔히 말하는 체격이 좋은  타입보다는 마른 사람을 좋아한다.(학창시절엔 유희열과 윤종신의 외모를 좋아해 친구들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고, 지금도 페퍼톤스의 신재평님과 같은 타입이 좋다. + 재평님은 같은 페퍼톤스 멤버 이장원의 이상형이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란다^^ ++++++1000점

덧, <우당탕탕 안테나>에서 가나다라마바사 춤 출때 보면 어마무지 귀엽기까지 하다^^

페퍼톤스의 기타리스트, 재평님(https://blog.naver.com/yewon010427/222716866084)


20대가 지나 30대가 넘어서도 내 이상형이 변하지 않자 모두들

" 서른 넘은 남자가 수줍어하고 쑥스러워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냐? "라는 반응이었다.


아니, 왜 이상해?

나는 어릴 적부터 쭈욱... 소년미를 간직한 사람을 좋아했다(그래서 박해일, 신재평, 조승우, 이제훈, 카세료, 쿠사노 마사무네 등 누가 봐도 아! 소년미, 라고 인정할 만한 사람들이 이상형이었다.) 아, 물론 이 소년미는 실제 나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는데 소년미를 간직하고 있다면 매력은 더 배가 된다. 소년미에는 장난꾸러기의 면모와 높은 이상도 포함되지만, 어딘지 모르게 순수하고 풋풋한 느낌이 있어야 한다. 처음 만났을 때 말을 많이 하거나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두 남자의 유머 감각을 강조할 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초면에 유머를 구사하고 마구 웃음을 주는 타입에게 끌리지 않았다. 그런 사람은 친구로는 아주 좋았지만, 이성적 매력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서른 중반

영종도에서 외롭게 지내던 나는 영화 평론가이자 작가, 이동진씨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이것은 오직 그가 하는 말 때문이었으니,, 나도 내가 그렇게 말 잘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근데 이렇게 말을 잘 한다고만 하면 무슨 수다쟁이 같은데, 그건 절대 아니다. 그무렵 나를 빠져들게 만든 것은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였는데, 매일밤 혼자 라디오를 들으며 인나씨와 시경 오라버니에게 보낼 사연을 고민하던 내게는 아주 반가운 친구였다.


합정역에 있는 빨간책방, 빨간 안경이 잘 어울리는 이동진 작가(http://www.kwangju.co.kr/read.php3?aid=1420470000540951007)


그렇게 매일 듣다보니 정이 든 건지

그 허허허, 하는 웃음소리도 좋고

이상한 말장난으로 시작하는 아재개그도 좋았다.

모든 덕질은 언젠가 보상받는다는 생각도 나와 같았다. 맞아요 맞아, 덕질은 열정이라도 있지! ㅎㅎㅎ


브레히트의 시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낭독해주었을 땐 진짜 반할 뻔^^


그러다 어느 순간

얼굴까지 빛나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역시 사람이 한번 좋아지면, 모든 게 좋아보이는 거 같다.

하지만 그 모든 것 중 제일 좋은 것은 따뜻한 마음이다.

나는 한줄로 요약하는 그의 영화 평론에 관심도 없었고,

찾아보지도 않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해 쓴 영화 평을 읽고, 그를 알아본 내 안목을 다시 한번 믿기로 했다.

그리고 <토이 스토리>의 마지막,

앤디가 함께 놀던 장난감과 이별하며 “미안해” 대신 “애들아, 고마웠어.”하고 떠나는 장면에 대해 쓴 글을 보며 이동진씨의 그 따뜻한 시선,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서 여전히 내 눈엔 콩깍지가 씌여 있다. (그러니 지금도 <헐 왓챠에 이동진>을 보며 우리가 같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 고레다 히로카즈 <원더풀 라이프>)


그러나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인 것인지

그렇게 남자의 유머 감각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믿던 내가 길을 가면서도, 교무실에 앉아서도 웃는 순간이 있었으니ㅡ 그건 바로 깨발랄한 영화 감독 장항준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이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캐릭터의 매력에 빠진 나는 슬프고 우울할 때 장항준의 영상을 보며 까르륵 웃고 모든 걸 다 잊어버리는 나를 본다. 

맨날 샛길로 새서 딴 얘기 늘어놓는데 그 에피소드가 더 웃긴 장항준 감독   (https://blog.naver.com/3karat/222182308222)

아,

귀여워^^

자기 자랑을 저렇게 해대는데

하나도 재수없지 않고

귀엽기만 하다. 우리 집에 김은희 있다아!!! 하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그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내가 생각하는 남자 매력의 최고봉은 귀여움.. 귀엽다고 느끼면 게임 끝.)


그러던 어느날

장항준 감독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본 나는 동생에게

장항준은 얼굴도 잘 생겼어! 라고 말하고

어이 없어 하는 동생에게 여보란듯 사진 한장을 보여준뒤

이상형은 이동진과 장항준 사이 어딘가,, 로 바꿨다.


근데

나 그냥 안경 낀 남자를 좋아하는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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